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여성들의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씨와 공범들을 차례로 잡아들이고 있지만, 아직 붙잡히지 않은 박사방 가담자들은 ‘우리가 박사다(박사 힘내세요)’라는 이름의 방까지 개설해 성착취물을 공유하며 공권력을 조롱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텔레그램 성착취방 가담자 전원을 잡아들이진 못할 것이라는 그릇된 확신 속에 범죄행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5일 <한겨레>가 확인해보니, ‘우리가 박사다’라고 이름붙은 텔레그램 비밀방에는 167명이 입장해 있었다. 이들은 “사법기관이 국민의 혈세로 무용지물 티에프(TF)팀을 만들어 국민의 메신저 텔레그램을 사찰하고 불법 감시하며 텔레그램 이용자는 성범죄자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성착취물) 유통 및 제작의 처벌은 강화하더라도 구매 및 단순 관람의 자유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박사가 미성년자 등을 협박, 강요해 제작한 불법 성착취물을 공유하며 ‘#응원메시지 #후원 #artistsbaksa #후원시비밀혜택’등의 해시태그를 달았다.
엔(n)번방 자료를 재유포하는 방도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178명이 입장해 있는 한 성착취물 공유방에서는 ‘박사’라는 닉네임을 쓰는 이가 ‘엔(n)번방’에서 공유된 성착취물을 투표에 붙이고 1위를 차지한 영상을 특정 시간에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학교 동창 등의 얼굴에 노출 사진 등을 합성하는 ‘지인능욕방’에서는 텔레그램 성착취범죄 보도 뒤 오히려 새롭게 등장한 회원들을 상대로 한 홍보활동마저 벌어지고 있었다. 354명이 입장해 있는 한 합성방에는 “연예인 몸 합성은 1장당 1000원, 일반인(지인) 몸 합성은 1장당 1500원”을 받고 제작한다는 공지가 떠 있었다. 이런 방들의 거래는 텔레그램 성착취방에서 ‘검은 화폐’로 쓰이고 있는 게임머니나 문화상품권을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범죄 수사가 시작되면 공범이나 모방범들이 자취를 감추는 게 일반적이지만 ‘박사방 사건’ 가담자들은 되레 과시적인 ‘주목 경쟁’까지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범죄수사분석관을 지낸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소라넷, 양진호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 사건들이 떠들썩해도 결국 몇 명밖에 처벌되지 않고 용두사미 되던 것을 본 학습효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잡히면 중형을 받는다는 ‘엄중성’과 형량은 낮더라도 반드시 잡힌다는 ‘확실성’ 모두에 실패했다”며 “다른 범죄를 예방하려면 이번에는 ‘반드시 다 잡는다’는 수사의 확실성을 그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 검찰은 이날 조씨의 공범 ‘이기야’(닉네임)로 알려진 ㄱ일병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ㄱ일병은 주로 성착취 영상 등을 유포하고 박사방을 홍보하는 구실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완 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funnyb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