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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텔레그램 n번방 뒤에 ‘불법 도박방’ 있었다

등록 2020-05-15 05:00수정 2020-05-15 09:40

[n번방과 불법도박, 범죄의 공생] ①불법도박 관문 된 성착취 영상
소라넷 후예들과 n개의 n번방
80여개 사이트 대부분 ‘도박 제휴’
하루 1천여명 방문…누적 수만명
‘떴다방’처럼 운영하며 단속 피해
“사장님, 이 주소로 들어오시면요…”
‘보안’ 강조 도박 사이트 가입 권유
포인트 등급따라 다운로드 권한 줘
“굉장히 쉽고 잘 통하는 영업 방식”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박사’ 조주빈(24)씨와 ‘갓갓’ 문형욱(24)씨가 검거됐다. 이제 잔혹한 디지털 성착취 범죄는 사라질까. <한겨레>는 지난해 11월 이후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성착취 실태를 탐사(▶바로 가기)하며 디지털 성착취 문제가 이미 체계화해 있고, 성착취 영상을 매개로 수익을 올리는 불법도박의 세계가 착취 구조의 한 축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래도 저래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10대와 20대들은 불나방처럼 불법도박을 쫓고 있다. 그 ‘충동의 관문’에 성착취 영상이 있다. <한겨레>는 10대와 20대들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와 불법도박 산업의 공생 관계를 추적해, 성착취 영상이 불법도박의 관문이 되고 불법도박이 또 다른 범죄의 시작점이 되는 실태를 4회에 걸쳐 탐사한다.

“사장님, 저희 페이지 들어오시면요. ‘ㅇ’ 사이트랑 ‘ㄴ’ 사이트 배너가 보이실 거예요. 가입코드는 ‘△△△△’랑 ‘××××’인데요. 일단 두 곳 다 가입하신 다음에 마음 가는 곳에 베팅하세요. 모두 메이저고 저희랑 제휴 맺은 곳이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텔레그램으로 대화를 시작하고 불법도박을 권유받기까지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ㅇ’ 사이트랑 ‘ㄴ’ 사이트는 사설 토토에 베팅할 수 있는 불법도박 사이트다. 자신이 권유해서 가입했다는 걸 알리는 가입코드와 함께 베팅을 권한 이는 성착취물 공유와 불법도박이 공생하는 사이트 ‘다○걸’의 관리자다.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이 사이트 내부의 게시판이나 배너를 통해 불법도박 사이트 회원 가입을 유도한다. 이 사이트들은 검색에 걸리지 않는다. 도메인 주소를 알아야만 접근할 수 있다.

국내 최대 ‘성착취 포털’이었던 ‘소라넷’은 폐쇄됐고, 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을 계기로 경찰 등이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힘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의 성착취물 공유는 또 다른 공간에서 여전히 창궐하고 있고, 성착취물을 매개 삼아 사람들을 불법도박의 세계로 이끄는 일까지 벌어진다. 14일 <한겨레>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를 통해 확인한 결과, 80개가량의 사이트에서 성착취물이 공유되고 있었는데, 대부분 불법도박 사이트와 공생 관계였다. 이 사이트들에는 2천여개에서 수만개의 성착취물이 공유되고 있다. 소라넷이나 웹하드처럼, 국적별로 카테고리를 분류한 성착취물 게시판들 사이에 불법도박으로 이끄는 ‘스포츠’ 카테고리를 넣어뒀고, 불법도박 사이트 배너를 덕지덕지 붙여놨다.

<한겨레>는 지난 4일, 이용자로 가장한 뒤 텔레그램을 통해 ‘다○걸’ 관리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 관리자는 “우리와 계약한 도박 사이트에 가입하면 그쪽 운영자에게 잘 말해서 (도박) 포인트를 챙겨주겠다. 운영자가 실제로 내 지인”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우리 사이트 포인트를 도박 사이트 포인트로 교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규정엔 없지만 그 정도는 해드릴 수 있다”거나 “도박 사이트를 지인에게 소개해주면 우리 사이트 포인트를 넣어주겠다. 레벨이 올라가면 영상 다운로드도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스트리밍해서 보는 성착취물을 경품 삼아 불법도박 사이트 가입을 유도한 뒤, 도박 포인트를 쌓으면 다운로드까지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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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소라넷 수십개 버젓이 운영

2016년 4월7일 서울지방경찰청은 네덜란드와 국제 공조수사를 벌여 현지에 있던 소라넷 핵심 서버를 압수수색해 폐쇄했다. 소라넷은 불법촬영물, 보복성 영상물 등을 공유한 포털로 회원 수는 100만명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소라넷의 후예들은 변함없이 활동하고 있다. ‘도박 사이트’, ‘성인 사이트’, ‘업소 사이트’, ‘웹툰 사이트’ 등 불법 사이트의 도메인 주소를 모아놓은 중개 포털에 접속하면,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의 이름과 도메인 주소를 수십개 확인할 수 있다.

도메인 주소를 타고 들어가면 ‘유사 소라넷’ 사이트가 80여개 등장한다. 이 사이트들에선 여성의 신체를 불법촬영한 사진, 불법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성관계 영상 등이 쉽게 발견됐다. 특히 한 사이트에는 ‘엔(n)번방, 박사방 영상 무삭제판, 엔번방 유출 영상’ 등의 제목이 올라와 있었는데, 이 영상은 이 사이트의 한 카테고리 인기 게시물 3위에 올랐다.

딥페이크(특정 인물의 얼굴과 몸 등을 합성하는 기술) 영상을 ‘걸그룹’, ‘여배우’, ‘여자 아나운서’, ‘스포츠 스타’ 등으로 나눠 게시한 곳도 있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촬영된 것으로 의심되는 영상도 보였는데, 아예 이런 성착취물만 따로 카테고리를 만든 사이트도 확인됐다. 이런 사이트에는 하루 1천~2천명쯤이 방문했고 누적 방문자가 15만명에 이르는 곳도 있다.

‘유사 소라넷’ 사이트는 ‘떴다방’처럼 운영된다. 수시로 도메인 주소를 바꿔가며 단속을 피하고 바뀐 주소는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안내한다. “만약 주소가 변경될 시, 주소는 2~99 숫자순으로 진행됩니다”라며 사이트 공지사항에 바뀔 주소를 미리 알리는 곳도 있다. 도메인 주소가 미국 애리조나나 파나마 등 국외에 등록된 경우도 여럿이다. 아울러 암호화한 통신규약(https)을 통한 보안 접속이 차단당할 경우, 차단을 우회해 사이트 접속 방법을 알려주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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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넷의 후예들, 불법도박을 권하다

유사 소라넷 사이트에서 공통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불법도박 배너 광고다. 사이트 상단과 하단에는 ‘철통보안 고액유저 최적화 놀이터’, ‘안전 메이저 놀이터’, ‘자금력 1위 스포츠 카지노’ 등과 같은 홍보 문구와 가입코드를 내건 사설토토, 파워볼, 사다리 광고가 번쩍거렸다. 성착취물 공유 ‘ㅇ’ 사이트에서는 불법도박 사이트 두 곳이 제휴업체로 홍보됐다. ‘국내 유일 온라인 카지노 슬롯머신 최강자와 함께 잭팟과 연타의 짜릿함을 즐겨보세요. 신규가입 5만P(포인트), 신규 첫 입금 20%, 매일 첫 입금 10% 드립니다’, ‘기존의 오토 베팅이 아닌 신개념 오토 베팅입니다. 수익을 기본으로 하는 오토 베팅!’이라는 광고 문구가 게재돼 있었다.

일부 사이트에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농구 경기의 승부 결과를 예측한 분석 글이 하루에도 수십건 성착취 영상과 함께 올라왔다. 또 다른 사이트에도 ‘스포츠’ 카테고리를 따로 걸어뒀는데, 클릭하면 사설토토 관련 사이트로 이동한다. 한 불법도박 사이트 홍보팀 직원은 <한겨레>와 만나 “성착취 영상은 아직 도박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던지는 미끼다. 성착취 영상 사이사이에 도박 관련 주소를 뿌려서 성착취 영상을 보려는 사람 중에 더 센 자극을 찾는 이들을 도박 사이트로 넘어오게 하는 방식이다. 굉장히 쉽고 잘 통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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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으로 본 성착취와 불법도박의 공생

성착취와 불법도박 산업의 긴밀한 공생 관계는 판결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겨레>가 2017년 5월부터 지난 1월까지 나온 관련 판결문 8건을 살펴본 결과, 성착취 영상은 그동안 수차례 불법도박 사이트 가입을 유도하기 위한 경품 구실을 했다.

2018년 7월26일 청주지법 형사4단독 이지형 판사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과 도박개장 방조 등의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을 보면, ㄱ씨는 2018년 1월 파일공유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여성용 화장실을 불법촬영한 영상을 도박 사이트 홍보 글과 함께 게재했다. 또 같은달 불법도박 사이트 운영자로부터 사이트를 홍보해 회원 가입을 시켜주면 1명당 5천원에서 1만원가량을 받기로 하고 도박 사이트 홍보 문구가 들어가도록 편집한 성착취 영상을 게시해 150여만원을 챙긴 혐의도 받는다.

불법촬영물을 제공하고 도박 포인트를 대가로 받은 사례도 있다. 2018년 7월20일 대전지법 형사4단독 이병삼 판사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공갈미수,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ㄴ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ㄴ씨가 에스엔에스 오픈채팅방에 접속해 2017년 2월부터 3월까지 청소년 성착취 사진과 영상 39편을 유포하고 이익을 취한 혐의인데, ㄴ씨는 일일 4만원에 상당하는 도박 포인트를 대가로 받았다. <한겨레>가 만난 불법도박 업계 관계자들은 “성착취 영상은 그 자체로는 큰돈이 되지 않는다. 성착취 영상은 매개일 뿐 큰 수익은 불법도박 사이트를 통해 발생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예나 전 ‘디지털 성범죄 아웃’(DSO) 대표는 “아무리 성착취물이 공유되는 대화방과 사이트를 단속한다고 해도 수익원이 있고 소비 계층이 존재하면 형태를 바꿀 뿐 디지털 성범죄는 계속될 것”이라며 “애초에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니 몇년 정도 징역 사는 걸 감수하더라도 유사 소라넷 사이트들을 통해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승희 한사성 대표는 “한사성이 모니터링한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에도 도박이나 성매매 등 불법 사이트의 배너 광고가 걸려 있었다. 사이트 운영을 중한 범죄로 보고 처벌하는 것과 더불어 광고를 걸어주는 불법 사이트도 추적과 처벌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지지동반팀(02-2275-2201, digital_sc@hanmail.net), 여성긴급전화 136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02-735-8994, www.women1366.kr/stopds),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02-817-7959, hotline@cyber-lion.com)에서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02-312-8297)에서도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 상담과 법률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민제 김완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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