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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고용보험 상실 사유 44개인데…‘성희롱 퇴사’는 없다

등록 2022-02-18 11:40수정 2022-02-18 12:36

직장 내 성희롱 뒤 퇴사자 규모 알 수 없어
‘자진 퇴사’ 중 하나로 기록 하거나
‘기타’로 직접 기입 내역도 공식집계 안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직장 내 성희롱을 겪은 후 회사를 떠난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알 수 없다’. 관련 통계나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집단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이뤄진 연구를 통해서나마 그 규모가 상당함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2019년 3월8일부터 2020년 3월7일까지 고용노동부 성희롱·성차별 익명신고센터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579건을 분석한 결과, 사건 이후 사직서를 제출하거나(17.4%) 해고를 당한 경우(7.9%)가 전체 25.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성희롱 경험자 넷 중 하나가 자의·타의로 일터를 잃는 것이다. 서울여성노동자회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2016)에서는 응답자의 72%가 퇴사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직장 내 성희롱은 노동자를 정신적·신체적·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일터에서의 재해다. 그런데도 그 규모를 파악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은 더디다.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성희롱 실태조사’를 실시하나, 재직자와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진행해 ‘퇴사자’의 목소리를 담기엔 한계가 있다.

간편한 방법은 있다. 고용보험 상실 사유 코드에 ‘직장 내 성희롱(혹은 성적 괴롭힘)’ 항목을 추가하는 것이다. 근로자가 퇴사하면 인사담당자는 고용보험 상실 사유 코드를 기입하게 되어 있다. 크게 △자진 퇴사 △회사사정으로 인한 이직 △정년 등 기간만료에 의한 이직 △기타(고용보험 미적용·이중적용) 등 4가지로 분류되고, 각 카테고리 안에는 보다 구체적인 이직 사유가 총 44종 기록돼 있다. 이 44개 사유 안에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퇴사는 없다. 그러다보니 직장 내 성희롱을 견디다 못해 퇴사했을 때도 일반적인 ‘자진 퇴사’ 중 하나로 기록이 남는다. 최수영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장은 “피해자가 인사담당자로부터 ‘코드에 없다’는 등의 이유로 직장 내 성희롱을 퇴사 사유로 기입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듣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며 “이와 관련한 문제제기가 있었으나 아직 반영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끝까지 ‘자진 퇴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 ‘기타’ 란에 직접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퇴사’ 임을 기입할 수 있다. 그러나 ‘기타’ 항목은 수집하기에 한계가 명확하다. 기입 당사자인 인사담당자도 부담을 느껴 축소 신고하고, 제대로된 집계·분석도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 ‘기타’ 항목에 적시된 직장 내 성희롱 건수와 비율을 요청했으나 고용노동부는 “성희롱 관련 부분은 ‘기타’로 파악하고 있으나, 따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직장 내 성희롱을 겪고 표면적으로 ‘자진’ 퇴사했으나 비자발적 퇴사로 분류되어 구직급여를 받은 노동자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통계도 없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직 전산 추출이 안 된다”고 했다.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퇴사자 규모와 구직급여 수급 건수는 관련 기관의 방치 속에 공식 통계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보험 상실 사유 코드에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퇴사를 추가한다면 (성희롱) 피해 실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송옥주 의원도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해 피해자가 퇴사하여도 집계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고용보험 상실 사유 코드에 ‘직장 내 성희롱’ 등을 추가하는 방안을 고용노동부와 논의하겠다”고 했다.

고용보험 상실 사유에 성희롱 퇴사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불완전하다는 의견도 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 내 성희롱 상당수가 괴롭힘을 동반해 퇴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퇴사 사유에 직장 내 성희롱이 추가되더라도 기입 당사자인 인사팀이 사실대로 기재할지 여전히 의문이 든다”며 “어떤 코드로 기입이 됐는지 회사와 노동자 양측이 확인하고, 이의제기 할 수 있는 절차가 담보되어야 한다”고 했다. 신 교수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흐름을 반영해 퇴사 인원과 근로자가 사직서에 쓴 사유를 인사팀이 이사회에서 보고토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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