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엽 대법관 후보자가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군복무 가산점제’(군 가산점) 부활 움직임에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법률전문가들도 20여년 전 위헌 결정이 난 군 가산점 부활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천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27일 군 가산점과 관련한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의 서면질의에 “국방의 의무 이행에 상응하는 국가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성별에 따른 즉각적인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어 논란의 소지가 많다”고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그는 이어 “의무에 따른 보상이나 배려의 제공 등은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근본적으로 군 복무 기간 중 국방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병역의무 이행이 사회경쟁 시스템에서 도태되는 기간이 되지 않도록 각종 복무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7재보궐 선거에서 20대 남성이 국민의힘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자, 이들의 표심을 되돌리기 위해 군 가산점 부활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 당 소속 김병기 의원은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군 복무자를 국방유공자로 예우하는 법률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군대 간 것 벼슬 맞다. 기존 국가 유공자에게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취업, 주택 청약, 사회 복귀 적응 등에 있어 국방 ‘유공자’에 걸맞게 정당한 예우를 하겠다”고 썼다. 같은 당 전용기 의원은 15일 공기업 승진평가에 군경력을 반영하는 내용의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는 “군 가산점 재도입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겠다”며 “위헌이라 다시 도입하지 못한다면 개헌을 해서라도 전역 장병이 최소한의 보상은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남국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군 복무를 마친 전역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국가공무원법 개정 등을 통해 전국 지방자치단체 채용 시 군에서의 전문 경력이 인정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여당이 철 지난 무리수를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12월 군 가산점 제도가 헌법상의 평등권,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재는 당시 “헌법이 국방의 의무를 국민에게 부과하고 있는 이상 의무를 이행했다고 해서 특별한 희생으로 보고 일일이 보상해야 한다고 할 수 없어 군가산점제에 헌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납세의 의무를 다했다고 국가가 보상을 해주지 않는 것과 동일한 논리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군 가산점 제도와 관련해 “여성, 장애인 등이 공직에 입직할 기회를 광범위하게 배제하고 국제인권기준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군 가산점 제도는 군 복무를 한 사람들을 국가가 비용을 들여 보상하는 제도가 아니라, 군에 가지 않은 사람의 몫을 빼앗아서 군에 다녀온 사람에게 보상하는 약탈적인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군 가산점 비율이나 부여 횟수를 축소해 시행하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군가산점제가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있으나 마나 한 제도를 도입한 것이고,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면 합격해야 할 사람의 권리를 약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당이 부동산 대란과 ‘내로남불’ 행태 등 실정을 심판한 민심은 외면한 채 엉뚱한 성대결 문제로 원인을 돌려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석희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은 “위헌 판단을 받은 군가산점제는 여성과 장애인, 면제자 등을 차별하는 제도”라며 “지금 20대는 ‘공정의 가치’에 대해 예민해하고 불합리함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 표심으로 보여준 것인데, 이를 군 가산점 도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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