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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남성이 기본값인 사회…무지·무시가 만든 데이터 공백

등록 2021-07-20 04:59수정 2021-07-20 09:33

[젠더 데이터, 빈칸을 채우자]
⑤ “이게 왜 문제죠?” 담당자가 물었다
의도적 배제, 삭제보다 담당자 무지 탓이 많아
근로복지공단 보도 후“관련 부서에서 논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데이터는 권력이다. 데이터는 현실을 압축해 보여주고, 단박에 상대를 설득한다. 그래서 데이터는 때로 기만이 된다. 데이터가 없으면 명백히 존재하는 현실도 지워진다. 데이터가 투박하면 현실의 날카로운 불평등도 뭉개진다. <한겨레>는 다섯차례에 걸쳐 치안, 산재, 채용, 출산 영역 등에서 지워진 젠더 데이터를 찾아내 바로잡으려 한다. 여성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꼭 필요한데도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는 통계, 성별 분리가 되어 있지 않아 여성 현실을 읽어내는 데 무용한 반쪽짜리 데이터를 추적한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쏟아내는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은 이런 반쪽 현실을 아예 모르거나 애써 외면한 결과다. 남성이 기본값인 각종 데이터에 젠더 데이터 복원을 요구한다.

① ‘성별 분류’조차 않는 112신고 통계

② ‘산재=건설=남성’이 지운 것들

③ 합격자 성비 5 대 5? 사라진 면접자

④ 출산휴가 시행 68년, 통계가 없다

⑤ “이게 왜 문제죠?” 담당자가 물었다

“성별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정제되지 않은 데이터라….”

‘성별 분리 데이터가 왜 없느냐’고 물으면 각 부처 통계 담당자들은 보통 이렇게 답한다. 젠더 데이터가 구멍 뚫린 채 방치된 원인이 의도적 배제, 악의적 삭제보다는 담당자 무지 탓인 경우가 많은 이유다.

그러나 현실에선 ‘의도적 무시’ 역시 비일비재하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미 여성가족부 특정성별영향평가를 통해 성별 분리된 업무상 질병 인정률 통계를 생산하라는 개선 권고를 받았다. 그런데도 수정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은 <한겨레> 보도가 나간 뒤에야 “관련 부서가 통계 개선을 논의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경찰청의 의도적 무시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2018년 4월 ‘성평등위원회’를 발족한 경찰청은 두 달 뒤에는 “최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등 경찰의 여성폭력 수사·대응을 비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다”며 경찰 통계 성별 분리 생산 단계적 추진 등 “성평등한 치안정책 수립 방안 마련”을 약속했다.

경찰청은 2019년 10월 ‘중앙부처 최초로 훈령·예규에 성차별 요소가 있는지 일괄 점검해 성평등 관점에서 61개를 개정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여기에는 ‘경찰 범죄통계 작성 및 관리에 관한 규칙’도 포함됐다. ‘범죄통계 분석 시 성별이 구분된 통계 자료를 수집·분석하여 성인지 범죄통계 분석 자료를 발간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경찰청은 “훈령·예규를 성평등 관점에서 살피고 개정하는 것이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경찰청의 이러한 노력은 국민에게 보다 공정하게 다가가기 위한 적극적 선례로 평가된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청은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성별을 구분한 112 범죄신고 통계 생산은 필요 없다고 단언한다. “해당 통계는 사건 대상이지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경찰 내부에서도 “사건과 신고자를 어떻게 떼어놓느냐”는 말이 나오고, 치안정책 전문가들도 같은 진단을 내놓고 있지만 경찰청 담당 부서는 요지부동이다.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라는 식이다.

정책 생산과 집행을 맡은 기관의 ‘알려 하지 않는’ 태도는 여성을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예컨대 2019년 가정폭력 112신고 건수는 19만4150건이었으나, 그해 경찰 통계에 잡힌 가정폭력 건수는 5만277건이었다. ‘정제’ 과정에서 4분의 3이 걸러진 셈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지난해 상담사례 분석을 보면 가정폭력으로 도움을 요청한 피해자에게 경찰이 “잘 해결하세요” “그냥 이혼하세요”라고 말하거나, 현장에 출동하고도 “우리 집에 아무 일도 없다”는 가해자 말만 믿고 현장을 떠난 사례가 빈번하다. 상당수 신고가 ‘가정폭력=가정문제’라는 수사기관의 오래된 편견 때문에 걸러지고 있는 셈이다. 112신고 성별 분리 통계는 무시되는 신고자, 버려지는 사건의 촘촘한 복원을 통해 여성 안전 사각지대를 줄이는 치안정책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

“성별에 따라 구분되지 않은 데이터는 여성에게는 사실상 없는 데이터나 마찬가지”(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라는 통찰은 우리 사회 도처에서 간과된다.

지난 13일 서울남부지법은 2015년 상반기 신입 공채에서 남성 합격자 비율을 높이기 위해 남성 지원자 113명의 서류전형 점수는 올리고 여성 지원자 112명 점수는 낮춘 혐의(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로 기소된 전 케이비(KB)국민은행 인사팀장 사건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앞서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잘못된 관행 답습” “국민은행 영업상 필요”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채용 과정에서 최종 합격자 성비뿐 아니라 응시자 성비와 면접자 성비 등 채용 단계별 성비까지 두루 함께 봐야 성차별이 있었는지를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기업은 물론 공공기관들도 최종 합격자 성비 정도만 공개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젠더 데이터 공백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말한다. 더 많은 여성들이 사회 곳곳에 진출하면 된다는 것이다. 사람 공백을 메우면 데이터 공백도 메워진다는 설명이다. 매끈하게 보이는 자료 속 공백을 발견하는 것은 주로 여성들이다. 현직 여성경찰은 성별 구분 없는 112신고 통계 문제를 파고들고, 여성단체는 채용 단계별 응시자 성비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여성들은 여성을 잊지 않는다.”(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더 많은 여성이 숫자 곁으로 가야 한다. <끝>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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