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16. 성소수자 부부의 밥
아침은 간단히, 점심은 정찬으로
별다를 것 없지만 소중한 밥
서로의 ‘밥’ 이해에 소홀함 있어
앞집 할머니의 김치·무나물 쟁반 누군가와 ‘연결된’ 이로 살아야지
잠자리 머리맡에 그 마음 새겨
16. 성소수자 부부의 밥
아침은 간단히, 점심은 정찬으로
별다를 것 없지만 소중한 밥
서로의 ‘밥’ 이해에 소홀함 있어
앞집 할머니의 김치·무나물 쟁반 누군가와 ‘연결된’ 이로 살아야지
잠자리 머리맡에 그 마음 새겨

언젠가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현관문을 여니 앞집 할머니가 묵은 김치와 무나물이 가득 든 쟁반을 들고 있었다. 그분이 주고 가신 음식에 마음이 설렜다. 김비 제공

김비씨 부부의 아침 식사. 과일 두가지를 우유와 함께 믹서에 갈고, 토마토와 달걀로 스크램블을 하거나 잡곡빵을 구워 크림치즈를 발라 먹는다. 김비 제공
설거지, 공존하는 자의 마땅한 감각 언젠가 달걀 파동이 났을 때 달걀 한판에 1만원이 넘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침 달걀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요즘 달걀 한판은 5천원 안팎이다. 5천원이 넘어가면 ‘왜 이렇게 올랐지?’ 아직 냉장고에 남은 달걀 개수를 헤아리며 다음에 살까 망설이고, 5천원 아래로 내려가면 두판을 살까 욕심을 부리다가 그만둔다. 언젠가 한번 3천원짜리 달걀 두판을 사왔다가 메추리알만한 달걀 크기에 ‘그러면 그렇지’ 싶었던 적이 있어서, 너무 싸다 싶으면 꼭 묶어놓은 달걀판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달걀의 크기를 가늠한다. 요즘은 토마토가 그렇다. 아무래도 지난여름 날씨 때문인지 토마토 가격이 자꾸 올라갔고, 한끼 먹을 토마토 양이 5천원에 육박하면서 마트에서는 차마 토마토 봉지를 카트에 담을 수가 없었다. 온라인으로 상자째 사면 나을까 싶어 구입했더니, 상자 속 토마토는 너무 작았고 수분도 많지 않아 토마토의 감칠맛이 확연히 떨어졌다. 더 비싼 값을 주면 원하는 토마토를 사겠지만, 그러면 마트에 가서 사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맛있는 거 먹으려면, 돈을 더 벌라’는 겁박 같아 사소한 순간에 불쾌해지고 만다. 무슨 짓을 해서든 돈만 벌면 더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정말 이 사회의 이상향인가? 딱딱한 토마토 상자 앞에서, 내 마음도 조금 딱딱해진다. 점심은 하루 중 유일하게 완벽한 정찬으로 마련한다. ‘정찬’이라고 써도 되나 살짝 망설여지기도 하는데, 우리 두 사람 가계의 기준으로 정찬이니 다른 집들과는 다를 수도 있겠다. 일단 점심은 꼭 밥을 챙기고, 가능하면 국이나 찌개도 챙겨 먹는다. 국이나 찌개가 없으면, 고기든 쌈이든 풍족한 한 상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반찬은 나물류와 밑반찬들을 올리는데, 대부분 시장에서 사다 먹는다. 1만5천원어치를 사면 두 식구 일주일은 먹고, 호박죽도 이따금 사다 먹는데 밋밋한 식탁 위에 별미가 되기도 한다. 김치도 사다 먹는데, 자신의 입맛에 맞는 김치를 담그는 가게를 알아놓으면, 일상이 든든해진다. 나물류 정도는 이따금 무쳐 먹기도 하지만, 솜씨 좋은 분들의 음식에 입맛이 길들어선지 대부분 남겨서 버리고 만다. 식사를 차리고 준비하는 일은 내가 하지만, 설거지는 항상 신랑이 한다. 신랑이 직장을 다닐 때에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식사를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하나의 과정 중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공존하는 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기본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우울증이 심해 며칠이고 몇달이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조차도, 그는 밥을 먹으면 설거지까지 끝내놓고서 방으로 들어간다. 마트에 같이 가는 일조차 처음에는 짐만 들어주고는 그만이었는데, 사다 놓은 짐을 풀고 정리하는 일 역시 또 다른 노동이 된다는 걸 알고는 지금은 사 온 물건을 정리하는 일까지 같이 한다. 자신의 기분이나 상태와는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렇게 하고 있다.

<반찬 고르는 우리>, 펜드로잉, 박조건형.
밥은 먹고 볼 일 아니냐는 푸근함

점심은 정찬으로 준비한다. 대신 저녁은 아주 간단히 먹는다. 김비 제공
▶ 소설가. 에세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등이 있으며, 배구선수 ‘김연경’처럼 모두에게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0년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 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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