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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들것에 누워서도 스마트폰 본 그는, 순간 무얼 하고 있었을까

등록 2021-05-29 14:43수정 2021-05-29 15:19

[토요판] 비평 - 배달노동

주문 들어온 음식을 제때 맞추기 위해 도로를 빠르게 지나가는 배달 라이더. 연합뉴스
주문 들어온 음식을 제때 맞추기 위해 도로를 빠르게 지나가는 배달 라이더. 연합뉴스

시간압박에 시달리는 배달노동자
노동을 해도 노동자는 아닌 현실
사고 2회 이상이면 계약해지까지

작년 가을인가, 집 근처 사거리에서 사고가 났다. 도로 위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보며 늘 불안했는데 결국 일이 터졌다. 배달 오토바이 한대와 승용차 한대가 부딪쳐서 사거리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배달노동자로 보이는 사람이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옮겨지는 순간을 목격하며 지나왔다. 그런데 들것에 누워 있는 사람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크게 다치진 않은 모양이구나 정도로 생각했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방금 교통사고가 나서 들것에 실린 채 구급차에 막 오르는 그 순간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게 의아했다. 그는 그 순간 뭘 하고 있었을까.

 사람보다 음식

박정훈의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나는 ‘들것에 실려 스마트폰을 보던 노동자’가 그 순간 무엇을 했을지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책에는 여러가지 일화가 소개된다. 그중 한 노동자는 유턴을 하다 미끄러져 손에 피가 났고 배달업체에 전화했더니 음식은 괜찮은지, 배달할 수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커피 한잔도 배달이 가능한 구조는 사람보다 음식을 걱정하게 만든다. 제 몸이 망가져도 음식은 망가지면 안 된다. 이런 환경에서 배달노동자들은 사고가 나도 ‘본능적으로’ 음식부터 살핀다. 피가 흘러도 두 다리를 끌고 갈 수 있다면 기필코 배달을 하려 한다.

오토바이가 망가졌을 때는 근처 동료에게 연락해 오토바이를 빌린 다음 배달을 끝까지 수행한 경우도 있었다. 누군가를 편히 먹게 하기 위해 정말로 목숨 걸고 하는 배달이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한국에서 18~24살 청년의 산재 사망 원인 1위가 ‘배달’이다. 이 사망사고의 10% 이상이 출근 첫날 발생했고, 20% 이상은 보름 안에 발생했다.

도로 위에서 보자면 솔직히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난폭운전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오토바이 때문에 충돌 직전에 겨우 상황을 모면한 자동차 운전자가 한둘이 아니다. 차량 운전자는 욕하고 오토바이 운전자는 욕할 시간도 없이 달려간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교통법규 다 지키면서 8시간 근무하면 하루에 20건도 못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 최저임금도 안 된다. 배달노동자들이 이렇게 위험하게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간 압박 때문이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면 고객의 원성을 사는 것만이 아니라 주문한 음식을 취소하기도 한다. 나아가 고객은 배달에 대한 점수도 매긴다. 이 점수 하나하나가 배달노동자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생각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배달 건수가 늘고 배달노동자도 늘어났다. 이어서 배달노동자의 사망도 늘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 음식 배달을 하다가 숨진 노동자가 111명이다. 배달노동자 사망이 연평균 9%씩 늘고 있다. 스마트폰 앱으로 주문해서 제집 현관까지 음식이 도착하는 편리한 시대지만 그 과정은 스마트하지 않다. 편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마련될수록 누군가는 빠르게 다치고 죽어간다.

지난해 4월29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배달노동자들이 ‘산재 전면 적용’, ‘배달용 보험료 현실화’, ‘플랫폼 갑질 근절’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해 4월29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배달노동자들이 ‘산재 전면 적용’, ‘배달용 보험료 현실화’, ‘플랫폼 갑질 근절’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노동하지만 노동자는 아니다

청소년 노동의 실태가 담긴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 지음)에서 다리가 골절이 되고도 음식을 날라야 했던 10대 노동자의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음식이 다 뜨겁고 무거워요. 칼국수 이만한 걸 들고 나르죠. 다리가 골절이 돼가지고 통깁스를 했는데 알바 대타가 안 구해진다고 나와달라고 해서 통깁스 한 채로 일을 나가기도 하고요. 최저임금은 거의 안 맞춰줘요.” 나르는 노동을 하는 사람이 다리가 부러진 채 음식을 날라야 하는 상황이 충격적이었다.

2019년에 나온 이 책을 최근 다시 보면서 전과 달라 보이는 문장이 있었다. “알바 대타가 안 구해진다고”라는 부분이다. 아마도 이 청소년 노동자이자 학생은 식당에 소속되었을 것이다. 4대 보험도 산재 처리도 어렵다고 했다. 한편 식당 주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사고가 나서 갑자기 다른 노동자를 구해야 하는 일이 번거로울 것이다. <대한민국 치킨전>(정은정 지음)은 음식점 주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문제로 배달 중의 인사 사고를 언급하며 “배상 문제부터 보험 처리 문제, 그리고 오토바이가 망가지는 일이야말로 치킨집을 때려치우고 싶게 만드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사연”이라고 한다.

바로 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주는 게 배달대행업체다. 배달대행사의 광고 문구는 “사고가 나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였다. 식당은 직접 배달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 중개 플랫폼과 계약하면 된다. 그리고 대행업체는 배달노동자와 계약한다. 식당에서는 배달노동자를 구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며 노동자가 다쳐도 언제든지 다른 노동자를 쓸 수 있다. 플랫폼 위에는 늘 노동자들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동력은 사용하지만 노동자의 지위는 갖지 못하게 만들고, 소비자들의 평가를 통해 노동의 서비스 품질은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한 식당에 소속되지 않고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어쩐지 모두에게 합리적인 듯하다. 배달 플랫폼은 이 노동자들을 파트너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 배달 서비스 플랫폼 회사와 배달노동자 사이의 계약서는 알면 알수록 경악스럽다. 일단 배달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배송사업자다. 회사와 노동자(라이더)는 아무 관계가 없다, 손님의 별점 평가를 통해서 앱 접속을 막을 수 있다,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배송사업자의 책임과 비용으로 해결해야 한다, 회사는 이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 개인사업자의 지위로서 ‘갑’에게 종속되지 않는다, 위탁 계약 업무는 ‘을’의 재량과 책임하에 수행한다, 본 계약에서 약정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의무를 부담한다… 등의 내용이 이어진다. 기가 막힌다. 모든 책임을 배달노동자 개인이 진다. 어떤 곳은 사고 2회 이상이면 업체와 계약 해지도 가능하다. 정말 ‘특수’한 고용 형태다.

플랫폼 노동에서 앱 접속 차단은 아무런 항변도 못 한 채 어느 날 갑자기 사무실 문이 잠겨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과 같다. 나아가 그 안에서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무슨 평가를 하고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로 쫓겨나는 꼴이다. 과거에는 문자 한통으로 해고한다고 어처구니없어했지만 오늘날에는 그러한 통보도 필요 없다. 앱 접속을 차단하면 된다. ‘파트너’라고 불리는 배달노동자인 ‘라이더’들은 수수료에 대해서도 그저 통보를 받는다. 다음달에는 수수료가 올라갈지 내려갈지 그들은 알 수 없다.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파트너’이다.

현재 이 노동자들을 ‘플랫폼 종사자’로 규정하고 이들을 보호하는 플랫폼종사자보호법안이 지난 3월 국회에 발의되어 입법이 추진 중이다. 그러나 역시 법적으로 ‘근로자’의 지위를 보장하지 못한다. 배달노동자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를 결국 노동자 아닌 제3의 ‘특수’한 지위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프랑스, 스페인, 독일, 미국 일부 주 등에서는 플랫폼 노동자를 법적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배달노동자 전성배씨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배달노동자 전성배씨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3월 플랫폼종사자보호법 국회 발의
‘노동자 아닌 노동자’ 양산 우려도
서구선 플랫폼 노동자성 속속 인정
알고리즘의 지배, 과연 스마트한가

 플랫폼이라는 이름

‘디지털’이라는 언어와 개념이 대중화되던 때에도 그랬다. 스마트, 플랫폼 등의 단어는 세련된 인상을 준다. 농업도 ‘스마트 팜’ 시대라고 강조한다. 언제나 미래를 지향하는 이 언어 뒤에는 주로 ‘혁신’ 혹은 ‘혁명’과 같은 단어들이 따라오곤 한다. 재빨리 이 개념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낡은 이미지를 얻는다. 세련된 미래 지향적 시스템으로 보이는 플랫폼은 공유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정말 공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이익도 공유할까. 혹시 착취를 공유라 부르는 것은 아닐까.

플랫폼, 곧 승강장 위에는 노동자들이 일감을 기다리며 모여 있다. 소비자의 위치에서 이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고객이 앱을 통해 상품을 ‘콜’ 하면 그의 도착 예정 시간과 동선은 확인할 수 있다. 상품은 제시간에 도착한다. 만약 늦으면 고객이 노동자에게 낮은 평점을 매길 수도 있다. 그사이 벌어지는 노동은 알 필요 없다. 이처럼 고객은 노동자에게 감시자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한다.

노동자와 고객에 대한 정보는 모두 플랫폼 기업이 쥐고 있다. 배달 주문 플랫폼은 음식점, 주문자, 배달노동자 사이의 관계를 틀어쥐고 모든 정보를 독점한다. 플랫폼 기업은 많은 사람이 접속하면 할수록, 그래서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면 할수록 자원을 가진다. 네트워크라고 하지만 이 ‘연결’은 사실상 플랫폼 기업의 정보 수집이나 다름없다.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이 말한 대로 “데이터는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원유”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소통하지만 물리적으로 각자 다른 시공간 속에서 홀로 이동하기에 동료들을 만날 수가 없다. 누군가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 일하는 배달노동자들의 시간은 치밀하게 지배받는다. 그들은 채팅방을 통해 식사 시간과 화장실 출입까지 보고한다. 정보의 비대칭과 소통 창구의 독점 속에서 노동자들은 감시받지만 동료와 연결되기 힘들다. 다시 말해, 인간은 고립되고 데이터는 연결되었다.

음식을 나르는 오토바이는 오늘도 위험천만하게 달린다. 가장 배고픈 시간에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한다.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이들을 ‘도로 위의 무법자’로 내몬다. 모두가 위험한 상황이다. 일상의 산재에 우리는 ‘고객의 이름으로’ 보이지 않게 참여한다. 음식 주문하는 사람들이 과한 죄책감을 공유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플랫폼이라는 언어를 걷어내고 한 인간의 노동을 직면하는 사회가 되길 원한다. 산재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먹고사는’ 문제라면 공동체가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플랫폼 위에서 모두의 노동을 감시하지만 안전을 관리하진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감시할 것인가. 무엇을 먹는가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먹는가이다. 무엇보다 사람 피 말리게 하는 벌금제는 사라져야 한다.

인공지능 자동배차시스템은 노동자의 감정과 체력을 고려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인간에게 업무를 맡기지만 인간은 마땅히 호소할 곳을 찾지 못한다. 사람을 상대로 투쟁을 외치던 시절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책임은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정보와 이익은 기업이 쥐고 있는 이 기만적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상처는 데이터에 저장되지 않는다. 알고리즘의 지배는 ‘연결’이 아니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 정현종 시인은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말했다. 음식이 집으로 배달되는 과정도 그렇다. 배달노동자들은 코로나19를 뚫고, 비바람을 뚫고 주문자의 집에 도착한다. 그러나 질주하는 오토바이 속에 노동자는 보이지 않는다. 플랫폼 위에는 늘 노동자들이 대기 중이다. 코로나 시대,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는 배달노동의 현실을 돌이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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