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미성이가 제 신청곡을 무시해요!”
온라인 화상 수업 중 형규(가명)의 항의 채팅이 올라왔다. 내 수업은 아이들이 함께 듣고 싶은 곡을 설문으로 받아 목록을 작성해두고 반별 디스크자키(DJ·음악을 골라서 들려주는 사람)의 선곡에 의해 추천자의 곡 소개나 추천 이유와 더불어 한곡씩 들려주는 활동으로 시작한다. 디제이인 미성(가명)이가 자신의 추천곡을 선곡하지 않는다며 화난 형규의 항의로 설전이 벌어졌다. 미성이는 미리 준비하느라 애쓰는 자신의 수고는 몰라주고 언젠가 한번씩 돌아올 기회를 기다리지 못해 원망하는 형규의 태도가 어리석다고 호소했다. 그러자 “선생님, 그냥 번호순으로 돌려요”, “이제부터 디제이를 선생님이 직접 해주세요”, “설문에 응답한 순으로 들려줘요”… 여러 의견이 채팅으로 올라왔다.
나는 모두의 의견을 하나씩 경청해보자고 권하며 형규, 미성이와 더불어 받은 아이들의 의견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일일이 묻고 들어보았다. 그러자 한 아이가 “선생님, 저마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냥 다수결로 정해요”라고 채팅을 보내왔다. 그러자 미성이는 ‘그간 최선을 다했음에도 갑자기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려 든다’며 서운함을 표현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마음이 들겠군요. 내가 선곡을 디제이에게 맡기는 것은 이유가 있어요. 교사가 직접 진행하면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정보나 감각이 부족해서 적절히 매치하기 쉽지 않아요. 게다가 시종 교사 혼자 주도하는 수업은 여러분의 집중력을 떨어뜨려요. 친구들이 말할 때 더 많은 친구가 관심과 흥미를 보인다는 건 알지요?”라고 말했고,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 아이가 “그럼 모든 친구가 돌아가면서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라고 채팅을 보내왔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에요. 그러나 부담스러워하거나 깜빡 잊는 친구가 종종 있어서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더라고요”라고 내 경험을 들려줬다. 미성이가 “제가 그날그날 선곡 이유를 받아보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다. “아, 그런 방법도 있겠군요. 여러분 의견은 어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동시에 여러 아이가 신청할 수도 있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그럴 수 있겠군요. 그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또 한 아이가 “먼저 신청한 친구 걸 들어요”라고 말했다. 그에 대해 “그러면 결국 선착순과 뭐가 다른가요?”라고 묻는 아이가 있었다. “아, 결국 경쟁적인 분위기가 될까 봐 걱정되는 건가요?”라고 묻자 일부 아이가 끄덕였다. “어때요, 여러분, 과연 한번씩 주어지는 기회를 경쟁에서 이기려는 마음만으로 사용하게 될까요?”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도리질을 했다. 사려 깊고 성숙한 희주(가명)가 내게 채팅을 보내왔다. “아, 선생님, 정말 멋지게 해결되어가고 있어요!” 이어 내가 “다만 아무도 신청하지 않는 날이 가끔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어떻게 하고 싶나요?”라고 묻자 미성이는 “제가 한곡씩 예비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수업을 마치기 직전에 의논한 내용을 정리해주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대로 2주 정도 시범운영해보고 문제가 남아 있다면 다시 의논하는 게 어때요?” 아이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요.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두명 이상이 함께 공동의 일을 해나갈 기회가 꽤 많아요. 서로의 욕구나 의견이 상충하는 경우 힘겨루기를 통해 한쪽이 좌절하거나 양쪽 모두 소진하기도 하죠. 지금처럼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묻고 들으며 조화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그야말로 삶을 위한 소중한 공부예요.”
모두가 존중받는 공감이라는 든든한 키를 누군가 꽉 쥐고 있다면 사공이 여럿이어도 배가 산으로 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풍경을 바라보며 더 넓은 바다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
김선희 |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