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노래 ‘깡’, 11년 전 <무한도전> 알래스카 특집 유행어 ‘무야호’, 발매된 지 4년 만에 역주행에 성공한 브레이브걸스의 노래 ‘롤린’. 이 모든 예들은 유튜브를 중심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모으고 화제성을 불러일으킨 요소들을, 티브이가 바쁘게 차용해 온 것들일 뿐이다. 사진은 2017년 3월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미니앨범 ‘롤린’ 발표 쇼케이스를 하는 브레이브걸스. 연합뉴스
최근 내 주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 칼럼이 하나 있다. <기자협회보>에 실린 문화방송(MBC) 장슬기 데이터전문기자의 칼럼 ‘누가 언론사 목에 디지털을 달 것인가’가 그것인데, 문화방송으로 실습을 나오기로 한 대학생이 쓴 자기소개서에서 인용했다는 칼럼의 도입부는 다음과 같다. “유튜브에서 <놀면 뭐하니> 클립을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찾아봤더니 엠비시에서 만들었더라고요. 그때 엠비시를 처음 알았어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11번은 문화방송, 7번과 9번은 한국방송(KBS), 6번은 에스비에스(SBS)라고 알고 자란 내 세대 사람들은, 칼럼 도입부에서부터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칼럼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기도 했다. 에이, 설마. 과장이겠지.
티브이도 ‘일부’ 보는 유튜브 세대
사실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10대들이 더 이상 티브이를 보지 않고 대신 유튜브를 본다는 게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니까 말이다. 10대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구글이나 네이버 대신 유튜브에 검색해서 정보를 찾아보고, 예능이든 드라마든 유튜브에 올라온 하이라이트 클립으로 소비하고, 뉴스 또한 유튜브에 수두룩한 ‘이슈 총정리’ 유형의 채널들을 통해 알아본다는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게 벌써 5~6년 전이다. 그때 ‘요즘 10대들’이라 불리던 이들이 이제 20대가 되었으니, 자기소개서를 쓴 학생의 나이대쯤 되었으리라. 흔히 구매력이 높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세대라서 광고주들이 선호한다는 ‘2049’ 시청자 블록의 가장 끝단, 20대 초반 시청자들이 이제 티브이에서 멀어진 것이다. 과거에는 모두가 티브이를 보는데 그중 일부가 유튜브도 보는 거였다면, 이제는 바야흐로 모두가 유튜브를 보는데 그중 일부가 아직도 티브이를 보는 시대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티브이는 정해진 편성표에 맞춰 프로그램을 챙겨 봐야 하는 시간적인 한계가 존재하지만, 유튜브는 일단 한번 콘텐츠가 올라오면 시청자가 편한 시간에 아무 때나 콘텐츠를 시청하면 된다. 티브이만 존재하던 시절에 성장한 이들에게는 유튜브가 ‘새롭고 편리한 미디어’였으나, 이미 티브이와 유튜브가 공존하는 시절에 성장한 이들에겐 유튜브가 당연한 것이고 티브이가 ‘오래되고 불편한 미디어’일 테다. 이제 사람들은 티브이 프로그램을 알아가기 위해 굳이 편성시간에 자신의 시간을 맞추는 불편한 일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유튜브에 올라온 하이라이트 클립으로 접하거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하이라이트 장면 캡처 사진을 통해 접하면 되니까 말이다.
이제 티브이는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크게 사랑받거나 유행하면서 ‘밈’으로 작동했던 코드들을 되짚어보자. 코미디언 김해준이 선보인 캐릭터 ‘최준’이나, 유병재와 추대엽이 창조해낸 캐릭터 ‘카피추’, 가수 비의 노래 ‘깡’의 새삼스러운 재조명, 벌써 11년 전 문화방송 <무한도전> 알래스카 특집편에 등장했던 유행어 ‘무야호’의 뜬금없는 대유행, 발매된 지 4년 만에 역주행에 성공한 브레이브걸스의 노래 ‘롤린’에 이르기까지. 이 중 티브이가 제 역할을 해서 유행시킨 코드는 없다. 이 모든 예들은 유튜브를 중심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모으고 화제성을 불러일으킨 요소들을, 티브이가 바쁘게 차용해 온 것들일 뿐이다.
티브이가 유튜브에 주도권을 완전히 잃었다는 이야기는 방송사와 티브이 산업 종사자들에게나 위협적인 이야기이지, 콘텐츠 소비자들에게도 위협인 건 아닐 것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그만, 재미있는 콘텐츠만 지속적으로 제공해준다면 콘텐츠 소비자들은 그게 티브이든 유튜브든 큰 상관이 없으니까. 하지만 방송사가 수많은 유튜브 채널 중 하나, ‘원 오브 뎀’으로 전락하면서, 어쩌면 우리는 한 시대를 정의하는 공통의 콘텐츠 경험도 잃어버리게 된 건 아닐까?
과거 채널 수가 적던 시절, 지상파 방송사들이 기록했던 시청률들은 실로 경이롭다. 한국방송 드라마 <첫사랑>이 기록한 시청률 65.8%나, ‘귀가시계’라는 별호를 얻었던 에스비에스 드라마 <모래시계>가 기록한 시청률 64.5% 같은 기록은 다시 봐도 신기하다. 물론 2010년 무렵부터 케이블 채널들이 급성장해 지상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지상파가 주도적으로 점유하던 시청률의 평균은 대폭 낮아졌지만, 그럼에도 한 시대를 정의하는 콘텐츠 경험이라는 건 여전히 유효했다. 한국방송 <1박2일>이나 문화방송 <무한도전>처럼, 시청률 자체는 10%대 안팎으로 나오더라도 당대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전 국민적인 인지도를 확보한 채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들은 꾸준히 존재했다. 그것은 티브이라는 플랫폼이 지닌 독보적인 힘이자, 각 방송사가 지닌 브랜드의 힘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당대를 정의하는 공통의 콘텐츠 경험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물론 제이티비시(JTBC) <스카이캐슬>이나 <부부의 세계>, 티브이조선 <미스터트롯> 시리즈처럼 20~30%대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이 아직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러나 이제 이런 프로그램들을 한번도 보지 않은 채 시절을 보내는 이들도 많아졌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는 선택하고 즐길 만한 콘텐츠의 가짓수가 무한하다. 굳이 ‘대세’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을 챙겨 보지 않아도, 누구든 자신이 즐길 만한 대안을 얼마든지 소비할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성향을 겨냥한 콘텐츠가 동시다발적으로 인기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시대가 된 덕에, 이제 ‘대세’를 따르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대세’가 뭔지 몰라도 전혀 지장이 없는 시대가 된 셈이다.
11년 전 문화방송 <무한도전> 알래스카 특집편에 등장했던 ‘무야호’ 할아버지.
방송사가 독보적 지위를 잃으면서
공통 콘텐츠 경험도 상실돼
입맛대로 영상 보며 확증편향은 강화
이해와 설득의 공간으로 복원 안될까?
입맛 맞는 영상만…공론장 설 자리 잃어
굳이 대세에 따르지 않아도 누구나 자신의 취향을 보장받을 수 있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로 이행한다는 이야기이니 좋은 일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방송사는 단순한 콘텐츠 제공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폭넓은 시청자층을 기반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언론사이자 다양한 의견을 모아 드라마나 예능 안에 녹여내 한 사회의 논의를 이어가는 공론의 장이기도 했다. 방송사들이 독보적인 지위를 잃고 소구하는 시청자층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지금, 방송사의 미디어 파워는 약해졌으며 덩달아 방송사들이 수행하던 공론의 장으로서의 역할 또한 희미해졌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사는지 잘 모르고,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도 불편할 일이 없어졌으니까.
티브이의 뒤를 이어 유튜브가 공론의 장 역할을 물려받았다면 참 간단한 결말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유튜브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단순히 예능이나 드라마만 입맛대로 골라 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뉴스 또한 각자의 정파적 관점에 부합하는 뉴스만 골라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레거시 미디어에서의 뉴스 소비도 이미 충분히 정파적이었는데, 내 입맛대로 뉴스를 골라 보며 확증편향을 키울 수 있는 유튜브 공간에서의 뉴스 소비는 더 극단적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뉴스 시청 패턴을 알고리듬이 인식하기 시작하면, 유튜브는 자꾸 비슷한 성향의 정보만을 큐레이션 해준다. 나와 관점이나 입장이 다른 이들의 의견도 접하고 타협점을 모색하며 중간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완전히 휘발된 셈이다. 모두가 다 함께 보는 뉴스도, 예능도, 드라마도 사라진 시대, 한 시대를 정의하며 공론의 장 역할을 해주던 공통의 콘텐츠 경험이 사라졌다.
각 방송사나 언론사마다 뉴미디어를 공략하며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는 사람들은 많다. 저마다 자신들의 콘텐츠를 소비해줄 충성도 높은 독자를 찾느라 여념이 없고, 엠제트(MZ) 세대에게 맞춤형 정보를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트렌드를 연구하는 이들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먼저 고민해야 하는 건, 이렇게 저마다 다른 이들을 한자리에 묶어내어 공론의 장을 복원하는 방법이 아닐까? 개개인에 맞춘 콘텐츠 경험만을 파고드는 동안,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할 공간이 사라지고 있는데?
▶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 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명 한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