도피 21년 만에 파나마에서 붙잡힌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아들 정한근씨가 지난해 6월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해 입국장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외환위기 당시 회삿돈 수백억원을 빼돌린 뒤 해외로 잠적한 고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55)씨가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998년 해외로 도피한 정씨는 2008년 기소된 뒤 12년만에 법원 판단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윤종섭)는 재산국외도피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정씨에게 징역 7년에 추징금 약 401억 3193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다”며 “(정씨는) 재산 국외 도피나 횡령 범행과 관련해 조세피난처를 설립하는 등 은밀하고 탈법적인 방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경영권을 유지하고 사익을 추구할 목적을 가졌던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국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오랜 기간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과 쉽게 만날 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본인이 자초한 것이다. 도피 과정에서의 수법도 좋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정씨는 1997년 한보그룹이 부도가 나자 한보의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EAGC)의 자금 약 323억원을 스위스 차명계좌로 빼돌려 재산을 해외에 은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 뒤 정씨는 60억대 횡령 혐의가 더해져 추가 기소됐다.
재판부는 “설령 정태수 회장이 재산국외도피와 횡령과 관련한 최종 의사결정을 했더라도 정씨는 정 회장의 아들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오히려 정씨는 회사의 의사결정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지위에 있었다”며 회삿돈을 횡령하고 재산을 빼돌린 혐의 등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이어 “(정씨는) 공소가 진행되거나 구속될 것을 우려해 공범에게 도피죄를 저지르도록 교사하고, 그 과정에서 공문서 위조도 공모했다”며 “도피 중에도 재산국외도피, 횡령 범행을 저질렀다”고도 했다.
앞서 정씨는 1998년 검찰 수사를 받다 해외로 잠적했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2008년 9월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정씨는 2017년 에콰도르에 정착했고, 지난해 6월 파나마를 경유해 미국으로 가려던 중 파나마 이민청에 의해 체포돼 국내로 송환됐다. 정씨와 함께 해외 도피 중이던 정태수 회장은 2018년 12월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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