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 초선 의원들이 지난 4월20일 오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여의도 프로파일링’ 연재 마지막 글을 정치인들과 예비 정치인들에게 드린다. 우리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듯 정치는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공론의 장’이다. 모든 인간이 보다 행복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평등하게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공동의 꿈을 실현하는 의지와 노력의 집합체다. 그런데 그 ‘정치’가 비난과 멸시와 조롱과 원망과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언제는 안 그랬고, 안 그런 나라가 있냐.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다’ 반론을 제기할 정치인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경제사회문화 수준이 유사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분명하고, 정치로 인한 사회 분열과 갈등의 정도는 결코 용납할 상황이 아님은 자명하다.
‘권력을 잡아야…’ 속설의 덫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특히 공적 신뢰를 바탕으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공직자가 순수함을 버리면 추해진다. 정치인은 더더욱 그렇다. 흔히들 ‘초심’으로 부르는 정치인의 ‘순수’는 ‘이상’과 ‘신념’ 그리고 ‘원칙’일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상, 정정당당하고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신념, 공과 사를 구분하겠다는 원칙 등이 중요하다. 보수, 진보 같은 이념은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적 차이에 불과하다. 결코 본질이나 목적이 될 수 없다. 이념이나 진영, 혹은 특정 권력자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사람들을 빨리 정치권에서 몰아내야 할 이유다.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의 순수함, 초심을 버리고 훼손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지난 20대 국회 4년간 현실 정치에 몸담으며 놀라고 분노했던 것 중 하나는 정치를 시작하면서 아예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순수’를 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자기 분야에서 대과 없이 성실하고 깨끗하다는 인정을 받아온 사람이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상담을 요청해서 만난 자리에서 내게 대뜸 “정치는 진흙탕이란 것 잘 압니다. 전 선거법 위반 등 흙탕물을 묻힐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말을 담담하게 내뱉을 때 절망감을 느꼈다. 그렇지 않다고, 법을 지키며 깨끗하고 정직하게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정치라고 이야기해 줬지만 그의 얼굴엔 수긍보다 의혹의 표정이 더 짙었다. 또 다른 선거 후보자는 굳이 유력 정치인이나 특정 집단과 가까운 것처럼 보일 필요 없다, 스스로의 가치와 의지를 제대로 내세우는 게 낫다는 조언에 묘한 미소로 응답하곤 정반대의 행보를 걸었다. 또 다른 후보자는 무리하고 비현실적이거나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지역 집단이나 단체, 유력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공약으로 내세우지 말라는 고언을 진지하게 듣고는 돌아가서 정반대로 행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가장 큰 무기인 이들 신인 정치인들조차 이럴진대 ‘때는 많이 묻었고 순수하지는 않지만 노련하고 능력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기성 정치인들이야 오죽하랴.
최근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치권의 부당하고 불공정한 행태와 막말 역시 ‘순수를 포기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순수함이 최대 무기인 청년 정치지망생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저급하고 이기적이며 선동적인 표현과 주장들, 정치권의 일상과 상식이 되어버려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내로남불, 견강부회, 그리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공직을 이용한 사익의 추구와 이해충돌 등이 대표적 예다.
순수함을 버린 정치인들의 한결같은 변명은 ‘당선이 되어야 뜻을 펼칠 수 있고, 권력을 잡아야 이상도 실현할 수 있다’는 오랜 속설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덫과 함정이 숨어 있는 치명적인 유혹이다. 이 속설을 진리인 듯 강조하고 반복하는 이들의 행태는 ‘뜻과 이상은 일단 잊고 신념과 원칙은 과감하게 버려야 당선도 되고 권력도 잡는다’는 속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즉, ‘순수함을 버려야 정치적인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소리 없는 외침을 열심히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저서 <신화론>에서 모든 속설에는 ‘의도’가 있다고 설파했다. ‘권력이 있어야 이상을 실현한다’는 속설은 한국 사회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강조하고 반복하는 ‘일단 성공해야 뜻을 펼칠 기회라도 생긴다’는 속설의 정치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속설의 의도는 자명하다. ‘불편한 질문을 봉쇄’하는 것이다. 어린이 청소년이 성장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불합리와 불공정, 모순과 부당함에 대한 불편한 질문들에 대한 매우 효과적인 대답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학교폭력과 따돌림 피해를 당하는 친구, 돈이 많거나 힘센 부모를 둔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에 침묵하는 선생님이나 가난한 아이들이 차별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자녀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어막 구실도 한다. 자녀가 괜히 개입하고 말려들어 다치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쓸데없이 남의 일에 나서느라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양심의 가책이나 무력감에 휩싸이지 않도록 지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합리화 기제인 것이다.
“지금 네가 나선다고 바뀌겠니? 너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뉴스를 보렴, 세상엔 그것보다 더 부당하고 나쁜 일들이 많단다. 정말 정의로운 일 하고 싶다면, 어렵고 불쌍한 사람 도우려면, 힘이 있어야지, 높이 올라가야지, 성공해야지. 지금 눈앞에 있는 문제에 함부로 나서서 다치거나 성적이 나빠지면, 너는 아무도 도울 수 없는 힘없는 어른이 될거야.” 이런 속설에 굴복하고, 진리인 듯 받아들인 아이들이 좋은 성적 거두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나가는 길고 오랜 과정에서, 아무런 계산 없이 옳은 일을 하고 바른말을 하는 ‘순수함’은 퇴화되고 사멸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부모가 이런 속설의 창시자일 수도, 이 속설의 전파를 통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일 수도 없다. 부모들 역시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옳은 말 하고 부당함에 이의 제기하며 나섰다가 호되게 당하고 불이익을 경험하면서 ‘이제 알겠나, 그게 세상이야, 인생의 쓴맛이지’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란 사람들이다. 결국 이 속설에 담긴 의도는 부당함, 불공정, 불합리와 모순을 저지르거나 이로부터 이익을 보는 자들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변화, 개혁, 혁신이 일어나면 기득권을 잃게 되는 자들이 만들고 퍼뜨리고 반복해 ‘진리’인 듯 보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혁명, 내전, 전쟁 등 급격한 변화가 오히려 서민, 기층 민중, 사회적 약자들을 더 많이 희생시키고 힘들게 한다는 것도 역사를 통해 배웠다. 모두를 위해 사회적 안정은 필수다. 민주주의라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을 통해 더 공정하고 더 합리적이고 더 평화롭고 더 평등하며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지속적인 변화와 개혁, 혁신을 추동해 나가야 한다.
제21대 국회 초선 의원들이 지난 4월2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초선 당선자 본회의장 방문 및 설명회에 참석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진보라면 더 순수한 열정 불살라야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특별하고 중요하다. 사회와 체제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과 경찰 및 행정부 등 관료 조직, 사법부, 기업 등 다양한 사회 기제가 미래의 성공을 위해 현재의 부당과 불합리를 감수하고 모른 체하라는 ‘속설’을 받아들인 동조형 엘리트로 가득 차고 그들에 의해 운영된다 하더라도, 정치만은 달라야 한다. 부조리와 불합리, 부당함에 문제를 제기하고 도전하고, 현실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 다수를 차지해야 한다. 예산을 포함한 나라의 모든 자원과 재화를 분배하고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바꾸는 권력을 위탁받은 ‘공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보수 정치라면 체제의 안정과 기득권 집단의 건강한 리더 역할을 담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개혁하고 보완·보수해 나가야 한다.
진보라면 스스로 기득권의 달콤한 과실을 기웃거리지 말고 보다 과감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순수한 열정’을 불살라야 한다. 정치 역시 조직이며 경쟁의 장이기 때문에 순수함을 버리라는 요구와 압박, 이를 정당화하는 속설이 밀려든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이가 많아야 그래도 ‘덜 타락’할 수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아예 ‘당선부터 되고 봐야 해, 권력부터 잡고 봐야지, 정치는 그런 것’이라는 속설에 자신을 던져 버린 때묻은 사람들이 정치를 시작한다면, 그 과정과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순수함을 버린 정치인은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거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보다 득표나 당선, 지지, 혹은 권력 등 이해득실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틀리고 잘못된 사실인 줄 알면서도 지지층이나 여론의 호응을 받을 수 있다면 주장하고 내세우며, 맞는 지적과 비판인 줄 알면서도 불리할 경우 끝까지 부인하고 상대방을 공격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하고 선동한다. 소신과 독립성을 유지하기보다 크고 강한 집단의 일원이 되기 위해 애쓰고, 집단의 권력자를 위해 무조건 충성한다. 순수함을 버린 정치인들은 결국 자신의 사익과 출세욕, 권력욕을 위해 이상과 이념, 가치와 신념을 포장해서 허위로 내세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순진함’은 무능과 게으름의 결과
정치에서 순수함을 유지하면 실패와 좌절이 뒤따른다는 속설의 실례로 자주 거론되는 정치인들이 있다. 대개 그들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순진한’ 정치인들이다. 이해득실보다 옳고 그름을 먼저 보고 이상과 가치, 신념과 원칙을 지키려는 순수함과 달리 순진함은 상황에 맞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설득력이 부족하고 대중과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솔직함이다. 성차별, 막말, 장애인이나 외국인 등 소수자 비하 혹은 극단적인 주장을 생각나는 대로 뱉어놓고 그에 따른 무겁고 따가운 질타나 실패를 경험하곤 ‘솔직해서’, ‘순수해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시대정신이나 정치적 타당성, 혹은 민감한 이슈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해서 부적절한 언행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때로는 이상적인 주장이나 정책, 입법 등을 내세우지만 관심이나 지지를 받지 못하거나 오해를 받고 실패하는 경우도 순진함에 해당한다. 전략이나 언변, 설득력이나 소통 능력 등이 부족한 경우다. 결국 정치인의 순진함은 무능과 게으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순수한 열정을 잃지 않으면서 실패하거나 좌절하지 않으려면, 순진함을 극복해야 한다. 즉, 능력을 갖추고 부지런해야 한다. 순수한 정치인이 능력과 부지런함을 갖추면 인지도와 영향력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유혹이 뒤따른다. 그 인지도와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정치 내외의 힘과 세력이 다양하고 그들은 강한 제안과 접촉을 해온다. 유혹을 이겨내려면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 순수함을 지키려는 정치인들끼리, 정당과 정파를 넘어 상호 존중하고 소통하고 연대하고 협력하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의 본령을 지켜나가야 한다. 희생과 헌신을 통해 민주주의를 찾고 지켜온 위대한 국민을 믿고, ‘순수하지만 순진하지 않은’ 정치인들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주길 기원한다. 그래야 코로나19 극복, 사회 통합, 공정과 정의 확립, 교육 혁신, 경제 발전, 환경 보호, 한반도 평화, 국제 협력 등 수많은 난제를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우리 모두의 꿈을 조금씩 실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표창원의 여의도 프로파일링’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