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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뉴스AS] 비동의 간음죄, ‘국힘 사전’이 억지인 이유

등록 2022-02-23 04:59수정 2022-02-23 14:52

“무고죄 양산할 악법” 주장, 압력에
국민의당 캠프, 국힘 관계자들 철회
도입해도 피해자 ‘내심’따라 뒤집을 순 없어
영국·스웨덴·독일 등 시행 중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비동의 간음죄는 남성을 잠재적으로 성범죄자로 내몰고 허위 미투를 장려하여 수많은 무고죄를 양산할 가능성이 농후한 악법이다.”

국민의힘 선대위 청년본부 양성평등특별위원회가 지난해 12월30일 조배숙 전 민생당 의원의 새시대준비위원회 영입을 반대하며 낸 성명 중 일부다. 한달여 뒤인 지난 9일 양성평등특위 관계자를 만난 조 전 의원은 “취지와 별개로 왜곡된 결과를 초래하는 비동의간음죄는 잘못되었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1심 무죄 선고를 계기로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안 발의에 참여했던 조 전 의원이 ‘백기’를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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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협박 없으면 강간이 아니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여성계 숙원 중 하나다. 핵심은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폭행·협박 등 ‘가해자의 유형력 행사’를 요구하는 현행 형법을 개정해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강간죄를 판단하자는 것이다. 현재 형법 297조는 폭행·협박의 정도가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정도’에 해당해야 강간죄로 인정하는 ‘최협의설’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폭행·협박’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각종 유·무형의 위력이 작동하는 강간의 가해자들은 처벌을 피해왔다.

따라서 서로 동의하지 않는 성관계를 처벌할 수 있게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해 이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게 여성계의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전국 성폭력상담소협의회 소속 66개 성폭력상담소에 강간 사례 분석 결과를 보면, 성폭력 피해사례 중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사례가 71.4%에 이른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 주장에 일부 청년 남성을 중심으로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당초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함께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공약했다가 청년 남성 일각의 반발 뒤 “좀 더 다양한 목소리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더 충분히 논의해볼 것”이라며 물러섰다. 조배숙 전 의원과 함께 비동의 간음죄를 발의했던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1월 <디지털타임스> 인터뷰에서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세심하지 못하게 만들어진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며 의견을 바꿨다.

비동의간음죄에 반대하는 내용 담긴 국민의힘 선대위 청년본부 양성평등위 카드 뉴스.
비동의간음죄에 반대하는 내용 담긴 국민의힘 선대위 청년본부 양성평등위 카드 뉴스.

비동의 간음죄에 반대하는 쪽은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명시적 동의가 증거로 남은’ 성관계만이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대방의 ‘내심’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처벌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비동의 간음죄가 통과된 서구 국가들의 예를 보면, ‘동의·비동의’ 여부가 단순히 피해자 내심의 의사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영국은 2003년 성범죄법의 전면개정을 통해 ‘동의 규정’이 신설되면서 (1)고의 (2)성 범죄 행위 (3)피해자의 ‘동의’ 유무 (4)가해자의 인식유무 등을 따지는 등 성범죄 행위유형별 금지규범이 명확해졌다. 장 연구위원은 “영국은 가해자가 피해자가 표시한 거부 의사를 인식했느냐가 중요한 쟁점이다. 피해자가 ‘그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하면 강간죄가 자동으로 성립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비동의 간음죄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동의 간음죄가 입증 책임을 피의자에게 전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장임 연구위원은 “형사재판은 본질적으로 범죄 사실의 입증을 검사가, 즉 피해자 쪽이 하는 것이다. 가해자의 죄가 증명될 수 있는 입증 사실이 있어야 기소되고 처벌되는 것”이라며 “검사가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면 기소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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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독일·스웨덴 등 이미 시행중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등으로 성폭력 사건 중 무고 비중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대검찰청의 사건 처리 기록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성폭력 무고죄 고소 사건 5건 중 4건이 불기소(84.1%) 처분을 받았고, 기소율은 7.6%에 불과했다. 2017~2018년 2년간 성폭력 범죄 처분 인원수는 8만677명인데, 같은 기간 성폭력 무고로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되는 사례는 341명에 그쳤다.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를 성범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 2018년 한국 정부에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유럽인권협약에 의해 국가는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뤄진 모든 성적 행위를 기소하고 처벌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영국 외에도 스웨덴(2018년), 독일(2016년) 등도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형법 개정안을 잇달아 통과시킨 상황이다. 장임 연구위원은 “이미 한국 대법원의 판례는 2005년 무렵부터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는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 강간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최협의설이 실질적으로는 확대하여 해석되고 있는 것”이라며 “비동의 간음죄를 둘러싼 일각의 공포는 크게 과장된 것”이라고 짚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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