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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직업성 암, 혼자 끌어안지 말고 알려주세요

등록 2021-04-28 15:35수정 2021-04-29 09:48

노동단체들, 집단 산재신청 예고…국내선 발생 대비 0.01% 승인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119와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플랜트건설·학교비정규직·화학섬유 노동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전국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운동 선포식을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119와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플랜트건설·학교비정규직·화학섬유 노동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전국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운동 선포식을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청소할 때 쓰는 약품에 살이 녹아내리고 구역질을 하면서도 고통을 참으면서 일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약품에 들어있는 수산화나트륨이 암 유발성분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16년 차 학교 급식실 조리사 박화자씨)

“1990년대까지 현장에서 일하면서 석면을 덮고 잠을 잤습니다. 누구도 석면의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 지금도 대형 배관에는 원가 절감이라는 이유로 석면을 사용합니다.” (이상원플랜트건설노조 위원장)

노동단체들이 ‘직업성 암환자’ 찾기에 나섰다. 직업의 특수성 또는 열악한 작업 환경 탓에 암에 걸린 노동자들을 모아 집단으로 산재를 신청하기 위해서다.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119’(직업성암119)와 보건의료노조, 학교비정규직노조, 플랜트건설노조, 화학섬유연맹 소속 노동자들은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전국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운동’ 선포식을 갖고 “(정부는) 직업성 암을 전수조사하고 산업 재해로 인정하라”고 주장했다.

이상원 플랜트건설노조 위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전국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운동’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이상원 플랜트건설노조 위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전국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운동’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직업성암119 정책자문기관인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윤근 소장은 “유럽에서는 해마다 1만명 이상이 직업성 암으로 사망하는데, 우리나라는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기껏해야 200명 정도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떤 작업을 하면 어떤 암에 걸리는지에 대한 자료를 종합하고 직업별·산업별 노조와 함께 암환자 찾기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며 직업성 암환자를 찾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매년 신규발생 암 환자의 4% 정도를 직업성 암으로 추정하는 것을 고려할때, 이를 우리나라 매년 신규 암 환자 24만명에 적용하면 국내 직업성 암 환자 규모는 9600명 수준이라는게 이 소장의 설명이다. 국내 직업성 암 산재 승인 건수를 보면, 2015년 83건, 2016년 113건, 2017년 178건, 2018년 205건 등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지만 이는 신규 암환자의 0.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직업적·환경적 특성 탓에 암 발병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호소했다. 안태진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정책부장은 “매년 3만여명의 조합원이 상대로 실시하는 보건의료노조 실태조사(2020년)에 따르면, 직업성 암에 걸렸다고 응답한 조합원 179명 중 산재나 사학연금의 재해보상(대학 병원 노동자들)을 신청했다고 답한 수는 9명에 불과했다. 업무상 질병을 묻는 항목에서 암을 선택한 수가 179명인데, 이 중 5%만 보상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합원들은) 멸균을 위해 산화에틸렌 가스도 많이 사용하고, 항암제 조제나 약물 분쇄 등도 아직 별도의 조치 없이 하는 병원이 있다”며 보건의료사업장도 암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직업성암119가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낸 자료를 토대로 우리나라 노동환경에 맞춰 재분류해보니, 보건의료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의료기구 소독 작업을 하며 발암물질로 알려진 에틸렌 옥사이드(EO)를 사용해 혈액암 발병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양의 음식을 단시간에 준비해야하는 급식조리원들은 튀김 등 고온의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cooking fumes·쿠킹흄) 속 각종 발암물질을 흡입해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박화자씨는 “수원의 한 중학교에서 2017년에 폐암환자가 나왔는데 1년 뒤 돌아가셨고 3년의 지나서야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았다. 급식실 안의 공기를 배출하는 후드가 고장나 공기질이 나쁜 환경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플랜트건설 노동자들 또한 석탄을 사용하는 작업 탓에 석면, 결정형 산화규소에 노출돼 폐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119와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플랜트건설·학교비정규직·화학섬유 노동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연 전국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운동 선포식에서 ‘암도 산재다’라고 쓴 대형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119와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플랜트건설·학교비정규직·화학섬유 노동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연 전국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운동 선포식에서 ‘암도 산재다’라고 쓴 대형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직업성암119는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의 도움을 받아 조합원(퇴직자 포함) 중 직업성 암환자 100여명을 모은 뒤 5월26일 집단으로 산재를 신청하기로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각종 의료행위·심야노동에 의한 혈액암과 유방암 환자를,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식당 및 급식노동에 의한 폐암환자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또 플랜트건설노조는 용접·보온·도장에 의한 폐암과 혈액암 환자를 찾고, 화학섬유연맹은 석유화학·플라스틱·식품 가공에 의한 혈액암과 폐암에 집중해 신청자를 받을 예정이다. 4월28일 기준 17명의 조합원이 산재 신청에 동의했다.

이날 선포식에는 환경성 암 피해자들도 참여해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암 집단 발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전북 익산 장점마을의 최재철 주민대책위 위원장도 “주민 80명 중 40여명 정도가 암을 앓고 있다. 폐암이 제일 많고 희귀병인 피부암 발병률도 전국에 견줘 23% 정도가 높다”며 “정부가 나서서 특별조치를 해줘야 하는데 울화통이 터진다. 이제는 주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절규했다. 장점마을 주민들은 2001년 비료공장이 설립되고 난 뒤부터 암에 걸리기 시작했다. 환경부는 비료공장에서 담뱃잎을 불법 건조할 때 나온 발암물질이 발병 원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직업성암119는 집단산재신청을 마친 뒤 직업성암 제도 개선 입법활동을 펼치고 환경성 암환자 찾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진행해 나갈 방침이다. 직업성암119는 “직종별, 지역별 감춰져 있는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운동은 시대적 요구”라며 “이를 통해 사업장 발암물질 안전관리제도와 직업성암 피해자 보상 및 관리제도 개선을 위한 전환점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바로가기: 유독 한국에서만 연간 ‘직업성 암’ 발생이 200명대라고?…“실제로는 9600명 육박할 것”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9880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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