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고등검사장들이 8일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을 신설해 수사-기소권 분리를 추진하는 여권의 움직임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표현 수위를 조절하는 등 강도는 세지 않았다. 청와대와 여권이 수사청 신설에 관해 ‘속도조절론’에 무게를 싣고 있는 만큼 향후 경과를 지켜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전국 고검장 6명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회의를 열어 검찰총장 공백에 따른 검찰 조직 안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 주재로 열린 회의에는 조상철 서울고검장, 오인서 수원고검장, 강남일 대전고검장, 구본선 광주고검장, 장영수 대구고검장, 박성진 부산고검장이 참석했다. 회의는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3시20분까지 약 5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윤석열 전 총장이 여당의 수사청 설치 움직임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사퇴한 지 나흘 만에 고검장들이 조직 수습책 등을 논의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고검장들은 사실상 수사청을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대검은 회의 뒤 “형사사법시스템의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입법 움직임에 대한 일선의 우려에 인식을 같이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방향으로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적극 개진하겠다”는 고검장들의 입장을 전했다. 앞서 대검은 지난 3일까지 수사청 설치 법안에 대한 일선 검사들의 의견을 모은 바 있다.
이날 고검장들이 비교적 절제된 수위에서 우려를 표명한 것은 일선 검사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거나 노골적 반발이 표출될 경우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여당이나 문재인 대통령 모두 새로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제도적 안착을 강조하며 속도조절을 하는 분위기인데, 검찰만 계속 강경하게 나가면 여론만 더 나빠질 것”이라며 “일단은 조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우선이고, 수사청 추진은 여권의 움직임을 지켜봐가며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날 회의에선 검찰총장이 공석 상태에서 조직을 추스를 방향도 논의됐다. 고검장들은 “총장 공석 상황에서 검찰 구성원 모두가 흔들림 없이 국민 권익 보호와 공정한 법 집행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자체 검찰개혁도 차질 없이 수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서도 고검장들은 “개정 형사법령 시행상의 혼선과 국민 불편이 없도록 제도 안착에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고 대검이 전했다.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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