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올 2월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어린이병원을 찾아 환아와 보호자를 격려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대책’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이를 다룬 기사마다 저출산·저출생 용어를 달리 사용합니다. 두 용어는 어떻게 차이가 나는 걸까요.
먼저 출산과 출생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출산’은 ‘아이를 낳음’, ‘출생’은 ‘세상에 나옴’이라는 뜻입니다. 인구학적으로도 의미는 다릅니다. ‘합계출산율’과 ‘조출생률’(Crude Birth Rate)이 대표적입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15-49살)에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냅니다. 조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새로 태어난 사람의 비율을 말합니다.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 조출생률은 4.9명으로 다른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현재 정책과 법률은 ‘저출산’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저출산’으로 규정돼 있는 탓입니다. 대통령 직속기관 명칭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입니다. 정부가 낮은 출산율에 대응해 발표하는 대책명도 ‘저출산 대책’입니다.
몇년 전부터 여성계를 중심으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꿔부르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저출산’ 용어가 아이를 적게 낳는 주체에 무게를 둔다면, ‘저출생’은 출생인구가 줄어드는 사회 구조에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인구감소의 책임이 여성이 아닌,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가치 중립적인 ‘저출생’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국회에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의 명칭과 해당 법에서 사용된 ‘저출산’이라는 용어를 ‘저출생’으로 바꾸는 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도 조례에서 ‘저출생’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출산’과 ‘출생’의 뜻이 다른 만큼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꿔 쓰면 안 된다고 설명합니다. 젊은 세대가 아이를 얼마나 낳는지를 파악하려면 인구구조에 영향을 받는 ‘출산율’을 사용해야 하는데, ‘저출생’의 ‘출생’은 ‘출산율’에서 쓰는 ‘출산’과 다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한겨레〉는 출산과 출생의 의미가 학문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저출생’ 용어가 성평등이라는 지향점을 담고 있다고 판단해 통계 수치나 공식 발표, 연구 등 엄밀한 개념어가 필요한 상황을 제외하곤 가급적 ‘저출산’ 대신 ‘저출생’으로 표기해왔습니다. 인구 정책의 목적이 아이를 낳도록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아이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사회 구조에 맞춰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한겨레>는 28일 발표된 ‘윤석열 정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과제 및 추진 방향’의 경우 공식 정책 명칭인 ‘저출산’을 사용하되, ‘저출생’을 병행 표기합니다. 다만, ‘합계출산율’ ‘출생률’처럼 인구학 통계자료를 언급할 때는 학문 용어를 사용합니다.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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