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들머리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한시간 남짓 만에 바로 수용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여당이 추진 중인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 법안에 강하게 반발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는 윤 총장의 사의 표명 한시간여 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윤 총장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때부터 시작된 윤 총장과 청와대의 1년6개월 갈등이 일단락된 것이지만, 임기를 넉달여 남겨놓은 윤 총장의 사퇴는 앞으로 정치권 전반과 검찰에 상당한 후폭풍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야권 유력 대선주자로 꼽혔던 윤 총장이 예상보다 일찍 움직이면서 내년 대선을 둘러싼 정치권의 지각변동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수사-기소권 분리에 대한 검찰의 반발도 총장 사퇴와 맞물리며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날 오후 2시 윤 총장이 직접 대검찰청 청사 앞에서 밝힌 사퇴 입장문은 현 정부를 향한 날 선 비판이자 사실상 정계 진출 선언으로 분석된다. 윤 총장은 “총장을 사직하려 한다”고 밝히며 그 이유로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 총장은 이어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이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267자의 짧은 입장문이었지만 ‘국민’이 두번 등장하고 ‘헌법정신과 정의와 상식, 자유민주주의 수호’ 등의 단어는 출사표를 연상케 했다.
앞서 윤 총장은 최근 주변에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한다. 윤 총장이 “(수사-기소권 분리는) 결국 나를 잡겠다고 발의한 법안인데 내가 그만둬야 끝난다”, “검찰에 계속 남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등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윤 총장의 한 측근은 “(총장이) 징계청구·직무배제 때에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수사권 박탈까지 추진되면서 물러나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고 전했다.
다만 윤 총장이 ‘수사권 지키기’를 명분으로 사퇴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정치에 나서는 순간 그런 명분은 사라지고 ‘자기 정치에 검찰을 활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정치적으로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검찰총장이 사실상 대선으로 직행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기 때문이다. 후임 총장이 어떤 수사를 하더라도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게 된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현 정권이 원했던 적폐수사로 총장에 오른 그가 어느 순간 청와대에 각을 세우더니 집요하게 밀어붙여 야권의 대선 주자가 됐다. 그사이 검찰은 존폐 위기에 몰렸다. 총장이 정치권으로 떠나면 남은 후배들은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배지현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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