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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자녀들에게 과연 ‘안전한 길’이 있을까

등록 2006-06-27 16:34수정 2006-06-28 14:15

2050여성살이 /

초등학생 딸 둘을 키우고 있는 큰 언니의 요즘 고민은 ‘막가는’ 둘째딸이다. 원래 하기 싫은 건 죽어라 안 하는 이 녀석이 요즘 들어서는 그야말로 (언니 생각에) 하고 싶은 것만 한단다. 게임이다. 나만 보면 “이모 사이버 캐시 좀 쏴주삼” 하던 것이 아이템 장만하느라 그런 모양이었다. 나야 “참으로 맹랑한 놈이렷다” 하고 넘어갔는데 교육의 이름으로 딸을 ‘문명화’시키고 있는 엄마의 입장은 그게 아닌가보다.

문제의 그날도 식음을 전폐하고 컴퓨터 앞에서 땀 뻘뻘 흘리는 딸을 보다 못한 언니가 팔을 걷어붙이고 한판 시작했단다. 적당히 말 듣는 척을 못하는 이 녀석이 끝내 지 엄마 속을 뒤집어 놓았으니, 난무하는 고성에 반성하는 기미 없는 것도 모자라, “너는 도대체 뭐가 될래”라는 말에 “게이머요”하고 버젓이 대답한 것이다. 분을 삭이지 못한 언니는 그렇다고 애를 팰 수는 없어서 “내 집에서 나가”라 했고, 이 놈은 또 버젓이 나갔다가 기어이 지 아빠가 한밤중에 동네를 뒤져 친구와 사이좋게 게임하던 녀석을 끌고 오는 걸로 난장판이 끝났다 한다.

언니의 걱정은 딸이 게임을 좋아하는 것이 취미를 넘어 중독의 기미가 엿보인다는 것. 게임중독은 곧 사회 부적응자 아니면 낙오자, 최소한 번듯하게 잘 자란 아이가 되지 못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조카는 나름대로 항변한다. 숙제는 다 했고(그날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숙제도 있었고, 숙제를 하느라 했는데도 엄마의 성에 안 차 안 한 것으로 간주된 것도 있었단다), 게임만 했던 것도 아니니 중독을 걱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되며, 설령 학교 공부보다 게임을 더 좋아하기로서니 그게 그리 잘못되었냐는 것이다.

게이머가 인기 직종으로 부상하긴 했으나 여성이 드문 현실에서, 게임을 사랑하는 조카가 쉽지는 않겠지만 잘 나가는 여성 프로 게이머가 되는 것도 멋진 일이겠다 싶다. 그러나 여전히 부모들에게 잘 나가는 여성 프로 게이머의 길은 극소수만이 성공하는 낮은 확률의 직업이다. 그런 험한 길보다는 좀 더 ‘안전한’ 길을 딸이 선택했으면 하는 마음이야 자식 가진 부모라면 같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안전한 길이라는 게 정말로 안전할까? 대학 나와 ‘번듯한’ 직장을 가진 잘 나가는 사람이 될 확률과,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실력으로 프로 게이머로 자리잡을 수 있는 확률은 내가 보기엔 그리 차이 나지 않는다. 사회의 주류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재력과 계급이 받쳐주지 않는 한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도태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을 의미한다는 걸 모른 척 할 수 없다. 게다가 여자로서 안전한 길을 가기 위해 치러야 할 댓가는 여자 게이머의 험난한 길 못지 않다. 남들 모두 그렇게 사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가면서 새로운 한계를 넘어설 것인가. 돈 워리. 우리 모두 어떤 길을 선택할 뿐이다. 비 해피. 선택한 길 안에서 행복하게 살면 된다.

정박미경/ 자유기고가 chaos400@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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