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전국 208개 여성인권단체가 속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회원들이 2019년 9월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는 ‘비동의 강간죄’ 신설안이 윤석열 정부의 양성평등정책 세부 과제에서 결국 제외됐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2023년도 시행계획’을 확정했는데,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는 형법 제297조 개정 검토안이 세부 과제에서 빠진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은 국가 성평등 정책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앞서 여가부는 지난 1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비동의 강간죄 도입 검토안을 추진 과제에 포함했다가
법무부의 반대로 약 9시간 만에 기존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논란이 일자 “철회한 게 아니라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에 대해 검토하겠다”(지난 2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국 이를 추진하지 않는 쪽으로 최종 확정한 것이다.
김 장관은 당시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비동의 강간죄 신설 법안을) 통과시켜 주신다면 여가부는 수용할 생각이 있다”고도 밝힌 바 있어, 사실상 국회로 공을 떠넘긴 것으로 보인다.
현행 형법은 피해자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해, 강간죄 인정 범위가 매우 협소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8년 3월 ‘형법 제297조를 개정해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5년 넘게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전세계적인 흐름에는 역행하는 것이다.
최근 일본도 동의 없는 성관계가 처벌 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기존의 ‘강제 성교죄’를 ‘비동의 성교죄’로 바꾼 바 있다.
한편, 여가부가 확정한 올해 양성평등정책 시행계획은 △공정하고 양성 평등한 노동환경 △모두를 위한 돌봄 안전망 구축 △폭력 피해 지원 및 성인지적 건강권 보장 △남녀가 상생하는 양성평등 문화 확산 △양성평등정책 기반 강화를 목표로 중앙부처 세부과제 132개를 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양성평등정책 세부계획에서 공공부문에서 성별근로공시제를 시범 운영하고, 육아휴직 기간을 확대하기 위해 남녀고용평등법 등 관련 법령개정 추진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양성평등 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교과서 개발 및 보완·수정 시에 성인지적 관점을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법무부는 디지털 성범죄 대응 강화와 함께 성폭력 범죄 구성요건인 ‘성적 수치심’을 다른 용어로 대체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한다는 계획 등을 내놨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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