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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날 처음 내 벌거벗은 몸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등록 2020-10-10 13:24수정 2020-10-11 09:39

[토요판]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17. 사랑하는 나의 몸

이 몸이 왜 이토록 고통스럽지?
거울 앞 커진 내 몸에 겁먹으며
그걸 가지고 살아야 살아남는다
스스로 겁박하고 사정하고…
마침내 치료와 수술을 받았고
비로소 조금 더 ‘진짜 나’가 돼
좀 더 편안하게 같이 살 수 있는
벌거벗은 몸을 갖게 되었다
지난봄 제주에 갔을 때, 모텔에서 신랑과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 우리는 선반 위에 놓인 콘돔에 바람을 불어 넣으며 놀기 시작했다. 이날 나는 수술 이후 처음으로 비로소 내 벌거벗은 몸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김비 제공
지난봄 제주에 갔을 때, 모텔에서 신랑과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 우리는 선반 위에 놓인 콘돔에 바람을 불어 넣으며 놀기 시작했다. 이날 나는 수술 이후 처음으로 비로소 내 벌거벗은 몸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김비 제공

몸에 관해서는 해야 할 말들이 많다. ‘나체’ ‘벌거벗은 몸’ ‘누드’ 전부 몸에 관한 이야기지만, 우린 육체의 오직 한 군데만을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벌거벗은 몸 앞에 예외 없이 짓게 되는 어색하고 민망한 얼굴이 있고, 그 표정 너머 감정은 누군가에겐 ‘쾌’(快)였다가, 다시 또 누군가에겐 ‘불쾌’(不快)가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똑같은 감정이라도, 어떤 장소에서 누구와 같이 있느냐에 따라 다시 또 쾌가 되기도 하고, 불쾌가 되기도 한다.

1980년대의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윤리 교사인가 사회 교사인가 마흔 초반 남성이었던 그가 들어와 ‘색소폰’ 소리만 하면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던 순간을 기억하는데, 악기인 ‘색소폰’마저 ‘섹스폰’으로 듣고 마는 그 아둔함을, 아직도 몇몇 어른들은 ‘그럴 때’라고 퉁쳐버리려는 듯 보인다. ‘너희들이 왜 그러는지 나도 알고 있다’는 머쓱한 표정으로 게슴츠레한 눈빛을 흘리고는 책을 펴라고 호통치던 그 목소리.

지금 생각해보면 한 교실 안에 있던 육십여명의 십대 남자아이들이 모두 같은 감정일 리 없는데, 교사도 학생도 모두 그러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믿고 있었다. 당연히 남자는 여자한테 끌리고, 여자는 당연히 남자한테 끌리는 그런. 왕성할 때 남자들이란 원래 좀 거칠고 감당하기 힘들고 그러니 너희들이 이해하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런.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당연함’을 가장해 아이들에게 획일적인 음란함을 주입시켰던 건지도,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는지도 모른다.

혼란을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벌거벗은 몸은 당연히 나 자신의 몸이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행동하던 어린 나는 내내 두 다리 사이가 불편해 자꾸 그 몸을 만지다가 엄마에게 야단을 맞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자기 커진 그것(남성의 생식기)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있다. 항상 그랬듯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하려는 아이들이 화장실까지 따라와 내 바지를 벗기고, 나도 모르게 커진 그 몸을 들키고 말았을 때, 화장실 앞에서 바지춤을 움켜쥐고 악악거리며 울고 말았을 때, 그때 내가 겪고 있던 혼란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친구가 장난 좀 친 걸 가지고 뭘 그래, 그러게 좀 남자다울 일이지.’ 안타깝게도 그 시절의 교사들은 폭행과 폭력의 피해자임이 분명한 나에게 모두 몰려와 똑같은 말을 하곤 했다. 몸에 털이 나고 더 커지면서 내 몸에 대한 나의 혐오 역시 점점 쌓여갔고, 그런데도 어디에서도 ‘벌거벗은 몸’에 관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모두 ‘섹스’에 관한 말들뿐이었고, 얼굴이 벌게졌고,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서로 다 아는 이야기들을,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서로는 이미 다 아는 것 같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눌 뿐이었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났다. 벌거벗은 내 몸을 볼 때마다 그랬다. 나에게 달려 있으니 내 몸인데, 내 몸임이 분명한데, 나는 왜 이 몸이 이렇게 힘들지? 왜 이토록 고통스럽지?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똑같이 되기 위해, ‘원래 그런’ 남자아이가 되기 위해 나는 열심히 육체 운동에 매달렸다. 팔굽혀펴기를 하고, 농구를 하고, 남자 말투(지금이야 그런 게 있을 리 없다는 걸 알지만)를 흉내 내면서, 그래야 몸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울 앞에서 커진 내 몸에 겁에 질리면서도, 그걸 가지고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겁박하고, 소리치고, 애원하고, 사정하고.

조금만 더 현명했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누군가 그 현명함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어린 나에게 그 현명함에 관해 말해줄 책임은 당시 어른들에게 있었을 텐데,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가 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라는 말만 했다. 그 몸을 제대로 씻을 줄도 몰라 나무껍질 같은 때가 온몸에 덕지덕지 들러붙었을 때, 전교 신체검사가 있다고 모든 남자아이들이 팬티만 입어야 하는 그 한가운데 벗겨졌을 때, 교사와 아이들은 내 ‘충격적인 더러움’이 그저 가난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만 믿고 있었다. 겉에 묻은 더러움만 벗겨내면 되는 일이라고 간단히 생각하고 말았다.

고등학생이었던 오라비의 손에 이끌려 처음 남자 목욕탕에 갔을 때, 나는 왜 내가 고개조차 들 수 없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 후로 왜 나는 내 몸을 들키기 싫어 문도 열지 않은 새벽에 목욕탕 앞에 가서 서 있어야 했는지, 그때의 나는 당연히 알지 못한다. 누구든 현명한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좋으련만, 벌거벗은 몸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은, 2020년이 되어버린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수술을 받고, 처음 그것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나는 손을 들어 아직 감각이 돌아오지 않은 그곳을 만져보았다. 더 이상 거기에 그것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주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 몸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던 그것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수술받은 내 몸이 여성의 것일 수 없다는 걸 당연히 알았지만, 나에겐 그 정도로 충분했다. 다시 또 수술 전에 입었던 청바지를 꺼내 입고, 똑같은 남자 옷을 입고 나는 똑같은 직장에 출근했다. 직장 동료들은 왜 변한 게 없느냐고 나에게 되물었지만, 나는 그럼 바지를 벗어 보여주랴 농담을 하고 말았지만, 나만 아는 그 자유로움은 어차피 그들에겐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한 번도 그렇게 몸과 싸워본 적 없을 테니, 아무리 말해도 알 수 없단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나에게 필요한 치료와 수술을 받았고, 비로소 조금 더 많이 ‘진짜 나’가 되었다. 좀 더 편안하게 같이 살 수 있는 벌거벗은 몸을 갖게 되었다.

지난봄 제주의 한 모텔에서. 김비 제공
지난봄 제주의 한 모텔에서. 김비 제공

지난봄, 어머니 복희씨를 만나러 제주에 갔을 때, 아침 일찍 출발하는 배를 타기 위해 근처 모텔에서 신랑과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

그와 연애 적에 몇 번 와본 적이 있던 모텔을 생각하니, 괜히 또 민망해지고 뭐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신랑이 뜬금없이 선반 위에 놓인 콘돔을 뜯어 바람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정말 그게 가능한지 몰랐는데, 풍선처럼 크게 불고 보니 정말 웃겼다. 콘돔을 두 개 다 풍선으로 불어 놓고서 우리는 애들처럼 침대 위를 펄쩍펄쩍 뛰며 콘돔 풍선을 치고 놀았다.

마침 천장에 거울이 달려 있어 풍선을 쳐올리는 내 얼굴이 보였는데, 그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정말 행복했고, 정말 좋았다. 내가 가진 최대치의 행복을 누리고 있구나, 나는 수술 이후 처음으로 비로소 내 벌거벗은 몸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잔혹한 누군가는 다시 또 ‘망가진 몸’이라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이제야 온전하게 느껴지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 ‘나의 몸’이었다.

내가 쓰는, 내가 사랑하는 몸

벌거벗은 몸을 간편하게 두 가지로 말하지만, 나는 우리가 좀 더 많은 몸의 존재를 말해야 한다고 믿는다. 크고 작은 몸, 길고 짧은 몸, 사지가 있는 몸, 그중에 하나가 없는 몸, 검은 몸, 하얀 몸, 곧장 서 있는 몸, 휘어진 몸, 얼마나 많은 몸들을 지운 채, 스스로를 억압한 채, 의미 없는 ‘정상성’ 속에 우리 자신을 욱여넣고 살고 있는지.

몸이란 게, 정말 생식을 위한 목적 하나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 우린 왜 그 몸에 붙들려, 아니 실은 인간의 역사 어디에선가 주입된 음란의 감각으로, 성별 이분법적인 감각으로 인간의 벌거벗은 몸을 오직 생식하는 몸, 음란한 몸으로 규정하게 되었던 걸까? 심지어 생식 가능한 몸만이 건강한 몸이고, 그렇지 못한 몸은 건강하지 못한 몸이라고 확신하면서, 우리는 몸의 감각에 얼마나 둔해지고 있는 걸까?

여기 몸 하나가 있다. 쓰는 몸이 있다. 조금은 남루하고 보잘것없지만, 이제야 자신을 사랑하게 된 그런 몸이 있다.

▶ 소설가. 에세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등이 있으며, 배구선수 ‘김연경’처럼 모두에게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0년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 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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