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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더 강한 여성가족부를 원한다

등록 2021-07-18 09:15수정 2021-07-20 20:57

[토요판] 비평
여성가족부 폐지론

이준석 “여가부 폐지 대선공약 내야”
강력한 경쟁자인 젊은 여성들 겨냥
2008년 3월22일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서울 중구 무교동 여성부에서 업무보고를 받기 전 변도윤 장관에게 여성부 배지를 받은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여성부 폐지를 시도했다가 당시 야당인 민주당과 여성계의 비판을 받고 권한을 축소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8년 3월22일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서울 중구 무교동 여성부에서 업무보고를 받기 전 변도윤 장관에게 여성부 배지를 받은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여성부 폐지를 시도했다가 당시 야당인 민주당과 여성계의 비판을 받고 권한을 축소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나는 네가 한 일을 모른다. 실은 알더라도 모르고 싶다. 너희들은 하는 일이 없다. 이러한 억지를 담은 익숙한 질문이 있다. 여성단체는 뭐 하나, 여성가족부는 뭐 하나. 이때 ‘뭘 했냐’는 말은 뭘 했는지 알고 싶어서 묻는 질문이 아니다. 뭘 했는지를 지우기 위한 권력의 윽박지르기이다. ‘뭘 했냐’는 말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 말이 판을 깐다.

보수 정당은 김대중 정부 시절 만들어진 여성부를 줄곧 없애려고 했다. 이명박 정권 시절 여성부 폐지를 시도했지만 당시 야당인 민주당과 여성계의 비판을 받고 대신 축소했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 유승민 의원은 2017년에 이어 이번에도 여가부 폐지를 공약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여가부가 “캠페인 정도 역할로 전락”했다고 말하며 여가부가 하는 일을 왜곡·축소한다. 그는 일관되게 반여성적 행보를 이어나간다. 야당 대선 후보들에게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제대로 내야 한다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1. “여가부는 뭐 하냐?”

어차피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듣고 싶은 말을 듣는 게 중요한 이들은 이준석의 목소리에 환호한다. 예를 들어 이준석은 여성할당제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며 “2030 남성의 수가 2030 여성의 수보다 1.5배 가까이 많다”고 주장했다. 일단 1.5배라는 수치가 틀렸으나 백번 양보해서 남성이 더 많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된 수사라고 이해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2030 세대 남성의 수가 왜 많은지는 말하지 않는다. 원래 자연 성비(성별 감별 없이 출산했을 때의 성비)에서도 남성이 약간 많으나 지금 20대 중반에서 30대 후반이 태어난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는 여아 낙태가 심해서 남아가 더 많이 태어난 것이다.

가정마다 아들이 최소 한명은 있어야 한다는 ‘문화적 남성할당제’하에서는 결혼 제도 안에서 생물학적 재생산을 하다 하다 안 되면 결혼 제도 바깥에서 재생산을 하거나 양자를 들였다. 기술이 발달한 뒤에는 과학의 힘으로 여아를 제거하여 이 ‘남성할당제’를 유지했다. 태어날 때부터 ‘남성할당제’의 특혜 속에서 인간이 될 기회를 더 많이 누린 남성들은 권력을 권리로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일부 남성들’은 권력과 권리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엉뚱한 지점에서 억울함을 토로한다. 1990년의 출생 성비는 116.5로 자연 성비인 105 전후보다 훨씬 높다. 남아 선호의 영향으로 남성 인구가 더 많아지자 이제 와서 남성의 자리가 없다며 여성보다 불리한 척을 한다.

7월13일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에서는 여가부 폐지를 주제로 토론했다. 폐지를 주장하는 패널들은 꾸준히 “여가부는 고유 업무가 없다”, “다른 부서가 더 잘한다”, “여가부는 능력이 안 된다”라고 말하며 여가부를 적극적으로 폄하한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여가부는 “시한부 임시조직”, “한시적 조직”이라 반복적으로 말했다. 원래 여가부가 뭘 하는지는 모르지만 마음에 안 들던 사람들은 이런 말들에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친다. 여경 무용론부터 여가부 무용론까지, 여성이 무엇을 하는가는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여권이 신장되었으니 여가부가 필요 없다고 한다. 여성가족부 장관 자리는 대선 캠프 인사에게 주는 ‘전리품’이란 표현까지 쓰는 유승민 의원을 보면 역설적으로 여성부의 필요성을 더 실감한다.

2000년 여성부의 전신인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문패. 1981년 설치된 ‘정무장관(제2)실’로 시작하여 1998년 2월 대통령직속 특별위원회로 설치되었다. 이후 2001년 1월29일 여성부로 승격되었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2000년 여성부의 전신인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문패. 1981년 설치된 ‘정무장관(제2)실’로 시작하여 1998년 2월 대통령직속 특별위원회로 설치되었다. 이후 2001년 1월29일 여성부로 승격되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는
남성폭력, 임금차별, 강간문화 없이
안전한 세상 때 논의해도 늦지 않아

2. 여성을 내부 식민지 삼는 정치

선진국 남성을 선망하며 한편으로는 그들과의 헤게모니 싸움을 벌여온 우리 사회의 가부장들은 소수자와 약자를 내팽개치는 정치를 통해 권력을 확인한다. 오늘날에도 여성을 내부 식민지 삼지 않고는 ‘능력’도 ‘공정’도 ‘기회’도 말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정치가 펼쳐진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추행 사건 여파로 치뤄진 4월 보궐선거 이후로는 엉뚱하게 여성 탓을 하면서 여성징병제를 논하더니 대선 경쟁이 시작되자 이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카드를 꺼냈다. 최근 이준석 대표가 여가부 폐지에 이어 통일부 폐지를 언급한 이유는 여성이라는 내부 식민지와 북한이라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정치적 결집을 도모하려는 시대착오적인 얕은 수작이다. 통일부와 여가부를 폐지해야 할 부처로 언급하는 정치적 행위는 오히려 분단 국가에서 여성의 위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욱 생각할 필요를 전달한다. 분단 국가에서 여성은 훨씬 더 정치적 도구화되기 쉽다.

20세기 한국 미술은 유례없이 모자상을 많이 제작했다. 성모와 예수가 함께 있는 유럽의 모자상이 1930년대 이후 식민지 조선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탓이 있지만,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도 연관 있다. 민족의 단결을 위해 일제시대 후반부터 모성을 강조하는 그림이 증가하여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늘어난다. 사회가 힘들면 힘들수록 책임감 있고 희생적인 강한 어머니 이미지를 만들었다. 전쟁을 거치며 실제로 아버지가 부재하기도 했지만, 살아 있다고 해도 ‘가장’의 역할을 하기 힘든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때 모성을 강조하는 방식은 주로 어린 아들을 안고 있거나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모성에 대한 강조는 여성을 전통적 성역할에 가두려는 의도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하지 못한 채 ‘영원한 아들’의 정체성에 갇힌 가부장제 남아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어머니를 숭배하는 듯 보이는 이 아들들은 식민지와 전쟁을 통해 상실한 남성 권력을 복구하는 방식으로 실은 여성을 최선을 다해 멸시한다.

‘젠더 호명과 경계 짓기’(주창윤, 2011)는 해방 이후부터 2010년대까지 젠더 호명을 분석하여 어떻게 이 사회가 여성을 타자화하면서 남성 권력을 쟁취해왔는지 보여준다. 한국 남성들은 ‘양갈보’에서 ‘개똥녀’에 이르기까지 여성에게 다양한 방식의 모욕적 이름을 새겼다. “열등한 남성성, 종속된 남성성(당시 한국 사회에서 경제 원조와 군사 지배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미군이 우세했다는 점에서)은 여성에 대한 타자화된 호명을 통해서 헤게모니를 쟁취하고자 했다.” 이러한 타자화된 호명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진화하여 각종 ‘녀’를 탄생시켰다. 오늘날 암호화폐를 활용하여 불법 성착취물을 생산-유포-소비하는 이들은 여성을 ‘노예’라 부른다.

게다가 10년 전에 나온 이 논문에서도 “이십대 여성이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그 현상을 분석한다. 젊은 여성은 “어머니처럼 확고한 지위를 갖지 못한다는 점”으로 취약하지만 늘 새롭게 “부상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젊은 여성’에 대한 불안 섞인 힐난과 조롱은 근대 이후 꾸준히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앞으로 더욱 극심해질 반여성적 정치는 겉보기에는 젊은 남성과 젊은 여성의 대결 구도로 보이지만 실은 여성 일반을 식민지 삼으려는 전략이다. 극소수의 여성을 제외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여성들은 마음 편히 무시할 수 있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리는 반면 젊은 여성들은 강력한 경쟁자다. 젊은 여성들이 요즘 스스로를 ‘정치적 망명자’라고 하는 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기존의 진보-보수의 구도에서 여성은 소외되었다는 점을 절절히 인식하기 때문이다.

성 격차 108위, 임금차 OECD 1위
여자를 제물 삼는 정치 더는 안 돼

3. 반동의 시절, 여성(가족)부는 더 커져야 한다

2017년 한 교사 페미니즘 동아리가 페미니즘 책 두권을 읽고 해체 요구를 받은 일이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단체가 한 청년문화공간 대관 신청을 거부당했다. <자본론> 강의하면 국가정보원에 신고하던 시절(2013년에도 있었다)에서 간신히 벗어나는가 싶더니 이제는 페미니즘 교육을 새로운 마녀로 지정하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을 불편하게 보는, 이른바 ‘반동’은 항상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반동과 퇴행의 순간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불안감이 극도에 달한 ‘정상’ 권력의 몸부림이다. (손가락 모양에 집착하는 그 우스꽝스러움을 보라!)

여성에 대한 실질적 차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에도 여성부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별도의 부처가 필요 없다고 한다. 급기야 이선옥 작가는 ‘100분 토론’에서 여성가족부가 ‘반헌법적’이고 ‘반인권적’이라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해 이선옥 작가는 7월19일 <한겨레>에 “당시 토론에서 “(여가부의 고유목적이) 위헌적인 기구”, “기본권 침해”라고 발언했으며 여성가족부를 “반헌법적”, “반인권적”이라고 표현한 적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여성부는 1975년 프랑스에서 만든 이후 현재 전세계 130여개 나라에 정부 부처로 존재한다. 여성부가 “특수한 집단만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말이야말로 여성을 보편적 시민으로 보지 않는 반인권적 시각이다.

한국에서 여성부의 역사는 20년이지만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사회부 안에 부녀국이 있어 오늘날의 여성가족부 역할을 했다. 당시 여성운동의 주요한 의제 중 하나는 축첩제 폐지였다. 이때 부녀국이 축첩자 조사를 담당했다. 다시 말해 ‘부녀국’이라도 있었기에 여성운동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제도적 통로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름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여성부’의 많은 역할 중 하나는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바꾸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여성가족부가 하는 업무의 극히 일부만 소개해보자.

아이 돌봄, 청소년 체험활동, 청소년 국제교류, 청소년 방과후아카데미, 청소년 근로권익 보호, 청소년 복지시설 운영 지원, 청소년 수련활동 안전 지원 등이 있다. 지금 여기에서 언급한 내용은 ‘여성’이 들어간 이름을 빼고, 한부모 가정이나 다문화 가족 지원도 빼고,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정책도 뺀 일부의 정책만 나열한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이 아니고, 소위 ‘정상 가족’에 해당하며, 제도권 교육을 받는 사람이라 마치 자신과 여성가족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여성가족부의 정책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정현백 전 장관이 밝혔듯이 여성가족부의 예산 30%가 청소년 정책에 쓰인다. 여성가족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도 운영한다. 이곳을 찾는 남성 피해자는 2020년에 2019년보다 3.6배 늘었다.

여성가족부의 역할 조정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이준석 대표가 옳은 말을 했다. 그의 말대로 여가부는 빈약한 부서다. 정부 부처 중에서 가장 적은 예산과 적은 인력으로 일한다. 그러니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여성가족부의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하고, 더 중요하게 부각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다.

여성가족부가 사라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가정폭력’이라 불리는 남성의 폭력이 사라지고, 이혼 뒤 양육비 지급을 하지 않는 무책임한 아버지들이 없어지고, 성별에 따른 임금차별이 철폐되고, ‘빈곤의 여성화’라는 언어가 낯설어지고, 도처에 뿌리내린 각종 성폭력과 불법촬영이 옛날이야기가 되어 ‘강간 문화’가 없는 안전한 세상이 된다면, 하다못해 최소한 여자만 보면 밥 타령을 하는 남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그때 우리는 여성가족부가 여전히 필요한지 논의해도 늦지 않다. 여성을 인간으로 보는 그날이 온다면 말이다.

참고로, 2019년 12월 현재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53개국 중 108위이다. 성별 임금격차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그럼에도 여성가족부 폐지를 말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여성가족부의 존재 이유가 절실하다. 여자를 제물 삼는 정치는 지속가능하지 않아야 한다.

이라영 예술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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