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달 정의기억연대의 서울 마포구 연남동 쉼터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위안부 할머니 가족입니다.’ 지난 6일 ‘평화의 우리집’(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을 운영해온 손영미 소장이 숨진 뒤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기사 댓글이 인터넷을 달궜다.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인 길원옥 할머니의 손녀로 밝혀진 댓글 작성자는 ‘손 소장이 할머니의 돈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저희 가족이 저 소장님이 할머니 은행계좌에서 엄청난 금액을 빼내서 다른 은행계좌에다가 보내는 등의 ‘돈세탁’을 해온 걸 알게 돼서 그 금액을 쓴 내역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런 선택을…. 뒷배도 없이 그동안 그렇게 돈을 빼돌린 것도 아닐 테고. 그 뒷배는 윤미향이겠고….” 이 글의 내용이 온라인에서 널리 퍼지며 누리꾼들 사이에선 ‘손 소장 죽음의 동기가 이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한겨레>는 11일 길 할머니의 양아들 부부를 직접 만나 이 댓글의 진위에 대해 물었다. “제 딸인 건 맞다. 너무 속상한 부분을 좀 얘기했더니 딸이 화가 나서 거기에 올렸다. 글 올린 것을 알고 내리라고 했다.” 양아들 부부의 설명이다. 지난달 이용수 할머니가 처음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성금 용처와 관련한 의혹을 제기한 뒤 이들 부부도 길 할머니에게 지원된 돈의 사용 내역 등을 공개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몰랐으니까 금전적인 부분을 알고 싶었다”고 양아들의 부인은 말했다. 그는 “소장님이 돌아가셔서 우리도 식구들도 힘들다. 그분은 우리 어머니에게 정말 잘해주셨다”며 더 이상 이런 취지의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길 할머니의 손녀가 쓴 댓글 내용은 정의연 안팎의 설명과 차이가 난다. 길 할머니에게 목돈이 전해진 때는 시민 성금으로 모인 1억원이 전달된 2017년이다. 길 할머니는 당시 1억원 가운데 5천만원을 ‘길원옥 여성평화상’ 기금 목적으로 정의연에 기부했다. 세계 각지의 여성 평화 운동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정의연은 이후 해마다 1명 이상의 수상자에게 500만원의 상금을 주고 있다. 남은 5천만원 가운데 2천만원은 길 할머니의 가족에게 전해졌고, 3천만원은 할머니가 가지고 있다가 쉼터에 찾아오는 가족들에게 용돈을 주거나, 목돈이 필요할 때 줬다고 한다. 길 할머니는 정부가 매달 피해 할머니들에게 간병비 외에 생활안정금(147만원)으로 주는 지원금 가운데 일부도 가족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손 소장은 최근 길 할머니의 양아들에게서 ‘(쉼터 운영을 맡은) 2004년 이후의 (본인) 계좌 내역을 공개하라’는 요구 때문에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양아들 쪽은 <한겨레>에 “(손 소장이) 그것 때문에 힘들다는 말씀을 하진 않았다. 폭언을 하거나 소릴 지른 게 아니고 잘 표현했기 때문에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양아들은 어릴 때부터 길 할머니 손에서 자랐지만 호적에 올린 것은 올해 5월 하순~6월 초순 무렵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선 ‘손 소장이 돈세탁을 했다’는 주장을 정의연도, 길 할머니 쪽도 확인할 길이 없다. 손 소장의 통장이 이미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한 검찰에 넘어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는 검찰 수사를 통해 판가름날 전망이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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