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을 마친 학생들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전국 대학생 분노의 집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와, 드디어 끝났다!”
체감온도 30도, 한낮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오후 6시. 끈적한 열기, 후끈한 땀 냄새와 함께 80여명의 대학생들이 길모퉁이에 모습을 드러내자 현장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학생들은 바닥에 드러누워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벌겋게 탄 등과 목에 서로 물파스를 뿌려줬다. 삼삼오오 모여 ‘인증샷’을 찍는 등 100km가 넘는 행진의 완주를 기념하기도 했다.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며 380km가량 행진을 진행한 대학생들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정부·국회·대학에 등록금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일 경산 지역 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 9명이 경산시청에서 교육부 세종청사까지 230km가량 도보 행진을 벌인 뒤, 이를 이어받아 지난 15일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세종청사에서 국회까지 5박6일간 150km가량 길을 걸어 20일 오후 국회에 도착했다.
참가자들은 코로나19 이후 한 학기 내내 부실한 수업이 이뤄졌는데도 등록금은 전혀 줄어들지 않아 학생들의 어려움이 커졌다고 비판했다. 전윤정 계원예술대 부총학생회장은 “실습 위주인 예술대학 학생들은 실습비가 포함된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실습을 아예 멈추거나 집에서 위험하게 톱질을 하기도 했다”고 성토했다. 이수빈 춘천교대 총학생회장도 “교생 실습을 나가는 학생들은 간접 실습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며칠 전에야 안내받을 수 있었다”고 어려운 상황을 토로했다.
이들은 정부·국회·대학이 모두 학생들의 요구를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등록금은 대학과 학생 간의 문제”라며 등록금 정부 지원을 반대하는 대신 ‘대학혁신지업사원비’의 용도 제한을 완화하는 등 대학을 통한 간접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여야는 추경을 통한 정부 직접지원을 촉구해, 정부와 국회 간 의견차는 오랜 시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임지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공동의장은 “올해 초부터 학생들은 수업권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으나 두달 뒤면 2학기가 시작되는 지금까지 정부와 국회, 대학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행진을 마친 학생들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전국 대학생 분노의 집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또 학생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등록금 운영의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효민 이화여대 부총학생회장은 “실험·실습 등도 진행하지 못하는데 등록금이 요지부동인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최인성 경희대 총학생회장도 “학생들은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학비를 벌면서도 항상 비싼 등록금에 의문을 가져왔다”며 “대학은 재정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등록금 내역을 공개해달라는 학생들의 기본적인 요구마저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등록금 지원을 촉구하는 학생들의 요구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지난 4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2만178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99.2%가 ‘상반기 등록금 반환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최근엔 일부 대학 커뮤니티에선 ‘등록금 반환 요구’를 써내린 혈서도 등장했다. 이날 주최 쪽은 “이제는 대학, 교육부, 국회가 결단해야 할 때”라며 “국회에서 등록금 지원이 포함된 3차 추경 예산이 통과되고, 재난 상황을 방지할 법안들이 본회의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