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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모욕받는 천안함 생존자들

등록 2021-06-06 09:06수정 2021-06-06 09:11

[토요판] 기획
천안함 생존장병의 트라우마

천안함 사건 뒤 11년 지났지만
생존장병 여전히 패잔병 취급
제대로 된 지원이나 관심 없고
사건만 볼 뿐 생존자 주목 안해
천안함재단과 46용사 유족회, 생존자전우회가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저희처럼 버림받습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승섭 제공
천안함재단과 46용사 유족회, 생존자전우회가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저희처럼 버림받습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승섭 제공

▶ 2010년 3월26일 해군 천안함 장병 46명이 숨지고 58명이 살아남았다. 진보와 보수 진영은 이 사건을 두고 첨예한 정치 공방을 이어갔다. 하지만 정작 그 배에 타고 있던 이들의 고통을 살피는 이는 드물었다. 한 생존장병은 지난 11년을 “보수는 이용했고, 진보는 외면했다”라고 표현했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다른 양상의 진영 대결이 이어졌다. 그렇게 고통에 대한 공감은 취사선택됐다. 두 사건 생존자를 모두 연구한 김승섭 고려대 교수는 이들의 고통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진영에 따라 고통의 크기를 다르게 재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그들의 손을 먼저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레시오 아베난티 박사는 2010년 <현대 생물학>(Current Biology)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합니다. 연구팀은 흑인과 백인 각각 18명씩으로 이루어진 36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낯선 사람의 손등을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는 동영상과 부드러운 면봉으로 자극하는 동영상을 보여줍니다. 동영상을 보는 동안 실험 참가자들의 뇌에 전자기 자극을 가하고 손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측정합니다. 낯선 이의 고통에 얼마나 공감을 하는지 알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이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동영상에 등장하는 손의 피부색이 3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실험은 백인, 흑인, 그리고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보랏빛 피부색을 가진 사람의 손을 대상으로 이뤄졌습니다. 연구 참가자의 인종에 따라 나눠 본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흑인 참가자는 동영상에 등장하는 흑인의 고통에는 공감했지만, 백인과 보라색 피부를 가진 사람의 고통에는 그처럼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백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영상 속 백인의 통증은 자신의 것처럼 느꼈지만, 흑인과 보라색 피부를 가진 이가 겪는 고통은 그만큼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인종의 고통만을 선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보라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

2018년 <한겨레>와 함께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를 하며 이 실험이 종종 떠올랐습니다. 천안함 생존장병은 제가 연구를 하며 만났던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약자 집단 중에서도 비교 대상을 쉽게 찾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가 알려진 뒤 많은 사람들이 제게 어떻게 그 참혹한 현실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저 “우리 모두가 무관심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 다른 대답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많은 이들이 천안함 생존장병을 다른 ‘인종’으로 생각했었던 것 아니었을까요.

타인의 상처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그 사람에게 마음을 내주었을 때만 시작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알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진보 진영은 2018년 이전까지 한 번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보수 언론과 보수 정치인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천안함 사건의 정치적 의미에만 주목했지 정작 그 배를 탔던 이들의 고통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매년 3월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찾아와 사진을 찍어 갔지만, 그 이후에는 어떤 연락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존장병들은 한국 사회에서 누구도 그 슬픔을 함께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지난 11년을 버텨왔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여했다가 트라우마를 겪은 군인들을 조사한 연구들은 피해자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사회적 지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일관되게 지적합니다. 하지만, 생존장병들은 지지받지 못했습니다. 군대에서 그들은 ‘패잔병’으로 취급받았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신음하는 군인들의 고통은 눈에 띄는 상처가 없다는 이유로 꾀병으로 폄하됐습니다. 그런 낙인 속에서 그들은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말을 번번이 목에서 삼켜야 했습니다. 천안함 사건 트라우마로 배를 타지 못했던 생존장병 중 몇몇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동안 배를 타지 않은 탓에 장기복무에 필요한 점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직업군인으로서 꿈을 접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국가로부터 내쳐졌던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손팻말에 적은 “그래도 이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라는 말이 안타깝다. 김승섭 제공
국가로부터 내쳐졌던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손팻말에 적은 “그래도 이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라는 말이 안타깝다. 김승섭 제공

군과 정부는 생존장병들을 보듬는 대신 이 참혹한 사건의 방패막이로 활용했습니다. 생존장병들은 천안함 사건이 벌어진 지 불과 2주 뒤인 2010년 4월7일, 환자복을 입은 채 기자회견에 응해야 했습니다. 그 기자회견을 두고 여러 언론이 비난했습니다.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군인이 환자복을 입고 언론에 나왔다거나, 군에서 진실을 감추기 위해 함구령을 내렸다는 말들이 한국 사회를 떠돌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들의 짐작과 달랐습니다. 생존장병들은 기자회견을 한다는 사실을 전날 밤에 통보받았습니다. 그들은 급작스레 기자회견에 투입되어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충분한 준비 없이 말해야 했던 시간을 내내 아쉬워했습니다. 기자회견 이후로는 그들이 세상에 말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환자복을 입은 경위도 알 수 없습니다. 군에서 처음에는 군복을 입으라고 했다가 갑자기 환자복으로 바꿔 입으라는 지시를 했다고 합니다. 생존장병들은 그 이유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군은 생존장병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양심선언을 해라”라는 말이나, “도대체 이명박한테 얼마를 받았길래 진실을 그렇게 숨기냐”는 댓글을 보면 생존장병들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고 합니다.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한 대다수의 장병은 국가로부터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고 더 보여줄 진실이 없는데 도대체 어떤 고백을 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해했습니다. 앞장서서 의심을 풀어야 할 군은 여전히 생존장병 뒤에 숨었습니다. 생존장병들이 군에 왜 온갖 억측과 음모론에 대응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럴 가치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최원일 함장이 천안함 사건 이후에 정부와 모종의 거래를 했고 그로 인해 ‘고속 승진’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그 사건 이후 올해 전역을 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한 차례도 승진하지 못했습니다. 한 생존장병은 새로운 발령지에서 상사로부터 “함장이 죽었어야 니들이 보상금을 받는데, 걔가 살아 있어서 니들이 못 받는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최 함장은 천안함 사건 이후 군 감찰단의 고소로 입건되어 조사를 받는 모욕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타인의 고통 조롱하는 잔인함

지난달 28일 최 함장을 만나 물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강한 군인이어도 누가 욕하고 때리면 아픈 인간일 텐데, 도대체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틴 거냐.’ 한참을 생각하던 최 함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뒤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내가 죽었다면 사고로 처리해버렸을 것 같다. 그럼 천안함에 탔던 104명의 장병들은 얼마나 억울하겠나. 살아남았기에 이렇게라도 말할 수 있다.”

저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용역연구 책임자로 세월호 참사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했었습니다. 물론 2010년의 천안함과 2014년의 세월호는 침몰 원인과 그 사회적 대응이 전혀 달랐고, 오늘날 전자는 보수, 후자는 진보의 사안으로 여겨져 아무런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사건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가운 서해바다에서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을 잃었던 생존학생과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던 전우들을 잃었던 생존장병을 모두 만나 그들의 상처를 기록하는 작업을 했던 제가 보기에 이 두 사건은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트라우마를 겪은 피해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앙상한 실력이 드러난 사건들이라는 점과 그 피해자의 고통을 조롱하는 진영 논리의 폭력성과 잔인함이 만개한 사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월호에서 생존한 학생이 자살 시도를 해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그 가족들이 병원 의료진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는 “이 자살 시도가 세월호 참사와 연관성이 있다는 게 증빙되지 않으면 개인 의료보험으로 입원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만약 치료비를 심사하는 위원회에서 이 자살 시도가 참사로 인한 게 아니라고 하면 병원은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피해자는 내 고통이 재난으로 인한 것이라는 인과성을 증명해야 합니다.

전역자 21명 전액 사비로 치료
세월호 생존 피해자 모습과 겹쳐
국가가 우선 심리치료 지원해야

천안함 생존장병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국가유공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일은 생존장병의 몫입니다. 제대 이후 치료비가 없어서 정신과 진료를 받지 못했는데, 그 시기 진료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 네 상태는 천안함 사건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세월호 생존학생과 천안함 생존장병 모두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과 같이 재난과의 연관성이 충분히 알려진 질병에 대해서는 일단 국가의 지원으로 치료를 해주고, 그 인과성이 의심되는 경우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증빙서류를 국가가 제출하는 경우에 한정해 심사를 거쳐 개인이 사후적으로 돈을 내게 하는 게 맞습니다. 2018년 연구에 참여한 생존장병 중 연소득 2천만원이 안 되는 비율이 40%에 이르렀던 점을 생각하면 이는 절실하게 필요한 변화입니다.

천안함과 세월호의 생존자들이 자신의 트라우마와 씨름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보며 보상금을 떠올리고 상처를 헤집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생존학생의 부모에게 어떤 이웃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수억원의 보상금을 언급하며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돈은 없었다고 말하자, “다 아는데 뭘 감추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국가가 결정한 생존학생의 특례입학 제도를 두고 ‘친구 팔아 대학 간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천안함 생존장병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그들이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했고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간혹 “살아서 좋냐” “군법회의에 회부해서 총살해야 한다” 같은 댓글을 만날 때면 온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차가운 세상을 견디는 데 필요한 것

이러한 비난은 진영 논리 속에서 강화되었습니다. 진보, 보수라는 이름으로 나뉘어서 생존자의 상처에 생채기를 더하면서 자신이 정의롭다는 착각을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정의의 이름을 독점한 사람들이 가장 잔인한 폭력을 행사합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사건의 생존자를 두고 양 진영의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얼마나 더 가혹해질 수 있는가를 두고 경쟁하듯 상대방을 모욕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사건의 피해자를 함께 애도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천안함 생존장병과 세월호 생존학생은 누구보다도 비슷한 상처를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천안함 생존장병 중 가장 젊은 군인의 당시 나이는 20살로 세월호 생존학생이 참사를 겪었던 17살과 불과 3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생존자 트라우마와 싸우는 동안
주위에선 “살아왔다”며 모욕도
우리 사회가 그들 지킬 외벽 돼야

남극에서 무리 지어 살아가는 황제펭귄은 가혹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허들링’을 합니다. 피부를 맞대고 원형으로 모여 열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무리의 바깥쪽과 한가운데는 온도가 섭씨 10도 가까이 차이가 나게 됩니다. 어떤 펭귄도 계속해서 차가운 무리의 바깥 경계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동료의 몸으로 체온을 보존한 펭귄은 곧 바깥으로 나아갑니다. 차가운 세상을 감당한 펭귄이 무리 안으로 들어와 몸을 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며 펭귄들은 함께 살아남습니다.

하지만, 가장 위태로운 자리를 자신의 몸으로 감당하며 평화의 대가를 치렀던 천안함 생존장병들에게 사람들 속으로 돌아와 자신의 몸을 데우며 삶을 추스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군대는 낙인찍고 보수는 이용하고 진보는 외면했습니다. 그렇게 생존장병은 누구도 그 고통을 온전히 공감해주지 않는, 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었던 보라색 펭귄이 되어 무리 밖으로 버려졌습니다.

그렇게 내쳐진 생존장병들이 천안함 유가족분들과 함께 지난 4월20일부터 국방부 앞에서 매일 아침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2010년 3월26일 전사한 뒤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국가유공자가 된 46명 용사와 달리, 같은 배에 탔던 생존장병 중 다수는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군에서 제대한 생존장병 34명 중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한 21명은 자신의 치료비를 전액 사비로 부담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지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천안함 전우회는 굿즈 판매 등을 통해 치료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생존장병들은 이 시위가 서해바다에서 이 땅을 지켰던 군인들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싸움이라고 말합니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국지전이 끊이지 않았던 한반도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불안정한 평화는 군인들의 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국가를 지키는 군인이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모욕받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황제펭귄에게 허들링은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이제는 한국 사회가 외벽이 되어 그들을 지킬 차례입니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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