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우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참사진상규명국장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사참위 대회의실에서 국가정보원의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 및 개인정보 수집 등과 관련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국가정보원이 세월호 참사 이후 ‘유민아빠’ 김영오(52)씨를 비롯한 유가족을 사찰했다는 구체적 증거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참사 이튿날인 2014년 4월17일부터 국정원이 희생자 가족의 성향을 면밀히 사찰해 보고하고, 자체 예산으로 세월호 관련 동영상을 제작해 ‘일간베스트’(일베) 등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 뿌린 사실이 국정원 내부 문건과 진술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27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일일동향 보고서 215건을 입수하고 국정원 직원 조사 등을 벌여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사찰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사참위는 이를 국가정보원법 11조 직권남용 금지 위반으로 보고 같은 날 오후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국정원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사찰했다는 의혹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2017년 활동했던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적폐청산티에프(TF)도 세월호 참사 관련 사찰 정황은 밝혀내지 못한 채 활동을 마무리했다.
이날 사참위의 설명을 종합하면, 국정원은 김영오씨가 단식 농성을 이어가던 2014년 8월 김씨가 진료받은 서울동부시립병원 관계자와 면담하고 이를 토대로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 사참위가 공개한 이 병원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보면 김씨가 오랜 단식으로 입원하기 이틀 전인 2014년 8월20일 국정원 현장조사관이 미리 병원을 찾아 병원장과 만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같은 시기 김씨의 고향인 전북 정읍시에선 한 공무원이 김씨의 인적사항을 적은 동향보고서를 쓰기도 했다. 이 내용은 일주일 뒤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에도 언급됐다.
단식 농성을 이어가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서울동부시립병원에 입원한 지 한달여 지난 2014년 8월20일, 병원장(왼쪽)과 국정원 현장조사관(오른쪽)이 함께 병원 복도를 걸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공.
국정원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은 참사 이튿날인 2014년 4월17일부터 8개월여의 기간동안 주도면밀하게 진행됐다. 사참위는 “입수한 일일동향 보고서 215건 가운데 48건이 유가족 사찰과 관련됐고, 4월17일 하루에만 11건의 보고서가 작성됐다”고 밝혔다. 보고서에서 국정원 직원은 유가족을 ‘강경 성향’과 ‘온건 성향’으로 나누고, 가족들이 머문 진도실내체육관 등의 현장 분위기와 유가족의 발언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이 보고서를 쓴 국정원 직원은 사참위 조사에서 ‘협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정보를 입수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퍼뜨리고 진상규명 요구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보고서도 작성됐다. 이 보고서는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등에게도 전달됐다. ‘보수권 <여객선 사고> 관련 비판세력 맞대응 강화 제언’ 등의 보고서에는 ‘희생자 추모를 빙자한 반정부 투쟁 활동을 방치한다면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보수(건전) 세력(언론)을 통한 맞대응이 필요하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김영오씨의 정치적 성향과 가족사항을 언급하며 ‘온‧오프라인 상에서 전방위적 폭로 착수’를 제안하는 내용도 있었다. 아울러 국정원은 자체 예산을 들여 ‘이제 슬픔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는 요지의 동영상을 외주 제작한 뒤, 이를 유튜브나 일베에 올리고 ‘일주일 만에 접속자 수가 일만회를 넘겼다’며 자축하는 보고서를 쓰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 장훈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진도 팽목항에서 가족들이 주검으로 돌아올 아이들을 찾기 위해 싸우고 있던 때, 국가는 정보기관을 이용해 우리를 사찰하고 있었다”며 분노했다. 그는 “(국정원의 사찰은) 직권남용을 넘어선 국가폭력이자 범죄”라며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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