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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악의 평범성’ 활용하는 ‘좀비 정치’ 막으려면

등록 2020-05-30 15:03수정 2020-05-30 15:16

[토요판] 표창원의 여의도 프로파일링
⑨ 좌표 찍는 혐오정치 메커니즘

정치인 등 공인이 은근히 던지고
인플루언서가 노골적으로 증폭해
평범한 이들의 폭력행동 조장하는
‘좀비 정치’ 메커니즘, 이미 세계화

아렌트 발견한 ‘악의 평범성’ 개념
밀그램은 실험 통해 규명하고 증명
‘권위에 대한 복종’ 심리 악용한
‘좀비 정치’는 부메랑 돼 돌아와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등이 지난해 6월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한 ‘일베 폭식 투쟁 가해자 고소·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등이 지난해 6월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한 ‘일베 폭식 투쟁 가해자 고소·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편은 ‘선’, 상대방은 ‘악’으로 규정하고 ‘다름’은 ‘틀림’으로 인식하며 사실관계 확인이나 맥락과 입장 등은 무시한 채 상대방을 무조건 공격하고 물어뜯는 ‘좀비 정치’. 지난 20대 국회를 최악으로 내몬 주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단 20대 국회만의 문제, 정치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품격, 논리, 근거, 존중, 배려 등의 덕목과 가치는 내팽개치고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향해 잔혹하고 가학적인 공격을 퍼붓는 것이 정치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한국 정치에서 활개쳐왔다. 약자, 피해자, 소수자에게 막말과 조롱을 퍼붓고 자신이 숭배하는 정치 권력자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고는 ‘열심히 일했다’, ‘큰 기여를 했다’고 자랑하는 행태가 횡행하다 보니 정치 때문에 다치는 사람도 많고 정치를 외면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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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퍼져 있는 ‘좀비 정치’

사실 ‘좀비 정치’는 오늘 대한민국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2016년 6월16일 영국 웨스트요크셔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일주일 앞두고 탈퇴 반대를 주장하던 노동당 소속 여성 하원의원 조 콕스가 주민 간담회를 열던 자리에서 총을 맞고 사망한 것이다. 범인은 유럽연합 탈퇴를 찬성하는 극우파 소속의 52살 남성 토미 마이어. 그는 범행 현장에서 ‘영국이 우선이다’(Britain First)라고 외쳤고, 법정에서는 이름을 묻는 질문에 이름 대신 “배신자에게 죽음을, 영국에 자유를!”이라고 답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2019년 3월에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한 이슬람 사원에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의 백인 우월주의자 브렌턴 태런트(28)가 총기를 난사해 50명이 사망했다. 이 끔찍한 인종차별 테러로 세계가 충격과 애도에 빠져 있을 때, 극우 성향의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상원의원 프레이저 애닝은 이 사건이 (피해자인) ‘이슬람 이민자들 탓’이라는 망언을 해 공분을 샀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과 미국에서도 이민자, 유색인종, 성소수자 등을 차별하고 혐오하며 입장과 견해가 다른 대상을 향한 무자비한 공격이 빈발하고 있다.

정치적 견해나 입장 차이를 이유로 폭력을 가하는 정치적 테러는 유사한 메커니즘을 보인다. 우선, 널리 알려진 정치인, 정당, 학자, 종교인 등 이른바 공인의 ‘계산된’ 혐오 발언이 나온다. 둘째 단계로 신문·방송 등 대중매체가 이를 보도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많은 구독자를 가진 ‘인플루언서’가 같은 취지와 맥락의 내용에 자극적이고 과장된 표현이나 허위 사실 등을 교묘히 섞어서 전파한다. 셋째 단계에서, 이에 자극받은 악플러들이 관련 기사, 영상, 멘션, 게시물 등을 퍼나르면서 분노와 공격성을 공유하고 증폭시킨다. 그렇게 되면 공격 대상자로 ‘좌표’가 찍힌 사람은 무차별 온라인 공격에 노출된다. 마지막으로, 평소 이들을 신뢰하거나 자신과 성향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던 많은 사람이 유사한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하면서 일부가 왜곡된 정의감에 사로잡혀 ‘나도 뭔가 기여를 하고 싶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물리적 폭력 행사에 이르게 된다.

최초 발언을 내뱉는 정치인은 우회적 신호를 보내지만, 말단 현장에서 명예훼손을 하거나 폭력 등 혐오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자신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대상에게 가혹한 공격을 가하는 좀비의 모습이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의 ‘혐한 선동 정치’도 유사한 사례다.

평범한 시민을 무자비한 좀비로 만드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주의 군경이 행한 잔악한 반인륜 범죄에 경악한 사람들이 가졌던 질문이다. 나치는 ‘순수 아리안 혈통 백인 주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유대인, 성소수자, 정신질환 병력자 등 총 600만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을 학살했다. 영장, 기소, 재판 등 정식 사법절차 없이 마구 체포하고, 수용소에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생체실험 등에 이용하다가 집단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이런 단계별 행위에 가담한 군인, 경찰, 공무원, 그리고 ‘유겐트’ 소속 어린이와 청소년 대부분은 사이코패스 등 특이한 정신병질자나 이상성격자가 아닌 그저 평범한 이웃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전쟁범죄자에 대한 재판을 방청하며 그 의혹을 해소하려 노력했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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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명 학살한 ‘악의 평범성’

미국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였던 밀그램은 실험을 거쳐 더 상세하게 규명하고 입증했다. 밀그램은 1시간에 4달러의 수당을 주고 ‘체벌의 학습 효과’에 대한 실험을 한다면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20~50대 평범한 남성 40명의 지원을 받아 교사 역할을 맡겼다. 학생(사실은 배우)에게 주어진 질문을 하고 답이 틀리면 버튼을 누르는 간단한 실험이었다. 그런데 학생에게는 전기충격 장치가 연결되어 있다는 안내(실제 전기충격은 없음)와 함께, 버튼을 한번 누를 때마다 15볼트씩 전압이 올라가 최고 450볼트에 이를 때까지, 매번 틀린 답에는 무조건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졌다. 학생의 건강 상태에 따라 300볼트 이상이면 위험할 수 있고, 450볼트에는 사망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도 제시되었다. 다만 어떤 결과가 발생하든 실험 참가자의 책임은 아니며, 학생이 어떻게 고통스러운 반응을 보이더라도 끝까지 버튼을 누르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흰 가운을 입은 실험 감독관은 교사 역할 참가자가 주저할 때마다 ‘계속 진행하세요, 실험을 위해서는 계속 진행해야 합니다, 당신에게는 버튼을 누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를 반복하며 종용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65%에 이르는 26명의 참가자가 마지막 450볼트까지 버튼을 눌렀던 것이다. 아울러 모든 참가자들이 땀을 흘리고, 한숨을 쉬고, 입술을 깨물고, 경련을 일으키는 등 극도의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면서도, 40명 모두가 300볼트까지 버튼을 눌렀다. 밀그램은 상황을 바꿔가며 여러 차레 실험을 반복했고, 다른 심리학자들에 의한 검증 차원의 실험 역시 반복되었다. 조건에 따라 비율의 차이가 발생했고, 초기 단계에서 수당을 포기하고 실험을 그만둔 사람도 나왔다. 혼자 교사 역할을 맡을 때보다 두 사람이 함께 실험에 참가할 때 중단과 저항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는 의미있는 결과도 도출되었다.

밀그램의 실험이 시사하는 ‘악의 평범성이 작동하는 원리’는 이렇다. 첫째,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크고 중요한 사회문제나 충격적인 사건 등을 대할 때 전문성이나 정보 부족을 인식하고, 자신이 신뢰하던 집단이나 사람, 혹은 소속된 조직의 지휘부나 상급자에게 판단과 의사결정을 맡기고 그들의 권위를 인정한다. 둘째,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뜻을 이행해주는 도구’라고 인식하게 된다. 셋째, 그렇게 되면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과 결과는 자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보는 ‘관점의 이동’이 일어나게 된다. 넷째, 이 상태가 되면 도덕과 윤리가 무장해제되고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는 ‘복종’ 상태가 된다. 다섯째,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이러한 복종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스스로의 의지 혹은 공감하는 동료와 함께 불이익을 감수하고 저항하여 복종을 중단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실제로 발생한다.

악의 평범성의 심리와 과정이 ‘권위에 대한 복종’ 메커니즘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인류는 이를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해오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향상을 위한 법과 제도, 문화 구축과 확산 노력이 범세계적으로 행해진 것이다. 국제연합, 국제사면위원회 등 국제기구와 비정부단체의 노력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촉매제 구실을 하고 있다. 한명 한명의 인간을 국가나 이념 등의 수단이 아닌 생명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인간의 존엄성’ 가치에 대한 강조 역시 그 중심에 있다.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열린 사회’ 역시 전체주의적 집단 심리가 만들어내는 악의 평범성을 방지하는 강력한 체제다.

국가나 정부, 정당 등이 다수의 동의나 참여를 얻어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거대한 사업이나 운동을 추진하려면 사실과 정보, 논리와 정성으로 공감을 이끌어내고 설득하는 지난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 힘든 고난도의 전문적 노력 대신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밀그램의 실험 설계와 같은 ‘권위에 대한 복종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다. 다시 악의 평범성이 부활하는 좀비 정치가 그것이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은 물론, 여러 관변단체와 ‘십자군 알바단’ 등이 총동원돼 시민을 선동하고 여론을 조작해 청년들을 우군화해서 보수 돌격대, 총알받이로 만든 ‘국가 사이버 테러’ 범죄는 거대한 좀비 정치의 표본이다. 이에 대응한다며 같은 방식을 사용한 소위 ‘드루킹’ 집단의 범죄 행각, 지금도 자행되고 있을지 모를 유사한 시도들은 철저히 밝히고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지층을 선동해 내외부의 적이나 불편한 대상을 가혹하고 가학적으로 공격하게 하는 ‘좀비 정치’는 결코 용납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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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으로 돌아온 좀비 정치

20대 국회 기간 중 5·18 민주화 항쟁 피해자와 가족,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 성소수자 등을 향한 정치인 등의 막말과 보도가 나왔고, 온라인 인플루언서의 혐오 증폭이 이어졌다. 이에 영향받은 일베와 극우단체의 ‘폭식 투쟁’과 폭력 집회는 물론 학생, 청년, 직장인, 구직자, 주부, 은퇴자 등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혐오 댓글과 온라인 공격도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지옥 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국민은 선거 투표와 여론 지지율로 이를 응징했다. 그뿐 아니다. 특정 정치세력이 좀비로 만든 사람들 중 다수가 상황이 변화하자 자신을 좀비로 만든 정치세력 소속 정치인들을 향해 잔인한 공격과 비난의 ‘전기충격 버튼’을 열심히 눌러대는 모습도 보인다. 잘못과 문제를 감추고, 자신들에게 도전하거나 비판하는 불편한 상대를 폭력적으로 공격해 침묵시키고 위기를 넘기려고 던진 ‘선동의 부메랑’이 되돌아와 스스로를 아프게 때린 것이다.

반성과 참회의 목소리들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는 부정선거라는 또 다른 선동의 부메랑을 열심히 던지고 있다. 보수정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정당과 정치 집단, 정치세력 혹은 정치인은 좀비 정치, 선동의 부메랑을 날려 지지자들이 무조건 자신을 보호하고 상대를 물어뜯는 악의 평범성 기제를 작동하거나, 누군가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해주길 기대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좀비 정치는 매우 쉽고 간편하고 확실하게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그 효과는 결코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으며 언젠가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부끄럽고 참담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참다운 정치인, 현명한 정치 집단이라면 결코 그 악마의 유혹에 빠져선 안 된다.

▶표창원: 전직 국회의원이자 ‘범죄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박사가 의원으로서 보고 듣고 겪은 사실과 언론과 정부, 대중 등 정치 환경, 정치인 언행의 동기와 의도 등을 종합·분석해 독자들에게 보고한다. 한국 정치의 병리현상을 해부하고,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을 위한 국회와 정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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