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별창고’ 앞에서 416합창단 단원들이 책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박요섭(52·고 박시찬군 아버지), 단장인 최순화(55·고 이창현군 어머니), 안명미(57·고 문지성양 어머니)씨다. 별창고는 음향장비와 공연복 등 합창단 살림살이를 보관하는 컨테이너다. 김경욱 기자
노래는 금세 ‘울음’이 되었다. 봄볕 속에서 꽃처럼 빛나던 아이들이 떠올라서였다. ‘울지 말자’고 수차례 다짐하고, 이를 악물어봐도 번번이 무너져내렸다. 주변에선 다들 “미쳤다”고 했다. “지금이 노래할 때냐”고. “노래가 나오느냐”고. 그래도 그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슬픔에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으니까요.” 최순화(55)씨가 힘겹게 입을 뗐다. 그는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었다.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이던 이창현군이 그의 아들이다. 온갖 막말과 압박 등 불의에 맞서 한걸음 나아가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노래를 시작한 거예요.”
무대에 오른 것은 2014년 12월20일 안산 와동체육관에서 열린 ‘0416 기억하고 함께 걷다’ 행사가 처음이었다. 시민 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최씨를 비롯해 아이들 부모 6명이 무대에 올라 ‘잊지 않을게’를 불렀다. 민중음악가 윤민석씨가 쓴 세월호 관련 노래였다.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 꼭 기억할게/ 다 기억할게/ 아무도 외롭지 않게….” 내내 눈물이 전부인 노래를 뱉었다. 듣는 이도 다르지 않았다. 울음이 체육관을 뒤덮었다. ‘416합창단’의 시작이었다.
우느라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는데 “같이 노래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박요섭(52·고 박시찬군 아버지)씨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명이었다. “백마디 말보다 노래의 울림이 크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됐다”고 박씨는 말했다. 노래하기 위해 모인 이들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안산에서 연습했다.
6명으로 출발한 합창단은 지난 6년 동안 59명으로 늘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뿐만 아니라 돌아온 아이의 부모, 일반 시민도 합류했다. 나이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일반 시민단원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거예요. 자기 가족의 일도 아닌데, 그분들은 우리보다 더 굳건히 자리를 지키시거든요. 기적 같은 분들이죠.” 박씨가 말했다.
416합창단의 이야기와 노래를 담은 책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오다면>에는 음악 시디(CD)가 동봉돼 있다. 시디에는 아이들에게 보낸 부모들의 육성 편지도 담겼다. 사진은 육성 편지를 녹음하는 모습. 왼쪽부터 박요섭, 최순화, 안명미씨. 문학동네 제공
기적 같은 일은 최근에 또 생겼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두고 합창단의 이야기와 노래를 담은 책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이 나온 것이다. 국내는 물론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힘을 보태준 이들에게 책을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단원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책에는 그들이 지금까지 부른 곡들 가운데 특히 사랑한 10곡과 곡에 얽힌 사연이 녹아 있다. 아이들에게 보낸 부모들의 육성 편지도 책에 동봉된 음악 시디(CD)에 담겼다. 소설가 김훈과 김애란의 글도 실려 있다.
이들은 지난 세월, 세월호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이 사회에서 고통받고, 쫓겨나고, 부서진 이들 곁으로 달려가 노래하고 함께 아파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삼성전자 산재 사망 노동자, 케이티엑스(KTX)·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고 김용균씨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등과 관련한 문화제나 집회 현장에서 이들은 노래했다. 울음은 어느새 단단한 노래가 되어 있었다.
“아픔이 아픔에게 말을 거는 거죠.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헤아린다고 하잖아요. 곳곳에 또 다른 ‘세월호’들이 있더라고요. 아픔을 가진 우리도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낄 때가 많아요.” 안명미(57·고 문지성양 어머니)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의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아이들의 ‘뜻’이 보이는 듯했다. “우리만 힘든 줄 알았는데, 우리 같은 분들이 이 사회에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가슴속으로 아이에게 얘기해요. ‘너 때문에 아빠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고. 어떻게 보면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인데, 세상에 눈을 감고 살았던 거죠. 우리 아이들이 그런 세상을 보라고 하는 것 같아요.” 박씨의 말이다.
조심스레 물었다. “책 제목처럼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무얼 가장 하고 싶은가”라고. “지금도 같이 노래하고 있어요.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여행도 가고. 내 마음속에서 아이랑 항상 같이 있으니까.” 최씨가 말했다. 그들은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 만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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