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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태일이 평화시장 노동자에게 했던 질문을 50년 지나 던져보니…

등록 2020-11-09 17:57수정 2020-11-13 12:42

직장갑질119 ‘전태일 50주기 직장인 인식조사’
노동자 54.8%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앞두고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 다리에서 `예배공동체 능선·광야에서' 교인들이 전태일 열사 추모 50주기 거리기도회를 열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앞두고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 다리에서 `예배공동체 능선·광야에서' 교인들이 전태일 열사 추모 50주기 거리기도회를 열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작업량에 따라 수입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생활고에 쫓기는 임시공들은 노동시간 단축이나 임금인상 투쟁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하나라도 더 제품량을 늘려서 수입을 올리는데만 신경을 쓰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몸이 가루가 되든 말든 일감이 많아져서 노동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오히려 환영하는 경향까지 있게 된다. (전태일 평전, 조영래)

‘전태일 평전’의 저자 조영래 변호사는 1970년 스스로의 몸을 불태웠던 전태일이 평화시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뒤 가졌던 문제의식이 ‘인간소외’였다고 요약했다. 전태일과 조 변호사는 당시 그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이 50년이 지난 2020년까지 유효할 수 있다고 예상했을까? 오늘날 노동자의 54.8%는 ‘원하는 날에 쉬지 못하’고, 법정 근로시간 이상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49%는 ‘수당을 더 벌기 위해’ 초과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전태일 50주기 직장인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법정 근로시간인 주40시간(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하는 노동자에게 초과 근무 이유를 물어본 결과 ‘일이 바쁘니까’(54.7%)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고, ‘수당을 더 벌기 위해서’(30.0%), ‘사업주가 강요하기 때문’(15.3%) 등이 뒤를 이었다. 고용형태 별로 살펴보면, 정규직 노동자는 22%가 ‘수당을 더 벌기 위해서’ 초과 노동을 한다고 답한 반면 비정규직은 49%가 수당을 위해 초과 노동을 감수한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공통적으로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근무가 피로(67.2%)하거나 유해(9.7%)하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직장인의 한 달 평균 휴일은 8.25일로 조사됐는데 ‘8일 미만 쉰다’는 응답은 정규직(21.3%)보다 비정규직(28%)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원하는 날에 쉬고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4.8%는 원하는 날에 쉬지 못한다고 답했다. 쉬지 못하는 이유로는 ‘회사 규칙이니까’(26.3%), ‘수당을 더 벌기 위해서’(19.6%), ‘기업주가 강요해서’(8.9%) 등이 꼽혔다.

직장갑질119는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지난달 22일부터 26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를 실시했다. 일부 설문 문항은 50년 전 전태일이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했던 설문조사 내용을 지금 현실에 맞게 수정해 재구성했다.

노동환경에 대한 노동자들의 인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어디에 속하는 지에 따라 갈렸다. “전태일이 일하던 1970년대에 비해 2020년 한국사회 노동자(직장인)의 삶과 처우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십니까?”는 질문에 정규직 노동자는 51.5%가 1970년대에 비해 2020년 한국사회 노동자의 삶과 처우가 좋아졌다고 답한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37.8%만이 좋아졌다고 답했다. 고용의 안정성에 대한 질문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인식 차가 드러났다. 비정규직의 66.8%는 고용 상태가 불안정하다고 답했고 정규직은 절반 정도인 32.3%만 불안정하다고 답했다.

고용노동청이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47.5%)와 ‘그렇다’(53.0%)가 비슷하게 나타났지만 직장의 약자인 여성, 비정규직,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은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평균보다 높았다. 전체 응답자의 58.4%는 고용노동청과 근로감독관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언론사가 노동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0.1%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가 전태일의 유언을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3.2%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50년 전 전태일과 노동자들의 불안한 삶이 오늘의 전태일인 비정규직, 여성, 저임금 노동자 등에게 이어지고 있다”며 “노동법에서 배제된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고, 권한과 이용만 챙기는 원청 사업주에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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