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항공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해고돼 복직을 요구하며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 교통 폐회로텔레비전(CCTV) 철탑 위에서 355일 동안 고공노성을 이어 온 김용희씨가 29일 오후 삼성과 합의문을 작성한 뒤 지상에 내려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울 강남역 삼성 사옥 앞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여온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29일 농성을 중단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삼성의 사과와 복직을 요구하며 철탑에 오른 지 355일 만에 삼성의 사과를 받고 합의에 이른 것이다.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저녁 김씨가 농성 중인 강남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달 29일 (삼성과) 협상을 시작해 한 달째인 28일 오후 6시 협상이 타결됐다. 80년 ‘무노조 경영’을 이어온 삼성에서 노조를 설립하려 했단 이유만으로 온갖 인권유린과 불법해고를 당하고 25년간 싸워온 해고노동자가 거대재벌그룹 삼성과 싸워 승리했다”고 밝혔다. 김용희씨는 이날 오후 7시께 공대위의 환영 속에 사다리차를 이용해 철탑에서 내려왔다. 삼성항공에 노조를 만들려다 1995년 해고된 김씨는 지난해 6월10일 △노조 설립 등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한 사과 △명예복직 △임금 보상을 삼성에 요구하며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이어왔다.
삼성항공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해고돼 복직을 위한 고공농성을 벌여온 김용희씨가 29일 농성을 접고 355일 만에 서울 강남역 철탑에서 내려오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고공농성을 마치기 전 김씨는 철탑 위에서 “저는 영웅으로 철탑에 오른 게 아니라 해고노동자로서 너무 억울하고 아픈 마음에 오르게 됐다.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해고노동자의 삶이 비참하게 무너지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사회에 환기시키고 싶었다”고 지난 투쟁을 돌아봤다. 김씨의 회고에 동료 노동자들은 서로 등을 두드리며 눈물을 닦았다. 그가 ‘삼성피해자공동투쟁’이라고 적힌 깃발을 흔들자 곳곳에서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김씨는 지난 1년 가까이 그를 지켜준 노동자 동료들을 돌아보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철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죽음이 생각날 때는 연대해주는 이들의 눈에 눈물나게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버텨왔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날 오후 “김용희씨에게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고 김씨 가족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며 공식 입장을 밝혔다. 또 “김용희씨의 건강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보다 겸허한 자세로 사회와 소통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합의 성사를 위해 애쓰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김씨의 고공농성은 끝났지만 김씨와 동료들은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의 노동자 탄압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김씨를 포함해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씨,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 고 최종범·염호석씨 등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없었다. 김씨는 “기업이 손쉽게 정리해고의 칼을 휘두르고 사람 목숨 값이 기계 부품 값보다 못한 사회를 계속해서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공농성과 단식농성 등으로 건강이 약해진 김씨는 기자회견 뒤 병원으로 향했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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