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연대의 회계 부정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들이 21일 오후 길원옥(92) 할머니가 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쉼터인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을 압수수색한 뒤 압수물품을 들고나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회계부정 의혹 등을 수사하는 검찰이 전날 정의연 사무실 등을 밤새 압수수색한 데 이어 21일 길원옥(92) 할머니가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쉼터까지 압수수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의연 쪽이 건강이 좋지 않은 고령의 길 할머니를 우려해 검찰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임의제출하겠다고 밝혔는데도 검찰이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부장 최지석)는 이날 서울 마포구에 있는 ‘평화의 우리집’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오후 2시30분부터 정의연 쪽 변호인 입회 아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해 상자 4개 분량의 압수물을 확보한 뒤 오후 4시께 압수수색을 마쳤다.
정의연이 명성교회로부터 무상임대로 지원받아 운영하는 쉼터에는 지난해 1월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한 뒤 길 할머니 혼자서 거주하고 있다. 정의연은 마포구 정의연 사무실과 인근에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의 공간이 좁아 단체 운영과 관련된 자료를 쉼터 지하실에 보관해왔다. 검찰은 이날 “애초 쉼터는 압수수색 집행 대상은 아니었으나, 일부 관련 자료가 쉼터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돼 추가 압수수색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연은 강한 유감 표명을 했다. 정의연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어 “정의연이 검찰의 압수수색에 성실히 협조한 것은 공정한 수사와 신속한 의혹 해소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변호인들은 쉼터에 있는 자료를 임의제출하기로 검찰과 합의했다. 하지만 길 할머니가 계시는 쉼터에 영장을 집행하러 온 검찰의 행위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 피해자들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며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정의연 관계자는 “사무실 압수수색 때도 온갖 자료를 제공했고, 어떤 자료는 챙겨보라고 우리 쪽에서 먼저 제공하기도 했다. 쉼터에 있는 자료 역시 우리가 먼저 보관 사실을 밝혔다”며 “그런 상황에서 길 할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 인권 보장까지 요청했는데도 길 할머니 집까지 압수수색했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낸 조영선 변호사는 “법 집행관 입장에서 보면 할머니에게 압수수색을 하는 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고령의 할머니 건강이 문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임의제출도 충분히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정의연 쪽에서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밝혀왔지만, 검찰은 영장을 발부받았고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건 정의연 쪽만의 주장일 수 있다”며 “정의연 쪽 변호인이 오는 것을 기다려 할머니가 거주하시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충분히 협의했다”고 말했다.
정의연은 이틀에 걸친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지난 15일 추진하겠다고 했던 외부 회계감사 절차도 밟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정의연은 이날 입장문에서 “외부감사 절차를 추진 중이었으나 이틀간 무리하게 진행된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인해 불가능하게 됐다”며 “또 회계 관련 자료들이 압수된데다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회계 등 관련 사항에 대한 언론의 질의에 답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전날 오후 검사 2명과 수사관 10명을 보내 정의연 사무실과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밤새 압수수색했다. 12시간에 걸친 압수수색은 이날 새벽 5시30분께 종료됐다.
채윤태 배지현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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