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한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입은 폭력을 경찰에 신고했다가 조사를 받고 나온 지 10분 만에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시흥동 살인 사건’이라고 보도된 그 사건입니다. 대다수 언론은 이 뉴스를 전하며 ‘데이트폭력’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한겨레>도 사건 당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 데이트폭력이라고 표기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 사건을 추가 보도하거나 유사한 사건을 다룰 때는 데이트폭력 대신 ‘교제폭력’이라고 쓰고자 합니다.
‘데이트’와 ‘교제’, 사전적 뜻만 놓고 보면 별반 다르지 않은 말로 보입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데이트를 “교제를 위하여 만나는 일. 또는 그렇게 하기로 한 약속”으로, 교제는 “서로 사귀어 가까이 지냄”이라는 뜻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는 사용되는 맥락이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제라는 말은 ‘사귄다’는 중립적 어감이 강한 반면, 데이트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낭만적 행위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귀던 남녀 간에 벌어진 폭력 사건에 ‘데이트폭력’이란 표현을 쓰게 되면 사태의 심각성이 축소될 수 있습니다. 범죄의 중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데이트폭력’보다 ‘교제폭력’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에 여성가족부도 2022년부터 데이트 폭력에 더해 교제폭력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는 지난 3월 발간한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에서 데이트폭력 대신 교제 폭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교제폭력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 의 통제 하에 두겠다는 잘못된 인식, 공포와 위협을 통해 타인을 지배하려는 폭력적인 양상들이 ‘연인 관계’로 포장되어 온 결과”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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