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물류센터 일일 취업현장-
버스서 체온 재고 열화상 기기까지
노동자들 “바뀐 것 같네” 수군수군
방한복 지급땐 ‘거리두기’ 감독 허술
영하18도 방한복에 핫팩, 장갑은 안줘
안경에 성에 서려 ‘턱스크’ 할 수밖에
직원은 마스크 안쓴채 ‘빨리빨리’ 독촉
식사시간 빼곤 몸 녹일 틈조차 없어
버스서 체온 재고 열화상 기기까지
노동자들 “바뀐 것 같네” 수군수군
방한복 지급땐 ‘거리두기’ 감독 허술
영하18도 방한복에 핫팩, 장갑은 안줘
안경에 성에 서려 ‘턱스크’ 할 수밖에
직원은 마스크 안쓴채 ‘빨리빨리’ 독촉
식사시간 빼곤 몸 녹일 틈조차 없어
안경에 낀 얼음을 긁어냈다. 눈앞이 보이는 것도 잠시, 마스크 사이로 입김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영하의 온도 탓에 곧장 안경 렌즈에 성에가 내려앉았다. 앞을 보려면 김이 서리지 않도록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채 일하는 수밖에 없다. ‘턱스크’다. 주위를 돌아보니 안경을 낀 이들 대부분이 턱스크 차림이었다.
경기도의 한 쿠팡 물류센터 냉동팀 일용직 노동자로 취업한 4일, 냉동센터의 추위 탓에 ‘방역’을 염려할 틈도 없었다. 얼어붙은 오른쪽 손가락 끝엔 감각이 없다. 속눈썹까지 얼어 눈을 깜빡이기도 쉽지 않았다. 고개를 드니 얼어붙어 새빨개진 귀에 핫팩을 댄 채 운반수레를 미는 동료가 보였다. ‘영하 18.2도’. 러시아의 혹한기를 방불케 하는 냉동창고에서 노동자들은 모두 조금씩 얼어붙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부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노동자들의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일어난데다, 나흘 뒤인 28일엔 인천 물류센터의 계약직 노동자가 코로나19와 무관하게 작업 중 숨진 사실 등이 확인되자 쿠팡 물류센터의 노동환경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한겨레>는 지난 4~5일 한 쿠팡 물류센터를 찾아 오후조(오후 5시~새벽 2시) 냉동팀에서 일하며 노동 환경 등을 돌아봤다.
집단감염 사태를 두고 비난 여론이 비등한 뒤라 방역대책은 개선된 듯했다. 4일 물류센터에 도착하자 통근버스에 한 직원이 올라와 체온을 재고 기침과 목 통증 여부를 적게 했다. “오늘부터 바뀐 거 같네.” 버스에 탄 노동자들이 수군거렸다. 작업 전 대기 장소에선 열화상 카메라도 거쳤다. 하지만 수도권 전역에서 버스를 타고 온 단기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데도 거리두기 지침은 철저히 지켜지지 않았다. 방한복을 받으려 다닥다닥 붙어선 이들에게 “거리두기를 해달라”고 감독하는 이는 없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도 방역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냉동구역 바깥 상온에서 상품 분류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2인1조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로켓배송’에 맞춰 속도를 올리느라 마스크를 턱까지 내려 쓴 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직원이 수시로 “빨리 처리하자”고 소리치며 채근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 계약직 노동자는 “부천 물류센터가 폐쇄되며 물품이 우리 센터로 몰렸는데, 코로나19가 무서운지 지원자가 적어져 업무 강도가 더 높아진 상태”라고 전했다.
방역대책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영하 18도의 냉동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방한대책은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사쪽이 지급한 방한용품은 방한화, 방한복과 면장갑, 핫팩뿐이었다. 혹독한 추위에 가장 취약한 건 손끝이나 귀였는데 두꺼운 손장갑, 귀마개 등은 주지 않았다. 첫날 온종일 귀가 새빨간 채로 일해 동상에 걸릴까 염려됐던 40대 일용직 ‘형님’은 이튿날엔 출근하지 않았다. 권동희 노무사(일과사람 법률사무소)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한랭’ 작업을 하는 경우 방한복과 방한장갑 등을 지급하게 돼 있다. 방한장갑을 아예 지급하지 않았다면 5년 이하 징역에 처하거나 5천만원 이하 벌금을 물게 할 수 있다”고 짚었다.
식사 시간을 빼곤 잠시나마 몸을 녹일 시간도 없었다. 한 일용직 동료는 “어떻게 밤 10시까지 밥 먹으라는 소리 하나 없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렇게 냉동인간으로 9시간을 견디고, 새벽 2시가 돼서야 일을 마쳤다. 방한복을 반납하고 통근버스에 타 서울역에 도착하니 새벽 3시20분이었다. 한 시간 시급 1만원을 털어 택시에 탔다. 이틀 전까지 튼튼했던 몸에선 오한이 났다.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어도 병이 찾아온 듯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4일 경기도의 한 물류센터 지하 2층에 줄 선 채 기다리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모습.
4일 경기도의 한 물류센터 지하 2층에 줄선 채 기다리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모습.
냉동센터 노동자에게 지급된 공용 방한화와 면장갑, 핫팩. 영하 18도의 공간에서 밤새 일하지만, 귀마개도 방한장갑도 없다.
연재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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