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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다 같이 꽃나무 아래 나란히 서는 날이 오리라

등록 2021-04-02 22:51수정 2021-04-03 02:33

[토요판]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28. 어느 봄날의 청소

‘열심’이 과연 잘사는 일인가
냉장고, 발코니, 팬트리…
봄맞이 대청소 뒤 만난 봄꽃
내가 봄을, 꽃을 몰랐구나

꽃나무 아래 꽃 가지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어 봐야 할 일
모두를 위한 봄이 맞는지
다시 온 봄처럼, 나를 쓴다

나는 눈에 보이는 꽃나무들을 모두 가리키며 탄성을 질렀다. 저기도 꽃, 여기도 꽃. 몇년 전 봄에 찍은 사진이다. 김비 제공
나는 눈에 보이는 꽃나무들을 모두 가리키며 탄성을 질렀다. 저기도 꽃, 여기도 꽃. 몇년 전 봄에 찍은 사진이다. 김비 제공

멀리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집이 나를 향해 꿈틀거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떠나 있던 나를 기다리던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문 너머의 집 풍경이 일제히 나를 돌아보는 것 같다.

“나 왔다!” 나는 꼭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집 안에 대고 인사하는 버릇이 있는데, 나 말고 내 삶을 떠받치는 무수한 것들을 향한 인사다. 살아 있다는 게 무어 그리 대단한 권력인지 인간은 오직 제 몸 하나에만 붙들려 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나는 종종 생명 없는 것들에게도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낡은 것들, 부러진 것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나와 같이 내 삶을 지켜온 생명 없는 몸들은, 늙어가는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걸 일깨운다. 집의 주인이 아니라 집의 일부가 되어, 그제야 나도 내 머리 위 먼지를 털어낸다.

쓸모없는 짓이 피워낸 것들

연극 공연 때문에 20일 넘게 서울에 머물다가 집에 돌아오니, 스물네평짜리 낡은 아파트는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울음소리를 들은 건 아닌데, 나는 화분에 물부터 줬다. 토요일마다 신랑에게 물을 줬다는 확인 문자를 받았으니 꽃나무에게 굶주림은 없었을 텐데, 어쩐지 잎사귀들도 축 처졌다. 굶주림인가 목마름인가, 목마름이 곧 굶주림인가, 나는 귀라도 기울이는 사람처럼 화분 앞에 쪼그려 앉았다. 새로 돋은 제일 어린 잎을 쓰다듬었다.

둥치는 도대체 왜 굵어지지 않는 거지? 아직 여린 줄기를 손가락으로 찔러 보고, 그래도 이 정도 자랐으면 충분하지, 새빨간 열매 한알이었을 때를 떠올린다. 서울에 사는 진과 령 동성 부부의 집 화분 아래 떨어진 열매 몇알을 주워와 흙 속에 묻어놓고 물을 주던 때를 생각했다. 이게 과연 싹이 나오기나 하는 걸까, 흙 속의 사정은 헤아리지도 못한 채 그 속에 잘 자라고 있을 거라 믿으며 ‘쓸모없는 짓’을 계속하고 또 했던 그때. 결국엔 파란 싹 하나를 살려낸 ‘쓸모없는 짓’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던 그때.

더 가까이 다가가, 꽃나무 아래 서 보고 꽃 가지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어 봐야 할 일인데, 그러지 않고도 꽃을 알고 봄을 안다고 믿어버렸다. 김비 제공
더 가까이 다가가, 꽃나무 아래 서 보고 꽃 가지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어 봐야 할 일인데, 그러지 않고도 꽃을 알고 봄을 안다고 믿어버렸다. 김비 제공

다시 또 믿는 수밖에 방법은 없다. ‘쓸모없는 짓’이 피워낸 것들을 마음속에 새기며 어제 나를 지켰던 다짐을 기억해야 한다. ‘쓸모없는’ 희망을 움켜쥐어야 한다.

3주 만에 냉장고를 열어보니 썩은 것들이 여기저기 축축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깝다고 버리지 못해 미뤄놓기만 했던 팬트리 안은 퀴퀴한 동굴 속 같았다. 발코니에 말려두었던 꽃들마저 이제는 보내달라고 제 몸을 부수어내며 발버둥.

신랑이나 나나 십년 가까이 서로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기본적인 ‘생활지수’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먹고, 자고, 씻고, 치우는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의 공동생활에 대한 기준이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에.

조금 먼지가 굴러다니면 신랑은 청소기를 들어 빨아들이는 대신 손바닥으로 쓱쓱 긁어모아놓고,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면 나는 실내화 바닥으로 쓱쓱 긁어 현관 앞에 모아놓는다. ‘어떻게 청소를 매일 하며 살지? 당신이 깔끔한 사람이 아니라 참 다행이야!’ 우린 몇주 동안 묵힌 먼지를 털어내려 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서로 얼굴을 보며 배시시 웃고 만다. ‘그래도 우리 집은 바람이 잘 통해 환기는 자주 시키잖아?’ 허탈하게 웃으며 서로 엉덩이를 걷어찬다.

잘 산다는 건 열심히 사는 거라고 우린 믿고 있지만, 나는 가끔 그게 맞나 되짚어볼 때가 있다. 남이야 어찌 되었든 내 삶에만 열심인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의 ‘열심’이 정말 잘 사는 일인가 의심스럽다. 나의 성공이 반드시 타인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 건 아닌데, 우리는 곁에 선 사람을 지워가면서 너무 많은 걸 잃어버렸다. ‘잘 사는 일’의 현명함을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으련만, 어찌 된 일인지 요즘 우린 잘 살기 위해 오직 한가지 이야기만 한다. 끝없이 더 가지려고 하고, 가지지 못한 나를 지독히도 몰아붙인다. 그 정도 가진 양반이라면 그만해도 될 텐데,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식 핑계 가족 핑계 대며 끊임없이 끌어모으기만 한다. 나무 열매를 모두 따지 않고 까치밥을 남겨주는 마음 따위 이제 우리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다짐 이전에 나의 열심이 무엇을 위한 열심인지 들여다보아야할 텐데, 이제 그 해답은 아주 간단해졌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조금도 알지 못하는 우리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대청소 좀 합시다!

“자기야, 우리 일요일에 대청소 좀 합시다!” “그럽시다!” 대답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끝내버리면 또 며칠 이 핑계 저 핑계 뭉그적거리다가 시간을 보낼 게 뻔한 일. 일단 모아두었던 커다란 배달용 종이봉투 속에 버릴 것들을 밀어넣었다. 지금 당장 쓸 것,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모두 끌어냈다. 역사가 되고, 추억이 되고, 기억이 되는 그 모든 것을 다 봉투 하나에 끌어 담았다.

고마운 마음들을 기억하려고 말려두었던 꽃다발들도 모두 끌어냈고, 언젠간 쓰겠지 잘 씻어 모아두었던 유리병들도 끌어냈고, 발코니와 팬트리 바닥은 비눗물을 풀어 솔로 문질러 닦았다.

일요일까지 집 안에 쓰레기봉투들을 여기저기 세워놓았다가, 낡은 것들이 쏟아지면 다시 또 봉투 안에 집어넣었다가, 늦게까지 뒹굴거리는 신랑을 일으켜 쓰레기 더미들을 끌고 나갔다. 어디에 쓸지 확신도 없는 채 얼마나 끌어 모았는지, 재활용 쓰레기봉투 안에 유리병은 한가득했고 대형 봉투는 찢어질 듯 부풀었다.

“기쁨의 시간!” 재활용 쓰레기봉투는 금세 찢어질 듯 부풀어 오른다. “분리수거 쓰레기 버리는 기쁨의 시간!” 그림 박조건형
“기쁨의 시간!” 재활용 쓰레기봉투는 금세 찢어질 듯 부풀어 오른다. “분리수거 쓰레기 버리는 기쁨의 시간!” 그림 박조건형

쓰레기봉투를 나눠 들고 밖으로 나서니,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나무들 속에 새빨간 동백꽃들이 활짝 피었다. 키 큰 꽃나무 가지들에도 튀밥 같은 꽃들이 가득 매달렸다. 우리 아파트 주변에 꽃나무들이 이렇게 많았나? 쓰레기봉투를 내려놓고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드는 나를 돌아보며 두 눈을 부라리는, 끌려 나온 일요일의 중년남.

“자기야, 동백꽃 좀 핀 것 봐!” 나는 지지 않고 눈에 보이는 꽃나무들을 모두 가리키며 탄성을 질렀다. 저기도 꽃, 여기도 꽃. 재활용품을 모아두는 곳에도 꽃나무에 꽃이 가득 매달렸다.

“안녕하세요.” 재활용품들을 정리하는 경비 직원분에게 인사하니, 너무나도 소중한 반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네, 안녕하세요.” 반려견과 산책 나온 주민은 나에게 달려드는 반려견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덕분에 손짓하며 주민분과도 눈인사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편의점에서 또 다른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사 가지고 올라오며 다시 꽃나무를 향해 뛰어갔는데, 뒤에 섰던 신랑은 이미 혼자 아파트 단지 안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이 인간이?’ 쫓아 올라가니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래도 여기 이렇게 기다려줬다고 혼자만 당당.

“매일 집에만 갇혀 있으니 꽃이 나는 줄도 모르지요.”

나는 입술을 삐죽이고 말았지만, 그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내가 보는 세상은 발코니 창밖으로 보이는 게 전부. 하늘이 보이고, 꽃이 보이고, 사람들이 보이고, 마을이 보였으니 세상을 다 보았다고 믿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 꽃나무 아래 서 보고 꽃 가지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어 봐야 할 일인데, 그러지 않고도 꽃을 알고 봄을 안다고 믿어버렸다.

​다른 방식으로 꽃을 볼 방법

마스크를 썼다고 꽃을 보지 못한다는 건 핑계 아닐까. 봄은 멀리 가야 하는 거리에만 오지 않고, 이렇게 모든 사람 앞에 속속들이 오는데. 세 사람 네 사람 모인 자리에만 오지 않고, 이렇게 혼자라도 내 앞에 봄은 충분히 아름다운데.

“자기야, 동백꽃 좀 핀 것 봐!” 나는 지지 않고 눈에 보이는 꽃나무들을 모두 가리키며 탄성을 질렀다. 저기도 꽃, 여기도 꽃. 재활용품을 모아두는 곳에도 꽃나무에 꽃이 가득 매달렸다. 김비 제공
“자기야, 동백꽃 좀 핀 것 봐!” 나는 지지 않고 눈에 보이는 꽃나무들을 모두 가리키며 탄성을 질렀다. 저기도 꽃, 여기도 꽃. 재활용품을 모아두는 곳에도 꽃나무에 꽃이 가득 매달렸다. 김비 제공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꽃을 볼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이전의 것들만이 꽃이고 봄이라고 믿으며, 고집부리기만 하는 우리는 게으를 뿐이다. 새로 피어난 꽃들 속에 얼굴을 묻고 꽃나무의 빛깔을 그제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내가 봄을 몰랐구나, 꽃을 몰랐구나, 깨우쳐야 할 일. 그러고도 고개를 들어 혹시 내 앞에 온 봄이 모두를 위한 봄이 맞는지, 내가 놓친 봄은 없는지 봄 앞에 선 마음을 다시 되짚어야 할 일.

열심히 사는 일이란 같이 사는 고민을 해야 하는 일일 뿐, 그래서 더 넉넉한 내가 되기 위해 열심이어야 할 뿐, 모든 것을 걸고 열심이던 어떤 생은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는 일이었다. 벌써 몇번째 잔혹한 봄인가? 나는 그걸 다시 또 알게 되었다.

오늘(3월31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해야 할 내 청소는 끝이 났지만 여전히 마음엔 더께가 가득하다. 버리고, 닦고, 모두 털어내려 했는데도, 가벼워지지 못했다. 그래도 언젠가 우리 다 같이 흉하고 못난 생각들을 털어낼 날이 오리라. 어리석고 모자랐던 구석을 되돌아보고, 다 같이 꽃나무 아래에 나란히 서는 그날이. 다시 온 봄처럼, 나를 쓴다. 지긋지긋하다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그래도 나를 쓴다. 봄처럼, 우린 너무 쉽게 잊히기 때문이다.

▶ 김비. 소설가. 에세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등이 있으며, 배구선수 ‘김연경’처럼 모두에게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0년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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