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남북공동선언’ 32돌 2일 문익환통일의집에서 노제
유골은 문익환 목사 잠든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봉안
유골은 문익환 목사 잠든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봉안

지난달 16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별세해 유골로 귀국한 ‘분단시대 망명객’이자 통일운동가 정경모(1924∼2021) 선생의 노제가 2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동 문익환통일의집에서 엄수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고 정경모 선생의 노제가 2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문익환통일의집에서 열렸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고 정경모 선생의 노제가 2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동 문익환통일의집에서 엄수되고 있다. 고인의 조카손주 정준호(가운데·맏형의 장손주)씨와 조카 정진영(맨 오른쪽·동생의 큰딸)씨가 유족 대표로 영정과 유골함을 들고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이정아 기자

문익환통일의 집에 전시된 정경모 선생과 문익환 목사의 사진. 1989년 3월 25일 중 베이징공항에서 북쪽에서 보내온 특별기에 오른 정경모(왼쪽) 선생과 문익환(오른쪽) 목사가 나란히 앉아 평양으로 향하고 있다. 두 사람은 당시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내외기자단에게 발표할 도착 성명을 다급히 작성해야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고 정경모 선생의 노제가 2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동 문익환통일의집에서 엄수되고 있다. 이정아 기자

고 정경모 선생의 노제가 2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동 문익환통일의집에서 엄수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정경모 선생 봉안위 이부영(앞줄 오른쪽) 공동위원장을 비롯한 추모객들이 노제를 함께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고 정경모 선생의 노제가 엄수된 2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문익환통일의집에 고 정경모 선생과 고 문익환 목사 등이 1989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화동과 찍은 사진 프린트가 세워져 있다. 이정아 기자

정경모선생 유해 봉안위 공동위원장인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2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문익환통일의집에서 고 봄길 박용길 장로의 친필로 만든 ‘4·2공동성명’ 병풍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아 기자

고 정경모 선생의 노제가 2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동 문익환통일의집에서 엄수되고 있다. 이정아 기자

고 정경모 선생의 노제가 2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동 문익환통일의집에서 엄수되고 있다. 이정아 기자

2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동 문익환통일의집 마당에 매화가 피어 있다. 이정아 기자

고 정경모 선생의 유해 봉안식이 2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엄수되고 있다. 마석/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2일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고 정경모 선생의 조카손주(정준호)씨가 일본에 있는 고인의 둘째 아들 정아영씨가 써보낸 유족 인사말을 대신 전달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2일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의 문익환 목사 묘지 쪽에서 바라본 고 정경모 선생의 유골 봉안식 장면. 1989년 ‘4·2남북공동선언’의 두 주역이 32년 만에 영혼으로 재회한 순간이다. 김경애 기자

2일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봉안된 정경모 선생의 묘지 쪽에서 바라본 건너편 기슭 소나무 사이 진달래꽃 부근이 문익환 목사의 묘지이다. 김경애 기자

2일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정경모 선생의 유해 봉안식을 마치면서 추모객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함께 부르고 있다.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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