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20. 여자 사람의 기도
혼자되고 교회 다니는 우리 엄마
저주 퍼붓던 사람들 떠올라 아파
아들로도 딸로도 제대로 나지 못한
내까짓 존재가 호강이고 복이라니
웃는 복희씨 마주볼 자신 없어
불 꺼진 형광등만 올려다보았다
20. 여자 사람의 기도
혼자되고 교회 다니는 우리 엄마
저주 퍼붓던 사람들 떠올라 아파
아들로도 딸로도 제대로 나지 못한
내까짓 존재가 호강이고 복이라니
웃는 복희씨 마주볼 자신 없어
불 꺼진 형광등만 올려다보았다

정말 한번도 본 적 없는 서로 다른 빛깔의 국화꽃이 담벼락 아래에 올망졸망 모여 피어 있었다. “내가 꽃 좋아하는 걸 어찌 아는지, 어디서 날아와서 저기에만 저렇게 꽃이 피었는지…. 참말로 예쁘지 않냐? 아이고야, 차암 좋다!” 복희씨는 밥주걱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 김비 제공
엄마가 무슨 속죄를 해?

두 손을 모으고서 기도하는 복희씨 얼굴만 바라보았다. 기도 같은 건 해본 적 없는 나는 복희씨를 향해 기도하는 모양새였다. 불쌍한 사람, 여자 사람이라서 더욱 불쌍했던 사람. 김비 제공
그래도 이런 내 몸 다행이야

삽날에 발을 올려 힘을 주니, 단단한 삽 끝은 단숨에 흙 깊숙이 파고들었다. 뚝뚝 깊이 박혔던 뿌리가 끊어지고 머리채처럼 가득 매달린 우슬 뿌리들이 쑤욱 뽑혀 나왔다. “아이고야, 니가 삽질을 다 한다이?” 몸에 힘을 실어 단박에 우슬을 캐내는 나를 올려보며 복희씨는 환호성을 질렀다. 사진 김비
내가 엄마 말년 복 전부 아니길

복희씨를 만나러 오면, 복희씨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마당에 무더기로 핀 꽃더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복희씨의 유일한 가족견 돌돌이와 이야기 나누는 일로는 부족했는지, 복희씨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시콜콜 모든 이야기를 쏟아냈다. 사진 김비
▶ 김비. 소설가. 에세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등이 있으며, 배구선수 ‘김연경’처럼 모두에게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0년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 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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