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이천 현장] 스러져야 보이는 이들의 슬픈 노동절

등록 2020-04-30 22:16수정 2020-05-01 11:00

이천 화재 희생자 대부분 하청·일용직·이주노동자
유가족 “다 돈 없는 사람”
처남과 매형 함께 참변도
30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준비되고 있는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피해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30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준비되고 있는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피해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9개의 위패가 쓸쓸한 단상에 놓였다. 영정들 사이에선 평생 건설 현장에서 그을린듯 가무스름한 얼굴의 중년 남성도, 갓 스물을 넘긴 듯한 앳된 청년도 눈에 띄었다. 경기도 이천 물류센터 신축공사 현장에서 희생된 38명의 노동자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이들의 얼굴이었다. 희생자들 대부분은 전기·도장·설비·방수 분야의 소규모 하청업체 소속이거나 일용직, 이주노동자 등 노동 현장에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된 이들이다. 희생자들 가운데 9명은 아직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30일 소방청과 경찰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날 오후 4시 현재 신원이 밝혀진 희생자 29명의 나이대는 2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포했다. 특히 40대와 50대, 60대 노동자가 8명씩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들이 가장 많았다. 사회에 첫발을 막 내디딘 20대 노동자도 3명, 한창 일할 나이의 30대 노동자도 2명 포함돼 있었다. 이날 이천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주변에서 만난 희생자 가족들과 동료들의 말을 들어보면 희생자들 중엔 고정된 일자리를 잃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특히 많았다.

희생자 김아무개(49)씨의 형은 이날 <한겨레>와 만나 “동생이 다니던 공장이 2월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문을 닫았다. 그래서 일거리가 필요해 일용직으로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녀 셋을 둔 가장이었던 김씨가 가계를 이어가기 위해 급히 구한 일터에서 이 같은 일을 당한 것이어서 안타까움은 더 컸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뭐든지 남과 잘 나눠 가졌다”고 동생을 기억한 김씨의 형은 “여기서 죽은 사람들은 다 돈 없는 이들”이라며 슬픔에 잠겼다.

피해자 가운덴 유독 가족이 함께 변을 당한 이들이 여럿이었다. 코로나19 등으로 불안정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늘면서 가족을 따라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모인 모가실내체육관에서 만난 강아무개(44)씨는 동생과 매제가 모두 피해를 당했다. 삼남매의 맏이인 강씨는 여동생의 남편인 매제(35)가 희생된 사실을 확인했고, 막내인 남동생(31)은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우레탄 발포 작업을 오래 해온 매제의 작업 현장에 막내가 함께 나섰다는 것이다. 강씨는 “부산의 전자제품 매장 등에서 일한 동생은 이곳에서 일을 한 지 2주밖에 안 됐다. 워낙 두 동생이 자주 교류하며 가깝게 지냈다”며 눈물을 삼켰다.

아버지(61)와 아들(34)이 함께 참사 현장에서 화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2층에서 설비공사를 하다 뛰어내린 아들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옮겨졌으나, 아버지는 아직까지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또 다른 희생자 가족도 “사촌 등 가족 구성원 2명이 이번 참사로 희생됐다”고 말했다.

희생자 가운데엔 3명의 이주노동자도 포함돼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2명과 중국에서 온 1명이다. 칭다오에서 형제들 중 일부가 함께 한국에 와서 일했다는 희생자의 가족은 “5남매 중 막내를 이번 사고로 잃었다. 막내는 오는 5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미뤘었다”며 흐느꼈다.

이천/채윤태 전광준 기자 cha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