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수 검찰총장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놓고 법무부와 검찰이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애초 개편안에 있던 ‘장관 승인 규정’이 빠지고 ‘6대 범죄 중 고소가 접수된 경제범죄’는 일반 형사부도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의 절충안이 마련됐다. 법무부가 검찰 조직 안정을 위해 일선 검사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한편 신임 김오수 검찰총장의 리더십에도 힘을 실어준 모양새다.
법무부는 18일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을 22일까지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당초 법무부가 발표한 조직 개편안 중 가장 논란이 됐던 ‘일선 지청 형사부 직접 수사 시 장관 승인’ 내용이 삭제됐다. 앞서 법무부가 지난달 21일 마련한 ‘검찰 조직개편안’에는 ‘차치지청(차장검사를 둔 지청)·부치지청(차장검사 없이 부장검사를 둔 지청) 등 일선 지청에서 6대 중요 범죄를 직접 수사하려면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를 두고 일선 검사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대검은 이를 반영해 지난 8일 입장을 내어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혔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는 취지였다.
법무부는 이런 우려를 받아들여 한발 물러섰다. 박 장관은 지난 16일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수사권개혁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유연성을 발휘해 현실을 잘 반영할 것”이라며 논란이 된 규정의 수정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검찰 내 반발이 큰 장관 수사승인제를 백지화해 검찰과 충돌을 피하는 대신, 직접수사 부서를 통폐합해 수사 인력을 조정하는 선에서 검찰개혁의 명분을 취한 셈이다.
경제 범죄 뺀 나머지 6대 범죄, 직접수사 제한
개정안에는 애초 조직개편 취지대로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중 경제범죄를 제외한 나머지 사건은 반부패·강력수사부 등 전담부가 아닌 일반 형사부는 직접수사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담 부서가 없는 일선 지방검찰청과 지청은 형사부 중 제일 마지막 부에서만 검찰총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 직접수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경제범죄의 경우 고소가 접수되면 일반 형사부도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애초 원안에는 경제범죄를 포함한 모든 6대 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를 제한했는데,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 경제범죄나 민생범죄에 대한 수사 공백 우려를 반영해 조정안이 마련된 것이다. 앞서 대검은 지난 8일 입장문에서 “국민들이 민생과 직결된 범죄에 대해 검찰이 직접 수사해주길 바라더라도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할 수 없는 공백이 발생한다”며 경제범죄에 대한 직접수사권 유지를 주장한 바 있다.
조직개편의 핵심인 ‘검찰 직접 수사 부서 통폐합’은 예정대로 추진된다. 6대 범죄를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전담 수사부를 통폐합하는 게 핵심이었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 1·2부와 강력범죄형사부는 반부패·강력수사 1·2부로 통합된다. 기존의 직접수사 부서가 3개에서 2개로 축소되는 것이다. 또 반부패·강력수사협력부를 신설해 경찰의 주요 사건 영장심사나 송치 사건에 대한 보완수사 등을 담당할 예정이다. 광주지검과 수원지검 강력범죄형사부도 인권보호부로 바뀐다. 다만 부산지검에는 반부패·강력수사부가 신설된다. 이 역시 부산에 반부패수사부가 필요하다는 대검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인권보호 강화를 위해 서울중앙지검 등 8개 지검에 인권보호부가 신설되는 것도 이번 조직개편의 중요한 축이다. 인권보호부는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나 재수사 요청 등 사법통제 업무를 담당한다. 마약 범죄 등 강력범죄 사건의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갔고, 경찰에 일차적 수사종결권이 부여되는 등 경찰 기능이 커진 만큼 그에 따른 사법통제 필요성도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부가 검찰 의견을 대폭 반영한 수정안을 마련한 것은 현 정부 임기 마지막 해라는 점을 고려한 갈등 관리 차원으로 풀이된다. 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 현 정부가 이뤄낸 검찰개혁의 성과를 순조롭게 마무리하기 위해선 김 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의 협조가 필수적인 데다, 조직 안정이 필요한 검찰의 반발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고위간부 인사로 내부 불만이 여전했던 상황에서 법무부가 조직개편까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면 검찰 조직 자체가 요동쳤을 것”이라며 “조직 안정을 강조한 김 총장의 의견을 대폭 반영하면서 그가 향후 필요한 검찰개혁 후속 조처를 추진할 수 있도록 명분을 쥐여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조직개편안이 절충점을 찾으면서 고검검사급 중간간부 인사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개정안 입법예고 기한이 22일 자정까지인 만큼 이번 조직개편안은 오는 29일 예정된 국무회의에 상정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중간간부 인사는 이후 단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간 간부급 인사에서는 주요 사건 수사팀 교체 여부가 관건이다. 대통령령인 ‘검사인사규정’에 따르면 고검검사급 검사(중간간부)의 필수보직 기간은 1년이다. 다만 직제개편 등이 이뤄질 경우 예외적으로 필수보직 기간에 상관없이 인사가 가능하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이상현 대전지검 형사5부장,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관련 수사 중인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과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모두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보직을 맡아 필수보직 기간이 모자란 상황이다. 조직개편안이 통과되면 이들 역시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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