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큰불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당국, 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이천/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30일 오후 2시, 38명의 희생자를 낸 경기도 이천 물류센터의 시공사 대표 이아무개씨가 화재 현장 건너편에 있는 모가체육관 단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공사 대표가 나서 사고 경위와 대책을 설명할 것이라는 예고에, 점심도 거른 채 기다렸던 유가족 수십명은 차분한 모습으로 이 대표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화재 발생 하루 만에 모습을 드러낸 시공사 대표 이씨는 1분여를 단상에 엎드린 채 잘못했다는 말만 반복하다 회사 직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곧바로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유가족들은 이씨를 쫓아가며 울부짖었다. “우리 아들이 왜 죽었는지 말이라도 하고 가!” 체육관을 나선 이씨는 멀리 가지 못한 채 체육관 바로 옆 잔디밭에 실신하듯 쓰러졌다. 결국 그는 18분여 만에 119구급차에 실려 현장을 빠져나갔다. 대신 시공사의 다른 관계자가 유가족들을 따로 만나 사고 경위 등을 설명했다.
시공사는 이번 참사를 미리 막을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부터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총 여섯차례 심사를 받아 이 중 세차례 ‘화재위험(발생)’ 주의를 받았다. 공단은 공사 시작 직전인 2019년 3월25일 시공사에 ‘마감공사 저온 및 냉동창고의 우레탄 뿜칠(폼칠) 작업 시 시공단계별 작업안전계획 보완 작성 등 4건 보완요청’을 했다. 2019년 4월9일에는 ‘용접·용단 작업 중 인화성물질, 잔류가스 등에 의한 화재·폭발방지계획을 구체적으로 보완 작성 등 조건부 사항 5개’를 걸고 ‘조건부 적정’으로 판단했다.
이날 오후 늦게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합동분향소가 마련되자, 호소할 곳 없던 희생자 가족들은 주저앉아 통곡했다. “왜 그랬냐”고 울부짖거나 이제는 곁에 없는 망자의 이름을 부르며 무너졌다. 저녁 8시께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8명이 합동분향소를 찾아 분향하고 화재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력, 한국가스안전공사, 고용노동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 7개 기관은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한 현장 감식을 벌였다.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가 건물 지하 2층에서 우레탄 작업으로 생긴 유증기가 어떤 불꽃을 만나 폭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요섭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화재가 시작된 지하 2층) 바닥면에 화재 잔해물이 너무 많아서 발굴작업을 실시했고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경찰은 1일 2차 감식을 이어갈 계획이다.
경찰은 아울러 시공사 등을 대상으로 한 수사에도 착수했다. 125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꾸린 경찰은 화재 이후 시공사 등의 관계자 6명과 목격자 11명 등 모두 28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고, 시공사 등의 핵심 관계자 15명의 긴급 출국금지 조처를 한 상태다. 아울러 이날 오후 공사를 발주한 한익스프레스와 시공사, 감리업체, 설계업체까지 모두 4개 업체를 상대로 동시에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검찰도 윤석열 총장이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받는 등 수사 의지를 다지는 분위기다. 대검찰청은 전날 형사부를 중심으로 사고 관련 수사를 담당하는 일선 검찰청인 수원지검 및 수원지검 여주지청 사이에 실시간 지휘 체계를 만들고 관련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수원지검은 조재연 수원지검장을 본부장으로 검사 15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꾸렸다.
이천/전광준 채윤태 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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