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43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정의연 마포구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손영미 소장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2@hani.co.kr
“이사장님, 수고가 많으셔서 어쩌나요? 할머니 식사 잘하시고 잘 계십니다.”
문자메시지를 읽어내려가는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를 16년 동안 지켜온 고 손영미(60) ‘평화의 우리집’ 소장의 장례가 마무리된 10일, 수요시위에 선 이나영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은 손 소장이 보낸 마지막 문자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마지막 메시지에서도 손 소장이 쉼터의 마지막 생존자인 길원옥(92) 할머니와 정의연 활동가들을 걱정했다는 사실을 전하자 시위 현장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이날 아침 정의연 활동가들은 손 소장의 발인 절차를 엄수하고 수요시위 현장으로 향했다. 이날 수요시위는 손 소장을 추모하는 자리로 진행됐다. 낮 12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모인 100여명의 시민들은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손 소장을 기렸다.
장례의 상주를 맡은 이 이사장은 발언에 나서 “당신을 잃은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며 “벼락같은 비보와 가족을 잃은 아픔 속에서도 오히려 저희를 위로하며 함께해주신 유가족 여러분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러면서 검찰과 언론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 이사장은 “고인의 죽음 뒤에도 각종 예단과 억측, 무분별한 의혹 제기, 책임 전가와 신상털이, 유가족과 활동가들에 대한 무분별한 접근과 불법촬영까지 언론의 여전한 취재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참담하고 비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수요시위의 주관을 맡은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의 이은선 실행위원은 “30년 동안 수요시위를 이어왔지만, 그 어느 날보다 비통하고 엄중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지난 한 달 동안 갖가지 왜곡과 거짓, 폭력이 수요시위와 정의연의 활동을 왜곡, 폄하, 비방하던 와중에 위안부 운동의 토대인 할머니들을 보살피고 온갖 뒷바라지를 하신 손 소장을 잃은 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공동 설립자 중 한명인 김혜원 정의연 고문도 시위에 참여해 “1992년 처음 수요시위를 감행했을 때 정부는 부정적 눈초리로 봤고 시민들은 싸늘했다. 용기를 다해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며 “그 외로운 싸움이 여성 인권과 세계 평화를 주장하는 운동의 중심이 됐다”고 했다. 김 고문은 “이 공든 탑을 무너뜨리려는 불순한 반대 세력이 우리를 집요하게 공격한다. 결코 물러서지 않고 일본이 할머니에게 사죄하고, 전쟁범죄를 사죄하는 그날까지 씩씩하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수요시위가 시작되자 시위대를 둘러싼 보수단체들은 확성기로 소음을 내며 시위를 방해했다. 경찰이 충돌을 막기 위해 보수단체들을 둘러싸고 소리를 줄일 것을 요구했지만, 이들은 “왜 우리만 가둬놓느냐. 시위 신고를 했다. 우리도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다”며 항의했다. 양쪽에서 들리는 소음에도 수요시위 참가자들은 내내 엄숙한 분위기에서 손 소장을 추모했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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