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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남녀평등 가장한 성차별, 채용 성비 5:5의 민낯

등록 2021-07-14 04:59수정 2021-07-14 08:36

공공기관 최종 합격자 성비 공개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
동아제약·국민은행 ‘오히려 여성 더 뽑는다’ 했지만 채용 성차별 드러나
블라인드 채용 이후 ‘면접’ 중요성 커지면서 면접자 성비 공개 더 중요해져
“정부와 조달 계약하려면 민간도 응시자 성별 데이터 수집하라” 미국은 이렇게 유도

데이터는 권력이다. 데이터는 현실을 압축해 보여주고, 단박에 상대를 설득한다. 그래서 데이터는 때로 기만이 된다. 데이터가 없으면 명백히 존재하는 현실도 지워진다. 데이터가 투박하면 현실의 날카로운 불평등도 뭉개진다. <한겨레>는 다섯차례에 걸쳐 치안, 산재, 채용, 출산 영역 등에서 지워진 젠더 데이터를 찾아내 바로잡으려 한다. 여성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꼭 필요한데도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는 통계, 성별 분리가 되어 있지 않아 여성 현실을 읽어내는 데 무용한 반쪽짜리 데이터를 추적한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쏟아내는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은 이런 반쪽 현실을 아예 모르거나 애써 외면한 결과다. 남성이 기본값인 각종 데이터에 젠더 데이터 복원을 요구한다.

① ‘성별 분류’조차 않는 112신고 통계
② ‘산재=건설=남성’이 지운 것들
③ 합격자 성비 5 대 5? 사라진 면접자
④ 출산휴가 시행 68년, 통계가 없다
⑤ “이게 왜 문제죠?” 담당자가 물었다

“지난해 채용된 남녀 성비는 66 대 34이고 영업과 생산 직군을 제외하면 오히려 28 대 72로 여성 인력을 더 많이 채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3월 동아제약 최호진 사장이 임직원에게 보낸 사과 메일 일부다. 동아제약은 지난해 11월 치러진 신입사원 면접에서 ‘군대를 다녀온 남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 사이 임금을 달리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등 성차별 질문을 해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이에 최 사장은 임직원에게 사과하면서 ‘최종 합격자 성비’를 내세워 채용 과정에서 여성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성차별 논란이 불거질 때 기업이 최종 합격자 성비를 내세운 건 동아제약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케이비(KB)국민은행은 채용 성차별 관련 검찰 조사가 진행되자 “최근 2년간 여성 채용 비율이 34.5%로 5대 은행 평균치를 상회한다. 현직 남녀 비율도 51 대 49 수준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해명했다. 은행업계치고는 여성 합격자를 많이 냈고, 임직원 성비도 5 대 5에 가깝다는 ‘결과’를 보여주며 채용 ‘과정’에서 성차별을 부인한 것이다. 이후 수사와 재판에서 국민은행 인사담당자가 남성 최종 합격자 비율을 높일 목적으로 남성 지원자 113명의 서류전형 평가점수를 높이고, 여성 지원자 112명의 점수를 낮춘 사실이 드러났다. 임직원 성비 5 대 5라는 그럴듯한 숫자 뒤에는 얼마든지 성차별이 작동할 수 있는 채용 절차가 버티고 있다.

최종 합격자 성비는 채용 성차별을 감지하는 데 충분한 통계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오히려 채용 과정의 성차별을 은폐하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 최종 합격자 성비뿐 아니라 채용 단계별 성비 공개가 필요한 이유다.

올해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공공기관은 350곳이다. 이들 기관은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 ‘알리오’에 매년 남녀 신규 채용 인원을 공시한다. 154개 지방공기업 정보는 지방공공기관 통합공시 사이트 ‘클린아이’에 공시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서류 심사, 면접 같은 채용 단계별 성비는 공개되지 않는다. 최초 여성 지원자가 몇명이었는데, 어느 단계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

2018년 4~5월 고용노동부는 2017년도에 10명 이상 신규 채용했고, 최종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이 30% 아래인 91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채용 단계별(지원→서류→필기→면접→최종) 합격자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①지원자 중 서류전형에 합격한 비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근소하게 높았지만(100.9%) ②면접심사 뒤에는 여성 합격자 비율이 큰 폭으로 낮아졌다(68.6%). 예를 들어 남녀 500명씩 지원한 공공기관에서 서류심사로 500명, 면접심사로 200명을 거른다고 가정할 때, 서류전형을 통해 남성 248명, 여성 252명이 1차 합격하고, 면접전형을 치른 뒤에는 남성 118명, 여성은 82명만이 최종 합격하는 셈이다. 남녀 동수가 지원해도, 서류·면접 전형을 거친 뒤에는 여성 합격자가 남성의 70%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서류 합격률 여성>남성, 면접 뒤 여성이 남성 70% 수준

여성가족부와 금융감독원도 같은 시기에 대졸 공채를 진행한 은행·카드사·보험사·증권사 40곳을 조사했더니, 11곳에서 응시자 여성 비율 대비 최종 합격자 여성 비율이 10%포인트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바탕으로 47개 공공기관과 금융사를 대상으로 집중 근로감독을 벌였다. 채용 단계별 성비 데이터가 채용 성차별 의심 기업을 1차적으로 걸러내는 데 유용하게 쓰인 것이다.

2018년 7월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이런 실태 조사 결과를 근거로 ‘채용 성차별 해소 방안’을 만들었다.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성별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면접 단계 성차별 방지를 위해 응시자 성비를 기관 자체적으로 집계·파악하도록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다만 전체 채용 단계별 성비가 아니라 면접 단계 성비만 집계하고, 이마저도 공개 의무는 부과하지 않았다. 민간기업인 금융사에는 은행업감독규정 시행세칙을 바꿔 최종 합격자 성비만 경영 공시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케이비국민은행 경영공시를 보면, 2020년 정규직 신규 채용 188명 중 여성은 88명(46.8%), 2019년엔 394명 중 182명(46.2%)이다.

<한겨레>는 ‘알리오’ 관리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에 공공기관 면접 응시자 성비를 공개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애초에 공개용 데이터도 아니었고 역차별 논란이 있을 수 있어 공개가 어렵다”고 답했다. 면접자 성비 공개가 어떤 점에서 역차별 소지가 있느냐는 추가 질문에는 “요즘 (이런 문제가) 민감하지 않으냐”고 했다.

기재부 “역차별 논란 데이터 공개 어렵다”

애초 채용 성차별 관리·감독을 위해 수집한 데이터지만, 정작 공개가 되지 않으니 제대로 관리·감독이 이뤄지는지도 알 수 없다. 이 자료는 국회의원이 별도로 제출을 요청해야만 받아 볼 수 있다. 2018년 당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여성티에프(TF) 위원장을 맡았던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당초 (채용 단계별 성비 지표를) 공기업 평가 기준이나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AA)에 반영하는 수준까지 논의됐으나 부처 논의를 거치면서 상당히 축소됐다”고 했다.

민간기업들은 신규 채용 응시자 규모를 ‘민감한 경영 정보’라며 공개하기 꺼린다. 대외적으로 해당 기업의 경쟁력, 성장 가능성 등을 평가하는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는 논리다. 여기에 서류심사 단계에서 성별을 가리는 블라인드 채용이 2017년 도입됐기 때문에 채용 단계별 성비 공개는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반론도 내놓는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 이후 오히려 채용 단계별 성비 공개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면접 비중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해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 여성 관리자 40명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다수 기업이 단계별 합산(채용 단계별 점수 누적)이 아닌 단계별 리셋(채용 단계별로 새로 채점) 방식으로 신규 채용을 진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류·필기 점수가 0점으로 리셋된다는 건 최종 단계인 면접이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인터뷰에 참여한 한 응답자는 ‘면접 점수만을 가지고 합격 여부를 판단했다’고 했다. 이 연구를 진행한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블라인드 채용 도입 이후 상대적으로 면접이 최종 당락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면접 단계에서 최초로 지원자 성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면접 응시자 성비를 기록해두는 것은 더더욱 필요하다”고 했다.

성별을 가리고 진행하는 블라인드 채용 제도에서 채용 단계별 성비를 공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이미 ‘블라인드 채용 취지에 어긋나지 않도록 응시 서류 등에 성별을 표시하지 않되, 면접 시 기관별로 성비를 자체 집계·파악’하라는 방식을 제안한 바 있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응시자는 성별 체크를 하되 서류 심사자는 이를 볼 수 없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등의 방식을 활용하면 블라인드 채용과 채용 단계별 성비 공개를 병행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별 지원자의 성별 등에 대한 질문을 금지하는 미국에서도 지원자 성별, 인종별 분포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면접 비중 높아지면서 단계별 성비 기록 절실

코로나19로 인해 한 공간에 모여 필기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기다리던 관행이 사라지면서, 채용 단계별 성비 기록과 공개가 더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여성 취업준비생 ㄱ씨는 “예전엔 면접장 앞에 줄줄이 앉아서 대기했는데 요즘은 시간대별로 4명씩 조를 나눠서 면접을 본다. 다른 조에 배정된 응시자를 마주칠 수도 없으니 지원자 성비가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 파악하기도 어렵다. 예전보다 채용 단계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을 더 알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일단 공공부문부터라도 채용 단계별 성비를 공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는 관련 법령을 바꾸지 않아도 ‘알리오’ ‘클린아이’ 운영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행정지도만으로도 가능하다. 또 고용노동부가 시행 중인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 제도에 반영하는 방법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기업 2486곳을 대상으로 매년 여성 고용 비율, 여성 관리자 비율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신규 채용 응시자 성비나 면접 성비 항목을 추가하는 방안이다.

미국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민간기업의 채용 단계별 성비 데이터 수집을 유도한다. 대표적으로 조달계약 과정에 이 데이터를 반영하는 것이다. 연방정부와 건당 5만달러 이상 계약을 체결하는 50인 이상 사업장은 인종·성별·장애 등 지원자 데이터를 수집·보관해야 한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대표발의했던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과 유사하다. 공공기관이 조달·개발·위탁 사업자를 선정할 때 비용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 실현 노력을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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