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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피해자가 베트남인이라고 한국 정부 책임 면제될 수 없어’

등록 2020-05-16 06:47수정 2020-05-22 20:02

[토요판] 인터뷰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소송 대리인 집담회

퐁니마을 피해자 응우옌티탄
한국 정부에 첫 국가배상 소송
바람은 “나는 진실을 원합니다”
시민평화법정 승소로 용기 내

‘미안해요 베트남’ 20년만의 성과
한국 정부 여전히 학살 인정 안 해
퐁니사건 피해자 사진, 증인 진술
주월미군 감찰보고서에 남아 있어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티에프(TF) 관계자들이 4월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한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이 영상통화를 통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qiue@hani.co.kr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티에프(TF) 관계자들이 4월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한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이 영상통화를 통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qiue@hani.co.kr

▶ 한국군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가 ‘미안해요 베트남’ 캠페인을 시작으로 공론화된 지 20년이 흘렀다. 한국 정부는 여전히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퐁니마을 사건 피해자 응우옌티탄은 지난 4월21일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에서 진실이 밝혀질까. 그의 소송을 대리하는 민변 변호사들을 만났다.

2015년 7월 베트남 다낭의 한 바닷가에 한국에서 온 세명의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이날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진행한 베트남 평화기행 마지막 날이었다.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안구 퐁니마을에 세워진 위령비 앞에서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인 당시 54살 응우옌티탄을 처음 만난 이들은 늦은 밤까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되물었다.

1968년 2월 8살이던 응우옌티탄은 집 주변에서 한국군 제2여단(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이 쏜 총에 왼쪽 옆구리를 맞아 중상을 입었다. 같은 날 1중대 소속 군인들은 퐁니마을 주민 70여명을 한곳으로 불러 총으로 쏘아 죽였다. 이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80여곳에서 발생했고 민간인 9천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됐다.

귀국 후 이들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및 성폭력 관련 민변 모임’의 진행 방향을 이렇게 적었다. ‘민간인 학살 피해자 증언 수집’ ‘국가배상 소송 검토’ ‘특별법 초안 작성’. 한국 변호사 14명이 지난 4월21일 원고인 응우옌티탄을 대리해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약 5년이 걸렸다. 왼쪽 옆구리에 학살의 상처가 아직 남은 그가 가해 군인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 대신 한국 정부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확인해달라는 국가배상 소송을 낸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진실을 원합니다.”(Tôi muốn sự thật) 그가 민사재판에서 재판부가 판결 이유를 판결문에 무조건 밝혀야 하는 법정 최소 소송가액인 배상금 3천만100원을 청구한 이유이기도 했다.

“피해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에 따라 가해자가 따라야 할 규범의 내용이나, 피해자가 느끼는 비통함의 크기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응우옌티탄이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법에 낸 국가배상 소송 소장에 적힌 내용이다. 피해자가 베트남인이라 해서 한국군이 벌인 불법행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책임이 결코 면제돼선 안 된다는 뜻이다. 같은 달 23일 서울 서초구의 한 법무법인에서 권민지·김남주·박진석·이가영·이선경·임재성 변호사 등 소송대리인 7명을 만나 자세한 뜻을 물었다.

참전군인 악마화 아니야

―베트남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건 처음이다. 어떻게 소송대리인에 참여하게 됐나?

박진석(이하 박) 1990년대 후반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한겨레21>의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어렴풋이 법률가가 되면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루고 싶었는데, 2015년 민변이 베트남 평화기행을 간다고 해서 따라갔다. 하지만 우리는 민간인 학살에 대해 무지했다. 미군이 베트남 꽝응아이성에서 민간인 500여명을 학살한 ‘밀라이 학살’ 사건의 피해자를 만났을 때 나는 피해자에게 ‘베트남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줬냐’고 물었다.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전에 군대를 파병한 해국 국민이 와서 피해자들에게 ‘너희 국가가 잘해주냐’고 물은 거다. 그만큼 나는 제삼자 입장에 있었다.

임재성(이하 임) 미군의 밀라이 학살 사건 피해자와 대화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소송은 고민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대화를 하면서 ‘우리가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피해자를 대리해 한국 법정에서 소송해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일제강점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내 소송과 비슷한 구조로 말이다. 피해자는 소송을 생각해봤다고 선뜻 대답하지 못했는데, 이후 인터뷰와 마을 방문이 갑자기 취소됐다. 한국 변호사가 와서 이런 질문을 한다는 사실이 베트남 공안에 알려진 뒤 우리가 타고 있던 버스에도 공안 경찰이 탔다. 당시 유일하게 우리를 만나겠다며 우산을 쓰고 위령비 앞으로 나온 사람이 응우옌티탄이었다. 그가 한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2015년 4월 한국 국회에서 피해 사실을 처음 증언한 뒤였다.

김남주(이하 김) 미군의 밀라이 학살 사건의 피해자에게 소송 얘기를 했을 때 피해자는 “소송할 수 없다. 베트남 당과 국가는 ‘과거를 닫고 미래로 가야 한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불행한 과거가 있었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동맹군이었던 미국·한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경제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는 거다. 행사가 끝나고 개인적으로 다시 물었다. “당과 국가가 막지 않는다면 소송을 하고 싶냐”고 묻자 “당연히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 법정에서는 전쟁 중 정부가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책해주는 법리가 있어 패소 가능성이 크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법리적으로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응우옌티탄에게도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권하기도 어려웠다.

―이번 국가배상 소송의 의미는 무엇인가?

2000년 한국 시민사회의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부터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과 한국 시민사회가 연대한 지 약 20년 만에 나온 하나의 성과다. 우리가 응우옌티탄과 국가배상 소송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건 2018년이다. 그해 4월 진행한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하 시민평화법정) 원고로 한국에 온 응우옌티탄이 베트남으로 돌아갈 무렵이었다. 시민평화법정에서 승소해 용기를 얻은 그는 실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싶다고 했다.

시민평화법정에서 피고인 한국 정부 쪽 소송대리인을 했다. 참전군인들은 내게 자신들을 대변해달라며 자료를 보내줬다. 그들은 억울하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베트남에 가라고 해서 갔고, 싸우라고 해서 싸웠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 당시 민간인을 학살한 참전군인이라는 집합명사로 가해자 취급을 받으니까 이전에 다소 과격한 행동도 했던 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소송하는 이유는 참전군인에게 악마적인 이미지를 씌우려는 게 아니다. 미군의 밀라이 학살 사건 때도 당시 지휘관이던 윌리엄 캘리 중위가 종신형을 선고받으며 이 사건과 무관한 참전군인들은 명예를 회복했다. 반면 퐁니 사건은 현재까지 그 어떤 진상조사나 법적 책임도 논의되지 않았다.

미군감찰보고서에도 남은 피해 기록

―국가배상 소송의 제도적인 한계는 무엇인가?

전쟁범죄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마을을 모두 태우고 희생자들을 땅에 묻는다. 한국 시민사회가 사법적인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수준으로 피해 증거를 확보한 건 퐁니 사건이 사실상 유일하다. 4월3일 국회에서 발의한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 군대에 의한 피해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 등을 통해 정부가 진상조사에 나서야만 온전한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퐁니 사건의 경우 예외적으로 피해자·목격자·가해자들의 진술이 확인돼 국가배상 소송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50여년 전 사건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지금의 소송 방식으로는 진상 규명이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 시민평화법정의 다른 원고인 하미 사건의 피해자는 증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소송에 참여할 수 없었다.

진실을 밝힌다면서 왜 돈 달라는 소송을 했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런데 현행법상 진실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은 없다. 한국 정부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확인받기 위해 한국 군인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소송에 대한 편견과 오해도 있을 거다. 왜 베트남도 미국도 아닌 한국이냐는 거다. 응우옌티탄은 한국군 해병 청룡부대 제1대대 1중대 소속 성명불상의 군인들에게 총격을 당해 배에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베트남전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느냐가 아니라 피해자가 당한 피해를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문제다.

이선경 퐁니 사건 당시 8살이었던 응우옌티탄의 진술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경험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사건 당일 동생이 어디에 총 맞았고, 자신은 총에 맞은 뒤 어떻게 도망쳤는지 구체적으로 말한다. 응우옌티탄 오빠와 주민들의 진술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이들의 진술이 베트남 디엔반현 문화통신청 자료집과 주월미군 감찰보고서에도 있다. 이번에 주목해서 본 건 주월미군 감찰보고서다. 당시 베트남에 있던 미군이 이 사건을 감찰하고 쓴 보고서인데 미군 상병이 사건 당일 찍은 피해자들의 사진들도 있다. 보고서에는 동맹군인 한국군에 대해 거짓 진술을 할 이유가 전혀 없는 남베트남 민병대원의 진술도 있다.

―국가배상 소송의 피고가 될 한국 정부 입장은 어떤가?

‘100명의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고 지시했던 당시 파월한국군 사령관인 채명신 장군의 주장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당시에도 채 장군은 퐁니 사건과 한국군 사이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한국군으로 위장해 민간인을 죽였다는 거다. 하지만 미 해병대원 실비아 중위가 퐁니 마을에서 총격전이 일어나는 것을 봤고 마을 위로 연기가 나는 것도 봤다. 그는 얼마 뒤 남베트남 민병대원이 총에 맞은 아이 2명과 총검에 팔을 크게 다친 여성 한명을 데리고 왔고, 그들은 ‘한국군이 자신들을 죽이려 했다’고 진술했다는 기록이 있다.

권민지 한국 대통령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과’라고 볼 수 있는 입장 표명을 한 적은 없다. 지난해 4월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 103명이 한국 청와대에 공식 입장 표명 등의 내용이 담긴 청원서를 제출한 뒤 피해자들에게 전달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도 결국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당시 1중대 병사의 증언 기다려

―원고인 응우옌티탄은 52년이라는 고통스러운 긴 시간을 건너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이번 소송을 계기로 피해자들이 공식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민평화법정의 또 다른 원고인 하미 사건의 피해자는 당시 한국에 올지 말지 상당히 고민했다. 한국 참전군인들이 2015년 처음 방한한 응우옌티탄에게 위협적이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가족은 ‘한국에 가면 죽는다’며 말렸다. 하지만 하미 사건의 피해자는 ‘그래도 가야 한다’며 왔다. 사과에 대한 염원이 절한 거다.

당사자의 강력한 의지 없이 타국에서 진행되는 소송을 할 수 없다. 베트남 정부와 피해자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 공식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베트남 정부가 아니라 피해자다. 김 관련 증거를 수집했고 그 증거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해석하고, 더 잘 다듬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사이 법정에서 증언해줄 소대장 한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퐁니 사건이 발생한 지 52년이 지났다. 더 지체할 수 없다. 생존자도 많지 않지만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도 이제 80살이 넘었다.

이가영 우리가 국가배상 소송을 청구하고 책임을 물으려는 대상은 한국 정부이지 참전군인 개인이 아니다.

1중대 병사로서 아직 살아 있고 이 상황에 대해 알고 있다면 우리에게 말해도 좋고, 법정에서 말해도 좋다. 어쩌면 참전군인들도 마음이 불편했을 수 있다. 이제라도 짐을 덜어주고 싶다.

이선경 피해자와 가해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른 시각, 다른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소장 말미에 적은 내용이다. 만약 피해자가 한국 국민이었다면 우리 국민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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