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재학 <청주방송>(CJB) 피디 영정사진. 유가족 제공.
“방송을 볼 때마다 형처럼 열악한 상태에서 고생하는 스태프가 얼마나 많을까 짐작하게 돼 마음이 무거워요.”
지난 2월 방송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세상을 떠난 이재학 <청주방송>(CJB) 피디의 동생 이대로(37)씨는 13일 이렇게 말했다. 이날은 이 피디가 숨진 지 100일째를 맞은 날이다. 이씨는 “형을 잃은 뒤에야 그가 정규직 피디가 아닌 프리랜서 피디였던 걸 알게 됐다”고 했다. 14년차 피디였던 이 피디는 2018년 4월 자신과 동료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회사에 항의했다가 해고됐다.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싸웠던 이 피디는 투쟁 1년9개월 만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이 피디는 2004년 청주방송에서 조연출로 일을 시작했다. 조연출에서 벗어나 피디가 된 뒤에도 처우는 열악했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했지만 급여는 3분의 1 수준이었다. 회사에서 쪽잠 자기를 밥 먹듯 해서 ‘라꾸라꾸(간이침대)’라고 불릴 정도였지만 14년차가 되고도 급여는 월 160만원 수준이었다. 조연출과 작가의 급여는 더 적었다. 동료들의 열악한 처우를 견디다 못한 그는 회사에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돌아온 답변은 ‘프로그램 하차’였다. 법원에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마저 패소한 뒤 그는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엔 “억울해 미치겠다. 왜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나”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 2월27일 사쪽과 언론노조, 유가족 등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는 이 피디의 ‘지난 14년’을 되짚어가고 있다. 이씨는 “진상조사위가 출범하고 나서 형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자료조사를 꼼꼼히 했는데, 형이 정규직보다 2~3배나 많은 일을 해온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조사위에서는 조사를 바탕으로 가해자인 청주방송 쪽에 대한 처벌 수위를 제시하고, 청주방송 내 비정규직 실태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 피디는 떠났지만 그가 대변하고자 했던 스태프들의 삶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씨는 “부당하게 해고된 형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형이 바랐던 방송계 비정규직 처우를 정상화하기 위해 연대의 손을 내밀 생각이다. 그는 “방송계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형의 이름으로 형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인 방송계 비정규직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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