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8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첫 회의를 주재하면서 “저출산(저출생) 문제는 복지, 교육, 일자리, 주거, 세제 등 사회문제와 여성 경제활동 등 사회문화적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정부 지원과 아울러서 문화적 요소, 가치적 요소들을 함께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윤석열 정부의 첫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과제 및 추진 방안’에는 정작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게 만드는 ‘사회문화적 요소’의 기본 바탕이 되는 ‘성평등’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비전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위기의 근본 원인은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다며, 성평등에 대한 비전이 제시되지 않는 저출산 대책은 단순한 ‘출산 장려’ 정책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날 발표된 윤석열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선 ‘성평등’이라는 말이 아예 자취를 감췄다. 정부는 ‘결혼과 출산, 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라는 목표에 맞춰 저출산 대응 5대 핵심 분야 및 주요 과제를 제시하면서, 주로 기존의 출산·양육 지원책에서 대상과 금액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여성을 양육의 1차 책임자로 규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결혼·출산을 하게 되면 ‘경력단절’과 ‘독박육아’로 내몰리며 빠른 속도로 노동시장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여성들의 ‘공포’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한 예로, 일하는 부모가 자녀를 ‘직접 돌봄’하는 방안으로 내놓은 ‘육아기 재택근무’만 해도 남성에 비해 여성이 일과 양육이라는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되는 성차별적인 노동 환경에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이런 기조는, 문재인 정부가 2020년 12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년)을 발표하며 ‘고용 성평등’을 주요 의제로 올린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는 당시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로 ‘성차별적 노동시장’을 꼽으며, 단순히 출산율 제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성별에 따라 소득·경력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생애 경로와 삶의 질에 대한 젠더적 접근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여성과 남성 모두 ‘일’을 중심에 두는 사회로 변한 상황인데도, ‘성평등’을 지운 윤석열 정부의 저출산 대책을 ‘후퇴’로 규정했다.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운영위 위촉직 위원으로 참여했던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한 윤석열 정부다운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때는 성평등적 정책을 펴겠다고 방향성을 제시하면서도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비판받았는데 이 정부는 아예 (성평등이란) 그 말조차 뺐다”며 “성차별적인 걸 온몸으로 느끼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더욱더) 출산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성평등 사회에 대한 구상이 빠진 저출산 대책은 여성에게 부담을 지우는 ‘출산 장려’ 정책에 그쳐, 도리어 반감을 부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겠다는 여성 비율이 남성들보다 낮은 건 (성차별적 환경에서 결혼·출산·양육에 내몰리다 보면) 자기 인생 전망이 불투명해진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며 “그런 두려움을 덜어줄 대책이 빠진 대책은 ‘껍데기’나 다름없다”고 일갈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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