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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40대 아줌마, 운동화 ‘질끈’ 매다

등록 2007-09-20 19:29

2050 여성살이 /

운동회에서 달리기 꼴등은 따 논 당상이었다. 빛나는 이십대 청춘엔 영혼만 불철주야 돌보느라 육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약이라도 한 첩 지어 먹을까 하고 한의원에 갔다가 아줌마는 살부터 빼고 오라는 남자 의사의 말에 반나절 속상해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러다 애랑 첩첩산중에서 둘이 살게 되었다. 제 딴엔 겁이 나 책을 들여다보며 남들이 좋다니 요가란 걸 해 보았다. 그게 사단이었다. 기본도 모르면서 책에 나와 있는 온갖 고난도의 동작을 몸을 비틀고 꼬아가면서 따라잡기를 한 것이다. 허리가 묵직해지자 ‘운동은 운동으로 풀어야 한다’는 일념 하에 더욱 과격하게 몸을 또아리 틀었다. 그만, 올 것이 왔다. 출렁, 하고 매듭이 풀려 나가는 기분. 어찌 방으로는 들어가 드러눕고는 다시 일어나질 못했다. 이것이 업계용어로다 ‘요추염좌’ 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그 일 이후 한동안 운동이란 걸 아예 포기했지만, 싱글맘이란 존재적 조건이 날 다시 운동의 길에 들어서게 했다. 시답잖은 감기에만 걸려도 덜컥 가슴이 내려앉고 애만 보면 눈물 바람을 하며 신파영화를 찍고 있는 게 참으로 가긍스럽기 짝이 없었다. 단, 나는 연체동물이 아니라 사람임을 단단히 이마에 새겨 넣었다. 모든 일에는 준비운동이 필요하단 걸.

이곳 미국으로 오면서 미어터지는 짐 속에 구겨 넣었던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운동화였다. 도착한 다음날부터 운동화를 꿰신고 아이오와 강을 따라 달렸다. 이왕 시작한 거, 완성도를 높이는 소품도 하나 장만했다. 엉덩이에 ‘IOWA’라고 큼직하게 새겨진 황금색 짧은 반바지. 출렁거리는 40대 아줌마의 허벅지와 장딴지가 내 보기에도 민망하여 선글라스로 위장하고 호흡은 엇박자로 어긋나지만 좌우당간 난 달린다. 이곳의 여학생들처럼.

땀을 흘리고 나면 요가타임. 처음 쟁기자세를 취할 때 허공에 떠 있던 두 발은 이제 바닥에 사뿐이 닿아주신다.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다녀도 낫질 않던 어깨 통증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자궁에 있다는 물혹도 이혼 후 검진했을 땐 신기하게도 사라져 있었다. 글은 재능으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쓴다고 믿는 나는, 더구나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딸 좀 부탁해!”란 말을 여동생 부부에게 만날 때마다 가벼운 인사처럼 건네는 나는 무조건 건강해야 한다.

며칠 전 뜨거운 태양을 눅잦히는 비가 종일 내리더니 이제 삽상한 바람이 분다. 내 집 마당의 원추리꽃을 여기서 발견하고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듯이 이곳에도 우리 마을 들머리처럼 국화꽃이 소담하게 피어나리라. 한국이든 미국이든, 무브먼트든 스포츠든 가을은 운동하기에 최고의 계절임에 틀림없다. 뭐, 운동뿐이겠냐만서도.


김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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