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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쟁과 성차별주의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괴물

등록 2020-07-12 08:58수정 2020-07-12 09:08

[토요판] 인터뷰
베티 리어든-정희진 대담

평화운동 진영이 페미니스트들에게
반전집회 참석을 요청하면서도
정작 강간과 성매매 문제는 외면
평화운동과 페미니즘 차이 보며 집필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0년
“한국에는 군대에 끌려가는 사람
‘못 가는 사람’(여성, 장애인 등)
안 가도 되는 사람, 세 젠더가 있다”

“조지 플로이드 이후 시위에서
경찰 유지비와 군사비를 감축해
인간 안보에 쓰자는 목소리 나와”
베티 리어든이 활동해온 ‘평화 교육을 위한 글로벌 캠페인’이 2019년 1월 그의 90살 생일을 기념해 평화 교육의 토대 마련을 위한 90만달러 모금 운동을 벌였다. 캠페인을 시작하며 리어든이 간디 등 평화운동가들 벽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베티 리어든 제공
베티 리어든이 활동해온 ‘평화 교육을 위한 글로벌 캠페인’이 2019년 1월 그의 90살 생일을 기념해 평화 교육의 토대 마련을 위한 90만달러 모금 운동을 벌였다. 캠페인을 시작하며 리어든이 간디 등 평화운동가들 벽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베티 리어든 제공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는 페미니즘 관점을 평화학에 도입한 기념비적 저서다. 흔히 국가 간 갈등의 문제로 국제관계학에서 다뤄온 전쟁을 사회의 성차별주의와 연결시킨 이 저서는 오랫동안 한국의 평화운동과 페미니즘에도 영감을 주었다. 페미니즘이 주목받는 흐름과 함께 최근에 비로소 번역된 책의 저자 베티 리어든을 여성학자 정희진이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한국의 징병제와 보살핌의 윤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기획으로 출간된 베티 리어든의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는 전쟁에 페미니즘의 관점을 개입시킨 도전적 저서다. 남성적 대결의 장으로 묘사되는 전쟁에서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주된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를 깊이 파고들어 논증한다. 페미니스트 평화학자인 리어든은 전쟁의 작동 원리 자체에 인간의 특성을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나누고 위계화하는 성차별주의가 자리한다는 것, 그렇기에 성차별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1985년 출간 당시에는 이러한 주장이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 이 책은 평화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리어든을 평화학으로 이끈 것은 1960~70년대의 베트남전 반대운동이었다. 이후 그녀는 컬럼비아대학교 사범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당시로서는 불모지였던 평화학의 학문적 기틀을 마련한다. 또한 국제평화교육연구학회와 평화 교육을 위한 글로벌 캠페인의 명예 창립소장으로 일하면서 지역과 국가를 넘나드는 활동을 펼쳐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목된 바 있다. 올해 91살 생일을 맞은 베티 리어든을 정희진이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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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영역인 국제관계에 균열

정희진(정) 이 책은 오래전부터 페미니즘 관점의 전쟁 연구가 부재한 한국에서 평화운동가와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왔다. 나 역시 당신의 책을 텍스트 삼아 열심히 공부했다. 한국어판 번역으로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이 책이 집필된 배경을 간략히 소개해달라.

베티 리어든(리어든) 한국에서 내 책이 유용하게 읽혔다니, 감사하다. 이 책은 1980년대에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첨예화하면서 핵무기 경쟁이 이어지고 이에 반대하는 운동이 대두된 이후 집필되었다. 당시에 평화운동 진영에서는 페미니즘적 관점이 개입되지 못한 채 여성들의 활동이 비가시화되고 있었다. 이는 베트남전 반대운동 때부터 이어져온 문제다. 이 책에서 내가 예를 들었듯, 평화운동 진영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반전집회에 나와달라고 했지만 베트남에서의 강간과 성매매 문제를 다뤄달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요구에는 별다른 응답을 하지 않았다. 결국 페미니스트들은 평화 세력으로 분리주의적 활동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전쟁에 반대하는 여러 진영들의 협업을 끌어내는 기획을 해보고 싶었다.

이는 여전히 페미니즘 운동이 당면한 문제다. 젠더를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보는 페미니스트들에게 평화학, 생태학 등은 페미니즘과 분리할 수 없는 인식론인데, 그럼에도 이러한 학문들에조차 여성의 시각을 개입하는 데 지난한 분투가 필요했다. 게다가 이 책에서 다룬 전쟁, 국가안보 등의 사안은 전통적인 학문 분과로 보면 국제관계학(International Relations)의 논의 대상이다. 국제관계학은 생물학,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등과 비교해보더라도 근대 학문 분과에서 페미니즘의 개입이 가장 늦은 분야였다. 당신의 책은 일상의 성차별 인식이 전쟁의 전제라는 사실을 증명한 최초의 저서인데, 남성의 영역으로 오랫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던 학문에 균열을 가한 데도 의의가 있다. ‘전쟁’이라는 사안을 두고 이렇게 두 여성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지금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리어든 기존의 국제관계학은 국가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독점적인 권력을 획득하는 데 복무해온 학문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등의 가치는 국가안보에 종속되어 밀려났다. 나를 비롯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밀려난 가치들을 다시금 도입해 정치적 의제로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해왔다. 내가 이 책에서 파고든 것은, 어떻게 하면 전쟁을 사라지게 하느냐의 문제였다. 내가 말하는 전쟁이란 무력을 이용해 국가들이 벌이는 싸움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것은 경쟁적인 사회질서로, 인간관계에서부터 구조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전쟁의 기저에는 폭력이 있다. 그런데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것, 성별에 따라 사회적 역할이 규정된다는 것은 인류에 오랫동안 자리해온 폭력이다. 즉, 전쟁과 성차별주의는 사회적 폭력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괴물이며, 이 뿌리를 뽑지 않는 한 하나의 머리를 잘라도 다른 머리가 튀어나올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나는 전쟁과 성차별주의의 개념과 이들의 관계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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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빈곤 해결로서의 징병”

전쟁과 성차별주의의 뿌리는 하나일지라도 구체적으로 그것이 발현되어온 양상은 훨씬 복잡하다. 서구의 침략을 당해온 비서구 국가의 여성들, 예를 들면 아랍 여성들은 자국 남성들만큼이나 서구 제국주의가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그러한 국가에서 여성 문제는 여타의 서구 국가들에 비해 훨씬 손쉽게 국가안보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되고 밀쳐진다. 베티 리어든도 이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녀는 침략자의 위치에 있던 서구 국가들이 여성을 전쟁 체제에 밀어 넣고 착취하는 경향도 지적한다. 가령 미국에서 여성에게 군대를 개방하고 이들을 진급시키는 것을 여성에 대한 평등의 확장으로 봐야 할까. 리어든은 이를 “전쟁 체제 속에 여성을 밀어 넣는 일종의 포섭”이라고 말한다. 소수의 여성을 남성 그룹에 끼워준 뒤 여성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전형적인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여성이 진정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얻었던 것도 아니며, 성희롱이나 성폭행에서 여성이 자유로워진 것도 아니니 말이다. 정희진은 여기에 한국 징병제의 변화에 대한 의견을 보탰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의 징병제는 한국전쟁과 함께 시작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성차별주의보다 징병제로 인한 남성들 사이의 계급 갈등이 더 큰 문제다. 다시 말해 국민개병제지만 모든 남성이 군대에 가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군대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금수저가 아닌 사람이 군대에 간다”고 한다. 즉, 한국 사회에는 군대에 끌려가는 사람, ‘못 가는 사람’(여성, 장애인 등), 안 가도 되는 사람(특권 계층)이라는 세 개의 젠더가 있다. 그 때문에 군사주의 반대운동이 남성들 간 계급 문제와 겹치게 됐다.

리어든 한국의 상황은 상당히 흥미롭다. 징병제가 아닌 사회에서 문제는 또 다르다. 대부분의 체제에서 소수 엘리트가 대부분의 권력을 쥐고 경제적 자원과 혜택을 축적하며, 더 적은 수단을 가진 이들이 서비스 노동을 맡는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쟁 때 특권층 젊은이들이 자기 의지에 반하는 징집에 반대했고, 결국 징병제가 철폐되었다. 하지만 이후에 등장한 것은 “빈곤 해결로서의 징병”(poverty draft)이다. 미국에서 형식적으로 모병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이들이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입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유색인종 남녀, 그리고 다른 직업을 고를 기회나 선택지가 없는 백인들이 미국 군대에 자원하고, 병력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냉전이 해체된 1989년 이후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군사(military affairs)를 국민국가 간의 경쟁에서 국제자본의 문제로 이동시킨 것은 매우 큰 변화일 것이다. “전쟁 주식회사”로 일컬어지는 민간군사기업(PMC·private military company)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민간군사기업 블랙워터가 이라크전쟁에서 돈을 벌어들이면서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그 시작일 뿐이었다. 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국가에서 노동력을 징집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간군사기업을 통해 군사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각국의 일부 정치 세력들이 ‘회사’로부터 군사력을 구매하고, 그 대가로 자국의 영토를 내준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기아와 물 부족에 고통받는다.

리어든 금융 자본주의가 글로벌 질서의 핵심으로 부상한 것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권력이 공공선을 거의 혹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으며, “시장”을 거치면서 사적 이익에 복무하는 방식으로 행사, 축적되고 있다. 이는 병원, 교육, 감옥, 치안 유지, 심지어 군대 등 예전에 공적으로 운영되던 것들이 민영화하는 추세에서 명백하게 알 수 있다. 민간군사기업은 국방이 아닌 이윤을 위해 복무한다. 또한 민간군사기업 계약자들은 정규군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서 그들과 동일한 법적 처벌에서 빠져나가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을 고려한다면 징집제가 민간군사기업보다 나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군이 세계 150여개국에 주둔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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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나무연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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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중요한 “보살핌 윤리”

지금까지도 안보 이데올로기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전쟁을 원한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남성과 여성을 나누듯 외부와 내부를 나누고 외부로부터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평화라면,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은 불가피하다.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전쟁들이 그랬다. 여기에서 리어든은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다. “평화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그녀는 공동체의 상호 돌봄, 그것의 가능성을 평화를 위한 초석으로 제시한다.

당신이 책에서 언급한 캐럴 길리건이나 사라 러딕의 “보살핌 윤리”는 지금 시점에서 다시 제기해야 할 중요한 공적 의제라고 생각한다. 보살핌이나 돌봄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일상적이며 기본적인 것인데, 가정과 비공식 영역에나 필요한 것으로 무시되어왔다. 그런데 그것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려는 시도가 한국에서는 여성의 성역할을 합리화한다는 식으로 상당한 오해를 받아왔다. 이에 대한 당신 생각을 듣고 싶다.

리어든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인간과 공동체의 안전에 기여하는 노동보다 국가와 시장에 이익을 창출하는 노동에 훨씬 큰 가치를 부여한다. 가정과 사회를 위한 돌봄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미국 시민들은 그간 수많은 여성들이 주로 맡아왔던 이 돌봄 노동 덕분에 사회가 유지되어왔음을 극명하게 깨달아가고 있다. 최근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벌어진 시위 중에 경찰 유지비와 군사비를 감축해 진정한 인간 안보에 쓰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탈군사화를 주장한다는 측면에서 반가운 목소리이다. 이번에 미국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는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돌봄의 가치에 관심과 자원이 투여되었더라면 사회정의는 한층 더 실현되었을 것이다. “보살핌 윤리”를 통해 우리가 말하려던 것은, 인간과 사회가 생존하려면 상호 돌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해왔던 노동이 있어야만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전통적인 젠더 역할을 강화하자는 것이 전혀 아니다. 여성이 주로 담당해왔던 돌봄 노동은, 남녀 불문 인류 모두가 공유하고 실천해야 할 자원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봄의 윤리를 근본적인 사회적·공공적 가치로 끌어안는 것은 인간의 생존에 “본질적”이다.

여성들이 처한 현장(local)과 평화의 과제는 다르지만, 당신과의 대화를 통해 사회정의로서 페미니즘의 근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정리 정희진, 번역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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