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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의 진짜 비결은 굴하지 않는 솔직당당함

등록 2021-06-05 14:54수정 2021-06-05 15:58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홍진경이 말하는 것

세계적 모델, 사업가, 방송인 거쳤고
글쟁이마저 질투할 글솜씨도 수준급
웃긴 캐릭터에도 숨겨진 내공 가득

카메라 앞 장단점 가감없이 공개해
무섭도록 솔직함에 시청자도 열광
홍진경이 거둔 모든 근사한 성공은 가난이나 아픔 같은 단점까지 가감없이 드러내는 솔직함과 대범함에서 시작된다. 그런 그의 당당한 태도는 “나처럼 용기 내서 따라오라”는 듯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방송화면 갈무리
홍진경이 거둔 모든 근사한 성공은 가난이나 아픔 같은 단점까지 가감없이 드러내는 솔직함과 대범함에서 시작된다. 그런 그의 당당한 태도는 “나처럼 용기 내서 따라오라”는 듯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방송화면 갈무리

“제가 진짜 인정하는 게, 다독가예요. 좋은 책들을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막 열권씩 구입을 해서. 항상 책장에 어려운 책들 많이 꽂혀 있거든요. 제 수준엔 어려운 책들이에요.”

홍진경이 못다 한 교과 공부의 한을 푼다는 내용의 카카오티브이 웹예능 <공부왕찐천재>의 한 장면, 홍진경이 학창시절에는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가족들이 증언하는 대목에서 남동생 홍경한은 조용히 말했다. “웃긴 캐릭터로, 지금까지 콘셉트로 방송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내공은 가족들만 알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천재이자 바보, 모두 그렇듯”

가족이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홍진경의 활동을 지켜봤던 사람들이라면 아마 다들 넉넉히 인정할 말이다. 살면서 한가지 분야에서 명확한 성공을 거두는 것도 힘든 세상을, 홍진경은 종횡무진으로 가로질러왔다. 패션모델로 데뷔해 2년차에 한국인 최초 베네통 모델이 되었고,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이영자가 생애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을 옆에서 함께했으며, 어머니의 손맛을 살린 김치와 만두 사업을 크게 일으키기도 했다. 잊을 만하면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 등장하는 ‘홍진경 싸이월드 시절 글들’은 또 얼마나 문장이 단정한지. “많은 양의 글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잠재된 영감과 직감을 건드려줄 몇 줄의 글이 필요할 뿐이지요. 그리고 제 경험상 그러한 글은 어떤 이에게는 좋고 어떤 이에게는 좋지 않은 그런 게 아니라 한결같이 누구에게나 자욱을 남겨버리는 필연의 무게가 있는 생명체라는 겁니다. 어떤 문장은 분명히 그러합니다.만은 그러나 그런 보석을 발견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한심한 활자들을 뒤적여야 한답니까.” 같은 그의 문장 앞에서 질투 어린 감탄을 했던 글쟁이가 나 하나는 아니리라. 하나같이 내공이 단단하지 않다면 거둘 수 없는 성공들이다.

물론 홍진경은 이런 성공 사례들을 나열하며 “뇌순녀는 콘셉트일 뿐이고 우린 모두 홍진경에게 속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홍진경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저도 어떤 면에서는 천재고, 어떤 면에서는 바보죠. 예를 들어 이번에 김춘수의 ‘꽃’과 함께 배운 도치법이나 공감각적 심상 같은 개념어는 몰라요. 진짜 백지상태죠. 하지만 시가 지닌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는 감수성과 지식은 충분히 갖고 있거든요.”(‘‘공부왕찐천재’ 홍진경, 마흔다섯에 느끼는 ‘배움의 희열’에 대하여’. <경향신문> 김지혜 기자. 2021년 3월25일) 홍진경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카메라 앞에서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안다. 이제 와서 중학교 수준의 수학문제를 푸는 걸 용감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 또한, 자신의 장점을 사랑하기에 단점 앞에서 주눅들지 않는 그의 건강한 자존감 덕분 아니었을까? 비록 “삼국통일을 누가 했느냐”고 물어보면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냐”고 화를 내며 카메라 앞을 뜨는 방식으로 즉답을 피하긴 했지만.

방송화면 갈무리
방송화면 갈무리

<공부왕찐천재>의 성공 또한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공부왕찐천재>는 분명 공부 프로그램이지만, 그렇다고 꼭 공부로만 채워지진 않는다. 일상 속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제작진을 집으로 부른 홍진경은, 뜬금없이 필기구가 충분치 않다며 동네 문방구로 필기구를 사러 나간다. 필기구 쇼핑을 끝낸 홍진경은 두뇌 회전을 위해 견과류를 먹어야 한다며 견과류 쇼핑을 하고, 날씨가 좋다며 한참을 산책하고, 사골 국물이 두뇌 회전에 좋다며 칼국수를 사 먹은 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의 정기를 받자며 꾸역꾸역 제작진을 이끌고 서울대로 간다. 도대체 공부는 언제 할 거냐는 담당 프로듀서의 말에도 “집에 가서 하면 되잖아”라고 답하고는 지하철을 타는 홍진경을 보며, 이런저런 핑계로 공부를 미뤄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모두 “나를 보는 것 같다”며 열광했다. 카메라 앞이라고 공부에 집중하고 암기법을 알려주는 모습들만 근사하게 편집해서 내는 대신, 홍진경은 무섭도록 솔직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모두의 공감대를 산다.

그토록 아는 것이 없고 공부는 가능한 한 뒤로 미루던 홍진경이 마침내 일차방정식을 넘어 일차함수를 이해하고, 혼자 공부한 부여의 역사를 브리핑하는 광경을 보며 시청자들은 내 일처럼 기뻐한다. 저거 하나도 모르던 건데, 공부하기 되게 싫어했는데, 저걸 배우고 익히며 어느새 즐거워하고 있다니! 이 모든 건 홍진경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공부하기 싫어서 온몸이 배배 꼬이는 광경을 잔인할 만큼 여과 없이 보여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가 적당히 아는 척 눙치며 넘어갔다거나, 아니면 정말로 공부하는 모습만 보여줬다면 그 성취가 이렇게 기쁘지는 않았으리라. 어디서 출발했으며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다 보여줬으니까, 함께 배우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성공이 전하는 건 ‘용기’

돌이켜보면 홍진경이 거둔 모든 근사한 성공이 다 그랬다.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당돌함으로 주목을 끌었던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그가 거둔 상은 ‘베스트 포즈상’이었다. 수상자들 중 가장 말석이었다. 방송계에 진출한 이후에도 그는 이영자가 도와주기 전까지는 매니저도 없이 혼자 뛰어다니며 거절 전화를 받아야 했다. 남들은 초대를 받아서 가는 국외 패션쇼 무대 또한 홍진경은 달랐다. 누구 하나 불러주는 사람도 없는데 무작정 파리로 떠났고, 거기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김치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아픈 아버지 대신 혼자 벌어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터라, 김치 사업을 시작할 무렵에는 모아둔 돈이 거의 없었다. 어머니를 설득해 김치 사업을 시작했을 때 사업자금은 단돈 300만원, 간신히 온라인 쇼핑몰 하나 차릴 자금으로 시작해서 차근차근 여기까지 올라왔다. 홍진경의 모든 도전과 성공은 대부분 별 대단한 밑천 없이 시작됐는데, 홍진경은 그 사실을 애써 꾸미거나 감추지도, 고생담을 강조하며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홍진경은 그저 자신이 거쳐온 길이 어느 정도로 험난했는지, 그 과정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았고 어떤 부분에서 운이 좋았는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방송화면 갈무리
방송화면 갈무리

그렇게 먼저 냉정하게 바닥을 보여주고 망가질 줄 아는 대범함과 당당함은, 그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홍진경은 2014년 암투병을 할 때에도 그 사실을 숨기는 대신 용기를 내어 고백했고, 가발을 쓴 채로 방송을 계속했다. 한국방송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걸그룹 도전을 했을 때에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뻣뻣한 춤사위와 귀를 의심케 하는 노래 솜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룹 ‘에다호’ 명의로 낸 한 장의 정규 앨범과 자신의 이름으로 낸 세 장의 싱글 앨범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입장에선 보여주기 부끄러운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홍진경은 매번 창피하고 낯부끄럽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서툴고 모난 부분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러기에 그의 크고 작은 성공에 모두가 함께 기뻐할 수 있고, 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들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2015년 티브이엔 <택시>에 출연한 홍진경은, 자신이 어렵던 시절 이영자가 자신에게 해줬던 이야기를 오래 마음속에 품고 있다며 그 말을 옮겼다. “내가 너보다 10년 더 앞서서 가볼게. 언니가 잘못 간 길은 피해서 와. 내가 잘 간 길, 평탄한 길로만 따라와.” 그 말이 아주 오래 기억에 남아서, 자신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되어주었다고. 어쩌면 홍진경도, 자신의 부족함과 성취를 모두 무서울 만큼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을 통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모르면 모른다고, 못하면 못한다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보여주고 망가져보겠다고. 모르면 함께 배우면 되고 서툴면 같이 익히면 되니까, 겁먹지 말고 용기 내서 따라오시라고.

▶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 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명 한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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