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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시효 넘겨 ISD 졌는데…대형 로펌 잘못은 없다는 재판부

등록 2020-11-24 04:59수정 2020-11-24 08:45

태평양, 시효 넘겨 안성주택-중국정부 소송 패소
안성주택, 손해배상에 1·2심 “태평양 책임 없다”
태평양이 중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간 중재소송을 내고 홍보한 내용. 태평양 누리집 갈무리
태평양이 중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간 중재소송을 내고 홍보한 내용. 태평양 누리집 갈무리

국내 중견 건설업체인 안성주택산업(안성주택)이 중국 정부를 상대로 첫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냈지만 시효를 넘긴 청구로 패소한 뒤 이를 대리한 국내 대형 법무법인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1·2심 모두 법무법인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안성주택은 2006년 중국 장쑤성 서양현에 27홀 규모의 골프장을 짓기로 중국 서양현 정부와 투자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착공 직후 근처에 다른 불법 골프장이 들어섰고 일부 토지는 처음 합의한 가격보다 4배나 비싸게 산 뒤에야 2010년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겨우 완공할 수 있었다. 추가 개발을 위해 토지를 제공해달라는 안성주택의 요구도 중국 서양현 정부는 거부했다. 결국 2단계 공사에 착수하지 못했고 불법 골프장과 출혈 경쟁으로까지 내몰리자 2011년 12월 모든 자산을 헐값에 중국 회사에 넘기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 투자 손실액만 161억원에 이른다.

안성주택은 2012~2013년 중국 서양현 정부에 토지비 인상과 추가 제공 거부 등 불법행위를 했다며 배상을 요구했지만 이마저 거부당하자 2014년 2월 법무법인 태평양에 사건을 맡기고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중재 신청을 하기로 했다. ‘한·중 투자 증진 및 보호 협정’(한·중투자협정)에 따라 지방정부가 아닌 중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 신청을 한 것이다. 태평양은 국내 투자자가 외국 정부를 상대로 낸 첫 ‘투자자-국가 간 소송’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같은 해 5월19일 중국 정부에 투자분쟁협상을 시작한다는 의향통지서를 보냈다. 이 문건에는 “2011년 10월 안성주택은 전 자산을 투자했던 금액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중국 매수인에게 처분할 수밖에 없었고 심각한 재정적 손실과 손해를 입었다”고 적었다. 이 내용은 같은 해 10월7일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에 낸 중재신청서에도 그대로 담겼다.

‘안성주택이 자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다’며 태평양이 적은 ‘2011년 10월’은 중국 회사가 골프장 인수 의향을 드러낸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는 시효 문제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다. 한·중투자협정에 규정된 시효는 ‘투자자가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 거나 알 수 있던 날부터 3년’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 날짜가 2014년 10월7일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이미 시효가 지났다’며 이 지점을 집중 공략했다. 중재 신청 직후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가 이에 대한 의견을 요구하자 태평양은 “(골프장) 지분 양도가 이뤄지기 전까지 안성주택은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랐기 때문에 손해나 손실을 처음 알았거나 알 수 있던 날은 (지분을 실제 양도한) 2011년 12월19일”이라고 대응했다. 그러나 중재판정부는 2016년 12월 “기록은 안성주택이 ‘손실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게 된 날짜’가 2011년 10월 이전이라고 반복해 변호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시효 도과를 이유로 패소한 안성주택은 “손해액의 일부인 150억원을 배상해달라”며 태평양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태평양이 법률전문가로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1·2심 모두 태평양의 손을 들어줬다. 1심에선 상임조정위원이 “80억원을 지급하라”며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을 내렸으나 양쪽이 받아들이지 않자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재판장 김지철)는 지난해 5월 “태평양이 시효를 지킬 수 있었는데도 중재신청서 제출을 지체해 넘겼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서울고법 민사33부(재판장 정재오)도 두차례 변론만 연 뒤 지난 7월 “안성주택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손해를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대법원에 상고한 배진우 안성주택 대표는 23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중재판정부의 각하 결정은 태평양이 낸 중재신청서에 기초해 내린 결론이었는데도 태평양에 면죄부를 줬다. 기한이 촉박했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면서도 시효를 염두에 뒀다던 태평양의 핑계가 통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지난달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법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다. 당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80억원을 지급하라는 권고는 태평양에도 과실 있다는 증거 아닌가. 그럼에도 태평양 손을 들어줬다”고 비판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시효는 국제중재에서도 초기에 중요하게 검토해야 할 요건”이라며 “의뢰인은 왜 이해하기 어려운 과실이 있었는지를 묻고 있는데, 법원은 과실이 없었더라도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 상당한 인과관계를 따지며 변호사 책임을 좁게 해석하는 태도를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이에 태평양 쪽은 “실제 중재신청서를 내기 전까지 안성주택과 수십차례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회의 등을 통해 법률상 주장 등을 정리했다”며 “안성주택과 중국 관계자 사이에 구두 약정이 많아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고 관련 문서들을 영문으로 쓰고 한글 번역문도 제공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중투자협정에 규정된 냉각 기간을 지키지 않을 경우 각하 결정을 받을 수 있어 분쟁을 제기한 날부터 4개월이 지난 뒤 중재신청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며 “안성주택은 중재신청서에 조기 각하의 빌미가 될 구절을 적은 것이 잘못됐다고 했으나 태평양이 독단적으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 안성주택에 내용을 확인받고 협의해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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