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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친구들과 행복했던 기억이 정말 ‘전혀’ 없었던 걸까?

등록 2020-10-24 14:27수정 2020-10-24 14:37

[토요판]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18. 부끄러움을 적습니다

어려서부터 친구란 말이 어려워
성별로 모든 것을 나누는 사회
누구와도 나눌 것이 많지 않았다
나를 ‘언니’ ‘누나’로 불러줬을 때
그 얼굴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명절의 고향 친구들을 생각하며
친구가 없다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2018년 8월 강원도 원주에서 사진을 찍는 김비씨. 친구라는 말이 항상 어려웠던 그는 2000년대 중반 만났던 사진 모임 사람들이 지금도 그리울 때가 많다. 김민영 포토그래퍼
2018년 8월 강원도 원주에서 사진을 찍는 김비씨. 친구라는 말이 항상 어려웠던 그는 2000년대 중반 만났던 사진 모임 사람들이 지금도 그리울 때가 많다. 김민영 포토그래퍼

‘친구라는 말이, 어려웠다’고 나는 최근 집필 중인 소설에 적었다. 어디서든 마주하는 모든 사람이 친구가 아니겠느냐고 누군가 그랬던 것 같은데, 성소수자인 나에게 그 말은 매번 다른 의미로 읽혔다. 무수히 많은 존재를 포용하는 그 수사 앞에, 어쩔 수 없이 나는 비관적인 내가 되고 만다.

특히 어릴 적 친구들에 관해 말할 때 그런데, 과거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나와 함께 동시대를 같이 살았던 그들을 비난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곱씹으며 행복해지는 기억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친구’라는 말 앞에 나는 항상 쪼그라든다. 친구들과 웃고 행복했던 기억이 정말 ‘전혀’ 없었던 걸까? 이 사회 어딘가 성별이란 껍데기를 벗어버리고서 한 인간으로 웃을 수 있던 시간이 있지 않았을까? 남자나 여자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어깨를 펼 수 있던 때가 있지 않았을까?

_________
같은 세상, 다른 시선…그리운 카메라 모임

오십이 된 나는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지금의 내가 잃어버렸을 그 시절의 나를 찾아본다. 손톱만큼이라도 행복했던 나를 찾아 헤맨다. 생각해보면 그들 역시 성이나 성별에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 어리석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였는지도 모르는데. 동질감을 버리면 친구마저 버려야 할 것 같은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친구’라는 말은 모두에게 더욱 어려운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어떤 친구를 원하느냐고 물으면 지금도 여전히 망설여진다. 근원적인 동질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성별로 모든 것을 나누고 성별로 인간의 행동까지 억압하던 사회 속에서, 나는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와 닮은 사람 앞에선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어이없게도 그럴 때면 나는 내 안에 떠오른 의심과 싸우느라 진땀을 뺀다.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는 거울을 마주한 사람처럼, 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해 허둥대고 쪼그라들고 도망친다. 친구를 만나는 게 아니라 숙제를 만나고 돌아온 내가 된다.

그래도 수술을 받고는 훨씬 나았다. 없던 친구가 갑자기 생겼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는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사회를 내가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친구를 가질 수 없는 나를 스스로 괴롭히는 짓은 그만하고 싶었다. 그러고 나니 조금 가벼워졌다.

훨씬 자유로워진 몸으로 나는 카메라 모임에도 나가고,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모임에도 나갔다. 어차피 친구 같은 건 없으니까, 누구를 만나도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서의 간단한 동질감만 나누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나를 여자로 보든 남자로 보든 상관하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몇 차례 미디어에 노출되다 보니 아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 나를 ‘언니’라고 불러줬을 때, ‘누나’라고 불러줬을 때,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친구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고마운 사람, 나에게는 소중한 사람. 나는 그렇게 한 발 물러난 채로 정말 큰 위로를 받았다.

2000년대 중반 만났던 카메라 모임 사람들은 지금도 그리울 때가 많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브랜드인 ‘콘탁스’라는 낯선 이름의 필름 카메라를 둘러메고서, 때로는 장난감처럼 생긴 ‘로모’ 카메라를 반짝 손에 들고서, 모두 함께 같은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았다. 사진 속에 서로 담기도 하고 담기기도 하면서, 나는 우리가 서로 친근한 관계가 되었다고 믿을 수 있었다.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모습으로 섰지만 서로 다른 걸 담은 사진들을 돌려보면서, 우린 그 사람을 조금 더 알게 되고 서로에게 한 발 더 다가갔다. 같은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서로를 알게 되면서, 우린 훨씬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지금도 그때 그 시절이 참으로 그립다. 지금은 마스크를 쓴 서로를 카메라에 담는 수밖에 없겠지만, 사소한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서로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웃던 그날들이.

2012년 고등학교 동창이 김비씨가 사는 경남 양산에 놀러 왔을 때 부산 해변에 놀러 가서 찍은 사진. 사진을 찍는 김비씨 그림자가 보인다. 김비 제공
2012년 고등학교 동창이 김비씨가 사는 경남 양산에 놀러 왔을 때 부산 해변에 놀러 가서 찍은 사진. 사진을 찍는 김비씨 그림자가 보인다. 김비 제공

요즘은 양산과 부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우린 친구인가?’ 묻는다면 또 그만큼 서로를 잘 알거나 깊은 감정을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친구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서로에게 미안해져버리고 마는,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같이 산다.

몇몇은 성소수자인 나를 배려하느라 열심히 말을 고르며 조심스러워하시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내가 더 민망해지기도 한다. 괜히 나로 인해 그 자리가 불편해질까 더욱 무감한 나를 내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오히려 내가 먼저 실언을 해버리기도 한다. 실언이나 실수하는 일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로 인해 쉽게 어긋나버리는 관계여서도 안 되는 일. 친구가 아니더라도 환대하는 관계 속에서 우린 어쨌거나 비추어볼 수 있는 서로일 테니, 그것만으로 나에게 그 만남의 가치는 충분했다. 상대방에게도 그랬기를 바라지만, 나는 그쯤에서 마음을 접는다.

강연 자리나 모임 자리에서, 나는 청중들에게 평소에 궁금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봐도 괜찮다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내는 편이다. 나이 핑계를 대며 얼굴이 두꺼워져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강철 심장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루어 짐작하는 어떤 것, 조각 나 전해진 ‘팩트’들로 조작된 어떤 것, 바로 그런 것들로 인해 우리의 편견이 쌓여간다는 걸 알기에, 어느 쪽이든 잠깐의 불편함을 넘어서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야 우린 다른 서로를 알게 되고, 달라도 괜찮은 서로를 알게 되고, 그제야 홀가분해진 서로가 될 수 있기에.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무감하게 텅 빈 옆자리를 두드리며 이리 와 앉으라고 상대방을 향해 손짓할 수 있을 것이기에.

해묵은 말이지만 인디언들은 친구의 의미를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한다던데, 나는 그 말이 요즘에도 유효한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여러 가지 선을 그어, 친구일 수 없는 사람,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인맥을 위해서 친구인 사람, 단지 성별이나 고향이 같아서 친구인 사람, 정치적 신념이 같아서 친구인 사람, 그중에 누가 나의 친구이고 또 친구가 아닐 수 있을까?

_________
‘친구야, 잘 살아!’ 한마디뿐이었지만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친구’라는 말을 두려워하고 내가 먼저 도망치려 했으니, ‘친구’라는 말에 대한 나의 불편함은 정말 그리 큰 의미였을까? 성소수자인 나에 대한 그들의 손가락질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에 대한 나의 손가락질 역시 우리를 여기에 가두고 말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처음부터 친구가 되어도 괜찮은 우리였는데, 서로 너무 겁에 질려 있는 건 아닌지.

지난 명절에도 고향에 가보지 못했다. 명절 때마다 전화를 걸어온 친구들에게 내년에는 꼭 가겠다고 말했지만, 올해에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친구가 없다고 말했는데, 갑자기 친구들이 생각났다. 나의 첫 책 <못생긴 트랜스젠더 김비 이야기>를 열 권이나 사다가 자신이 다니던 회사 사람들에게 ‘겁도 없이’ 뿌렸다는 친구, 성전환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나에게 자신은 절대 반대한다고 눈에 불을 켰다가 나중에서야 진심을 다해 사과했던 친구, 수술을 하고 나타난 나를 보며 ‘우와, 너 정말 잘 어울린다!’고 무감하게 탄성을 질렀던 친구.

언젠가 고향에 가지 못한 나에게 전화를 걸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지 왁자지껄 술에 취한 목소리로 저마다 인사를 건네오던 친구들의 음성을 나는 기억한다. 기껏해야 ‘친구야, 잘 살아!’ 무감한 그 한마디뿐이었지만, 그 어떤 구구절절한 이야기보다 진심 가득했던 그 말들.

갑자기 얼굴이 붉어진다. 친구가 없다고 말했던 첫 단락을 지우려다가, 온통 부끄러움인 이 글 전체를 지우려다가, 그냥 이대로 남겨둔다. 끝까지 적는다. 우리 서로 사과하지 않아도 되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친구여서 고맙다는 말을 적기 위해. 그때 차마 하지 못했던 대답을 적기 위해. 친구들아, 너희들도 잘 살아!

김비. 소설가. 에세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등이 있으며, 배구선수 ‘김연경’처럼 모두에게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0년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 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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