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게 아니고 아예 신지를 못 하죠. 안전화 제일 작은 게 250이에요. 큰 거 신으면 넘어지더라고요.”
“안전모 뒤에 (크기를) 조이는 거 있지만 여자들은 머리가 남자보다 작으니 자꾸 내려와서 별 짓을 다 하죠. 돌려서 쓰고 내려오면 또 얼른 받아쓰고….”
“보호장갑 제일 작은 걸 껴도 손가락 한마디는 남아요. 너무 불편한 거예요. 보통 남자 위주로 나왔으니까 여성용이 없어요.”
“안전벨트는 정말로 크거든요. 남성 기준 크기로 나오기 때문에 조절이 잘 안 되거든요.”
건설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5년 15만5131명이던 여성 건설노동자는 2019년 20만2399명으로 늘었다. 건설업 종사자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8.4%에서 10%로 늘었다. 건설노동자 10명 중 1명은 여성이다.
그런데도 여성 건설노동자를 위한 안전장비, 화장실·탈의실과 같은 편의시설은 여전히 부족하다. 남성 신체를 기본값으로 설계된 ‘원 사이즈’ 안전 장비는 여성에게 너무 커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휴게실은커녕 여자 화장실조차 없는 건설현장도 존재한다. 남성이 다수인 작업 환경에서 상시적으로 성차별과 성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대표적 남성 집중 직종인 건설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 작업환경과 성차별 실태를 조사한
‘여성 건설근로자 취업현황과 정책방안’ 연구보고서와 이를 정리한 성평등 정책과제 이슈페이퍼를 펴냈다.
조사에 응한 여성 건설노동자 507명 중 56%(284명)가 지급된 안전모, 안전화, 안전벨트, 작업복 등 안전보호 장비를 사용하면서 불편했던 적이 있다고 답했다. ‘크기가 잘 맞지 않아서’(57.4%)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건설업 종사 기간이 긴 여성 숙련공 10명 중 6명(58.1%)도 안전장비 불편을 호소했다. 연구진은 “단순히 남성 보호장비 사이즈만 작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안전보호 장비 개발과 보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성 신체에 맞춰 제작된 안전장비는 때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0년 동안 토목·플랜트 현장에서 일한 여성 건설노동자 10명을 심층 인터뷰한 ‘성인지적 산업안전보건정책 연구’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안면근육 같은 걸 보면 여자들은 작잖아요. 일을 하다 보면 안경(용접공용 보안경)이 푹 내려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러면 100% 눈 화상이에요.”
“용접장갑이 한 사이즈예요. 안에 장갑을 하나 끼고 써도 이렇게 움직이면 훌렁 빠져요. 팔목 둘레 테두리가 넓거든요. 불똥이 들어갈 수도 있어요.”
“저는 (신발 사이즈가) 240인데 현장에서는 거의 250∼270 사이즈를 갖다놔서…. 한참 후에 갖다주거나 아니면 250짜리 주고 그냥 맞춰서 신어라…. 양말 두 개 신고 하고.”
인터뷰 대상자들은 사이즈가 맞지 않는 안전보호 장비 대신 △사비를 털어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사거나 △직접 바느질 해 크기를 줄이거나 △양말을 겹쳐 신는 등 자구책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적합하지 않은 보호구는 여성 근로자, 동료의 건강과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규칙은 사업주가 노동자 업무와 작업조건에 맞는 보호구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노동자 신체에 적합한’이라는 문구를 추가하자는 것이다.
미국 노동부 산하 직업안전위생관리국(OSHA)은 1990년대 후반부터 건설업 여성노동자 보호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남성 신체를 기준으로 제작된 개인보호복, 개인보호장비가 노동자 안전을 크게 위협한다는 점이 드러났지만, 미국 역시 여전히 추가 비용 부담 문제 등을 이유로 개선이 더디다고 한다.
여성 건설노동자를 위한 편의시설 부족도 문제로 지적된다. 세면대가 딸린 여자화장실이 있다(31.9%), 여자휴게실이 있다(33.7%), 여성 탈의실이 있다(14.6%), 여자 샤워실이 있다(9.5%) 등 대부분 항목에서 매우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용 휴게실과 화장실 모두 없다는 응답도 8.5%에 달했다. 연구진은 응답자 가운데 19%가 방광염, 12.8%가 피부염을 경험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접근성 좋은 여성 화장실이나 씻을 수 있는 편의시설이 부족해 이런 질병을 겪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여성 건설노동자들은 성희롱에도 상시적으로 노출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26.4%가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성희롱 유형으로는 언어적 성희롱(94%)이 가장 많았다. 특정 부위를 만지거나 접촉하는 육체적 성희롱(35.8%), 외설적 사진을 보여주거나 전송하는 시각적 성희롱(9.7%)도 상당히 많았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