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회원들이 30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서울지방경찰청 박원순 수산전담팀의 수사 결과 발표’를 비판하고 박원순 사건 수사내용 공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30일 성추행 피소 사실 유출 의혹을 수사한 서울북부지검의 발표를 보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성추행 피해자 쪽이 고소를 준비한 지 하루 만에 여당 의원과 여성단체 활동가를 통해 자신이 피소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했다. 이후 그는 피해자가 성추행으로 고소할 경우 “시장직을 던지고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그로부터 5시간여 뒤 연락이 두절되고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
■ 여성단체 인사→여당 의원→서울시장 특보
이번 수사는 청와대나 검찰·경찰이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 피소 사실을 유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을 제기한 시민단체의 고발에서 시작됐다. 검찰은 박 전 시장 포함 총 23명의 휴대전화 26대를 확인하고, 총 50여명을 조사한 뒤 피소 사실 유출은 여성단체에서 시작됐다고 결론 내렸다. 수사 결과를 보면, 피해자 쪽 김재련 변호사는 지난 7월7일 오후 2시2분께 박 전 시장 고소장 접수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유현정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과 전화면담을 한 뒤 2시37분께 평소 알고 지낸 여성단체 대표 ㄱ씨에게 연락해 박 전 시장의 “미투 사건”을 고소할 것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시민단체 지원을 요청했다. 관련 사실은 ㄱ씨가 다른 단체 대표 ㄴ씨에게 전달했고, ㄴ씨한테 이를 전달받은 같은 단체 공동대표 ㄷ씨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알렸다. 다음날인 7월8일 남 의원은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이에 임 특보는 ㄷ씨에게 사실관계를 물은 뒤 이날 오후 3시에 박 전 시장을 독대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 지원 단체인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은 “공동행동에서 활동하는 단체는 (고소 사실을) 외부에 전달한 바가 없다. 공동행동 결성 전에 (유출한) 해당 단체를 배제했다”고 밝혔다.
■ “그런 것 없다”→“문제 될 소지”
7월8일 오후 3시 임 특보는 박 전 시장에게 “시장님 관련해 불미스럽거나 안 좋은 이야기가 돈다. 아시는 것이 있냐”고 물었지만 박 전 시장은 “그런 것 없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박 전 시장은 예정됐던 전·현직 구청장과의 저녁 자리에 참석했으나 이날 밤 9시30분께 임 특보에게 전화를 걸어 고한석 비서실장, 기획비서관 등과 함께 밤 11시까지 공관으로 오도록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밤 11시 임 특보가 재차 성추행 의혹 관련 내용을 물었고, 박 전 시장은 “피해자와 주고받은 문자가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해당 문자 내용에 대해 “메시지 존재 여부와 내용은 본건 수사 대상과 무관해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28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직권조사 발동 요청서를 전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시장직 던지고 대처”→“모든 분에게 죄송”
다음날인 7월9일 아침 박 전 시장은 피소될 경우 대처 방안을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오전 9시15분부터 10시5분까지 공관에서 고 비서실장과 만나 “피해자가 여성단체와 함께 뭘 하려는 것 같다. 공개되면 시장직을 던지고 대처할 예정이다. 그쪽에서 고발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빠르면 오늘이나 내일쯤 언론에 공개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 전 시장이 피해자의 고소 여부를 모른 상태에서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쪽이 전날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조사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은 고 비서실장과 헤어지고 약 40분 뒤인 10시44분께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메모를 남기고 공관을 떠났다. 같은 날 오후 1시24분께 임 젠더특보에게 “아무래도 이 파고는 내가 넘기 힘들 것 같다”는 텔레그렘 메시지를 보냈고, 15분 뒤 고 비서실장과 통화하며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기 버겁다’고 말했다. 오후 3시39분 그의 휴대전화 신호가 끊겼고, 다음날인 7월10일 0시1분 박 전 시장은 서울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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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행동 “결성 전부터 문제 단체 배제, 징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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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주고받은 문자 문제 될 소지” 박원순 전 시장, 피소 전 측근에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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