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대한변호사협회가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1200명 이내로 확정하라는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변협 제공
변호사시험(변시) 합격자 수 축소를 주장해 온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사상 처음으로 실무연수 인원을 줄이겠다고 나서면서 변협은 물론, 법무부에도 비판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실무연수란 변시 합격자들이 변협이나 로펌 등에서 6개월간 받아야 하는 실무 교육이다. 변협이 연수 인원을 줄이기 위해 “그동안 부실한 연수가 진행돼왔다”고 사실상 ‘자기 고백’을 하면서, 법조계에서는 부실 연수를 방치해온 변협뿐 아니라 이를 수수방관해온 법무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무연수를 둘러싼 논란은 변협이 최근 “연수 인원을 200명으로 제한한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변협은 그동안 700~800명가량의 변시 합격자 교육을 담당해왔다. 그런데 올해부터 ‘양질의 교육을 위해 200명만 받겠다’고 연수 인원을 축소해 제10회 변시 합격자 1706명 중 로펌 연수(약 1천명) 및 변협 연수에서 탈락한 500여명은 연수를 받지 못할 위험에 처했다. 변호사법상 시험에 합격해도 실무연수를 받지 못하면 사건 수임이나 개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500명은 시험에 붙고도 변호사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변협도 인정했듯 실무연수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문제는 수년째 이어져 왔다. 일반적으로 로펌에서 연수를 받는 수습 변호사는 자료조사나 소장 작성 등 서류 작업을 맡는다. 선배 변호사와 사건을 공동 수임하거나 변론에 참여하는 것은 법상 불가능하다.
그나마 이런 서류 업무도 로펌에 소속된 경우엔 비교적 참여할 기회가 많지만, 수백명의 집체교육이 이뤄지는 변협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한다. 변협의 올해 연수 일정을 보면 6개월 중 3개월은 강의 위주 교육이고, 현장연수는 두 달에 불과하다. 현장연수도 관리지도관을 맡을 변호사가 부족해 그동안 허술하게 이뤄졌다는 게 법조계 목소리다. 변협은 “관리지도관 한명당 수습 변호사 한명이 배정돼야 하나, 관리지도관으로 나서는 변호사가 부족해 경력이 2년에 불과한 변호사 관리지도관이 대여섯 명의 수습 변호사를 지도했다”며 “법률과는 관련이 없는 서적을 읽고 독후감을 작성해서 제출받아 대체하는 등 부실한 연수도 이뤄졌다”고 말했다. 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도 “변협에서 연수를 시작해도 교육 기간 내내 다른 로펌 (연수) 자리를 알아보는 수습 변호사들이 많았다”고 증언했다.
법조계에서는 부실한 실무 교육에는 변협과 법무부 모두 책임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변협의 주요 역할 가운데 하나가 수습 변호사 연수인데, 그동안 별달리 연수 품질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협이 요구한 대로 변시 합격자 수가 1200명으로 줄지 않자, 돌연 ‘양질의 연수’를 내세우며 연수 인원을 줄인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박은선 변호사(법률사무소 유)는 “변협은 변시 합격자가 실무연수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연수처를 다양하게 알아보고 다리를 놓아주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며 “변협의 실무연수 악용을 비판하는 건 기존 변호사들 모두 여유롭기 때문이 아니다. 변호사들이 배고프다는 게 자격을 갖춘 이들을 불합격시키거나 실무연수에서 배제하는 합리적 이유가 될 순 없다”고 꼬집었다.
‘연수 대란’이 일어날 조짐인데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법무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진다. 올해 법무부, 법제처 등에서 72명의 연수 인원을 뽑겠다고 밝혔으나, 연수를 못 받을 변호사가 500명인 상황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변호사 교육을 민간에 위임해온 모순이 이번 일을 계기로 터져 나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논란에 “(법무부가) 그동안 수습 변호사 교육을 변협, 로펌 등 사기관에 맡겨둔 (결과)”라며 “(사법연수원처럼) 변호사연수원을 만들거나, 실무수습 변호사도 소송대리인 업무를 맡을 수 있게 하는 등 실무연수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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